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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별 창비아동문고 227
나가사끼 겐노스께 지음, 김병호 그림, 양미화 옮김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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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 세대에는 나 역시 포함될 것이다. 불과 50년 전에 이 땅에 전쟁이 있었고, 오늘날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은 진행형이지만 내게는 너무나 막연한 사건, 전쟁. 죽어가는 사람들, 펑펑 터지는 포탄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보여 줘도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 사건이 바로 전쟁이다. 총천연색 활동사진으로도 전해지지 않는 전쟁의 실감이 하얀 바탕 위에 놓인 검은 활자가 전해줄 수 있을까?


문학을 읽으면서 실감, 리얼리티를 느낄 때는 활자가 그려내는 영상에 나의 경험과 기억이 덧붙여져 단단한 하나의 실체가 직조될 때이다. 그런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동화에 나의 경험과 기억을 덧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책이 묘사하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상상하고 구성해 나가기도 버거웠고, 이야기에 살을 붙여 단단한 실체로 구성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꼼꼼하게 세부를 설명하기보다는 간결하게 상황을 압축하고 지나가는 문체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리얼리티 가득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슬픈 우화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바보인 사람, 바보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 일부러 바보가 되려고 했던 사람 들이 주인공이다. 여기서 바보란 인간성이 상실된 존재를 일컬을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 속에서,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말살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엄성. 그러한 조건 속에서 개인은 자의 반, 타의 반 바보의 삶을 산다.


이야기가 우리의 기대를 가장 크게 배신할 때에는 착한 주인공, 적어도 나의 감정을 이입했던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때이다. 그럴 때는 왜 굳이 주인공을 죽여야 했냐고 분노할 때가 많지만 이 책을 읽을 때만은 예외였다. 전쟁은 나의 낭만적인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팔푼이 아버지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던 남자도, 동료를 위해 파리를 모아 주려 했던 남자도, 중국인 아이를 살뜰하게 돌보아 주었던 남자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정함. 그리고 개인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

책을 덮고 나면 슬픔과 무력감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반인간적인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인간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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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로 보림문학선 6
나스 마사모토 지음, 이경옥 옮김 / 보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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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의 삶보다 더 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삶은 대체로 자신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에 의존하기 마련이지만 아이들의 삶은 어른에게 의존한 삶일 뿐일 수 없다. 물론 어른의 삶 역시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책임과 의무를 벗어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개인의 순수하고 독립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아서는 아이들에 비해서는 나름의 주체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은 돈을 벌 수가 없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경로란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돈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고, 아이들의 일상이라는 것은 온 나라 아이들의 일상이 모두 동일할 정도로 개인의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다. 부모와 선생이 일구어 놓은 테두리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이 체득한 삶의 법칙을 자신의 것으로 무리없이 체득해 나가기도 하고, 그것에 강렬히 저항하기도 하고, 일정 부분 체념해 가기도 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

이 동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아이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 준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연약한 육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과도한 삶의 짐인 것 같아서 아이들의 일상, 생각 하나하나는 때로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불안정함과 어른들의 안정감. 그 속에서 마사아키는 아이들의 불안정함을 위험하게 느끼고 가능한 어른들의 안전한 세계에 속해 있고 싶어 한다. 구니토시는 이사를 많이 다닌 성장환경 탓에 특유의 유연함과 탄력을 지닌 아이로 그 둘을 왔다갔다 하면서 무리없이 성장한다. 구니토시는 이 중에 가장 조숙한 아이였다. 현실의 비정한 모습을 일찍이 깨닫고 그 세계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정도로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갈등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의 타협 내지 안정이 아니라 봉합상태였다. 다이너마이트를 얇은 종이로 가려놓기만 한 상태. 구니토시는 이 동화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는 캐릭터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기 전과 폭발한 뒤. 그래서 결국 바다로 떠난다. 사토시 역시 비슷하다.

결국 이 두 아이는 어른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육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두 아이는 바다로 떠난다. 두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미 어른의 논리로 굳어버린 내 머리로 상상하는 두 아이의 현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친 자연의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정말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결국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가 그러한 결말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 결국 위험한 바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내몰았던, 어른들의 비정한 현실 세계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화를 덮고 나면 선연히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황량한 바닷가에서 여러 아이가 마음을 합쳐 배를 만드는 모습, 바닷가의 짠내와 아이들의 열기, 비록 화기애애하지는 않지만,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다는 순수한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 그리고 시로의 죽음으로 인해 교장실에 불려가 꾸중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 제각각의 캐릭터가 빚어내는 심리가 정말 탁월하게 묘사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란다. 어른과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다가 결국 좌절당하고 체념하고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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