흑인노예와 노예상인 : 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2
장 메이메 지음, 지현 옮김 / 시공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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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에 빠져들었었다. 그후 고3 이 되기 전까지 꾸준히 힙합 음악을 찾아 들었고 - 당시로서는 - 고급 리스너가 되었다. 나중에는 자작곡들을 만들면서 스스로 랩퍼의 길을 가려고 마음먹기도 하였으나 그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튼 힙합이라는 음악이 흑인들에게서 나온 음악이고, 주류 역시 흑인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 흑인들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인터넷이나 신문, 책 등에서 접한 흑인들의 생활은 '불우' 그 자체였다. 흑인들은 대부분이 하류의 인생을 살고 있었으며, 노예가 해방된지 백여년이 지난 요즘에도 심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평전이나 흑인 지식인 '프란츠 파농' 평전, 랭스턴 휴즈의 시집 '집시의 발라드' 등을 읽어보고 '말콤 엑스'의 전기 영화까지 보고 나자 흑인들에 대한 동정심과 백인들에 대한 경멸감은 매우 커졌다(솔직히 지금 생각으로는 - 흰둥이나 깜둥이나 우리를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고, 우리도 깜둥이나 동남아인을 무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 굳이 내가 흑인을 위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아프리카의 역사라든지 흑인들의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며, '노예'라 함은 인권유린의 극단을 달리는 단어이므로 - 인종 감정 따위와는 별개로 -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중의 하나로서, 다른 예로 '살림 지식 총서' 같은 것이다. 나는 이미 '시공...' 시리즈의 책을 여러 권 - 공룡, 아마존, 호치민, 바이킹 기타 등등 -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고등학교 때 다 읽어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에서 만족을 얻었기에 이번에도 서슴없이 이 책을 사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이미 흑인들이 본격적으로(?) 노예 신세가 되기 전부터 노예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노예들은 피부색으로 구별되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 포로라든지 이교도, 혹은 죄수이기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무렵부터이다. 일부 포르투갈 인들이 동부 아프리카를 탐험하다가 여행경비 조달을 위하여 흑인들을 잡아다 판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흑인노예매매는 아메리카의 발견과 맞물려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책은 4세기 동안 1200만~1500만 명 정도의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동 중 사망률은 10프로에 달했다.

 모든 것은 제국주의 - 및 중상주의 -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국주의의 피해자는 유럽을 제외한 전세계이겠지만, 대항해시대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륙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였다.

 

「"커피와 설탕이 유럽인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두 식물이 두 대륙을 불행에 빠뜨렸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심을 땅을 얻기 위해 아메리카를 공략했고, 이것을 키울 사람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약탈했지요."」

 

 아프리카가 '미지의 대륙'이 된 것도 이놈의 노예매매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예도매상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정당화했다...(중략)...유럽인의 덕으로 흑인들은 문명에 접할 기회를 얻게 되고...하지만 아프리카인의 생각은 이와 같지 않아, 아프리카 전체는 아니더라도 내륙지역에서는 백인에 대한 적대감이 일기 시작했다. 15세기 지도만 해도 상세히 올라 있던 아프리카의 종단로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곧이어 아프리카는 '미지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 조금 웃긴 것은 노예가 되는 흑인들을 백인들이 일일이 찾아내서 납치한 것이 아니라, 현지의 족장이나 왕이 다른 부족을 습격하거나 해서 노예를 마련해놓고 백인 노예매매상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 동족을 팔아먹다니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다. 게다가 노예가 된 후에도 잘못을 저지른 노예를 체벌하는 일은 대부분 노예 신분을 어느 정도 벗어난 흑인들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친일파들을 보는 듯 하다. 세상 어디를 가나 그런 놈들은 있는 모양이다.

 흑인들이 노예선에 실릴 때에는 마치 화물을 싣듯이 선창에 차곡차곡 포개어 졌다고 한다. 솔직히 이런 것은 군대랑 비슷하다. 나는 군시절 2 1/2톤 트럭(일명 육공트럭) 적재함 바닥에 차곡차곡 실려서 이동할 때면 '내가 물건인가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흑인들은 때때로 선상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대부분은 금방 진압되었고, 주모자는 다음과 같이 처벌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 깊이 잘못을 뉘우치도록 엉덩이의 껍질을 벗겨냈다. 이렇듯 채찍질을 하고 껍질을 벗겨서 노예들의 엉덩이를 피범벅으로 만들고 나면, 화약, 레몬즙, 소금물, 고춧가루, 그리고 외과의사가 준 다른 약을 함께 넣고 뒤섞어서 엉덩이에 문질렀다. 회저병이 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엉덩이를 더욱 쓰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이 책에 나와있는 노예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한도 끝도 없다(참, 노예는 일단 매매거래가 성사되면 몸에 주인의 낙인이 찍혔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백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매우 적절히 표현한 구절이 있었다. 다음은 독일·스위스계 퀘이커 교도들의 '저먼타운 항의문' 일부이다.

 

「"'백인을 노예로 부리기보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용인할 수 없다. 사람을 훔치거나 납치하는 이들, 사람을 사고 파는 이들, 이들이야말로 노예로 삼아 마땅한 이들이다."」

 

 한편 책을 보다가 크게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바로 책 158페이지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고 그러하였는데, 사진에는 '미국의 흑인 처형 장면'이 찍혀 있었다. 웬 흑인 두 명이 거적대기 같은 옷을 걸친채로 큰 나무에 목이 매달려 늘어져 있었고(어디서 많이 두들겨 맞은 듯 옷은 매우 지저분하다), 그 앞에 수많은 백인 군중들이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 근처의 몇몇 백인들은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거나 손가락으로 흑인을 가리키며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대단히 역겨웠다. 저 허연 피부에 큰 눈을 한 동물들이 과연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얻은 것이 많은 책이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가지, 저자는 링컨을 마치 聖者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 이는 오도된 것이다. 다음은 내가 고등학교 때 스크랩해 놓았던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이다.

 

「흔히 '남북전쟁 = 노예해방전쟁'으로 불리지만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이유가 아니라 남북전쟁의 전략의 일환으로 노예를 해방시켰다. 공화당 출신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에서는 연방을 탈퇴하는 주가 속출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나의 목표는 연방을 유지하는 것이지 노예제도 타파는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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