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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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래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마음만 먹은채 미뤄오던 또 하나의 소설을 끝냈다. 올해 09년은 다독의 해, 그 중 4월은 내 나름 소설/문학작품의 달로 그동안 자기개발에서 지겨워진 마음을 조금 풀어놓고자 가급적 편안하고 술술 읽히는 가벼운 것들로 선택하는 중이다. 내 책장에는 주로 전공분야인 경제/경영라인의 자기개발서와 내 개인적인 관심 스타일의 소설책이 꽂혀있는데, 근래에는 한껏 나붓나붓하고 섬세한 감정묘사가 탁월한 일본소설에 그 관심이 부쩍 늘었다.
 
 요시다 슈이치는 <악인>이라는 저서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내가 원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랄까 섬세함은 찾아볼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책의 리뷰를 위해 온라인 서점을 뒤져보니, 오히려 그간 내가 간과했던  그야말로 내취향인 책들을 많이 집필한 작가였다. 이로써 나는 일본 문단의 인재 중 또 한사람의 작가에 꽂혀버렸다. 첫번째는 에쿠니 가오리, <공중그네>로 날 휘어잡은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의 작가소개에 늘 언급되는 진짜 원조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이번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통해 마음을 준 요시다 슈이치까지.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유달리 잠이 안오는 밤이 지속되는 근간에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차분하게 소설을 읽는것이 더없는 즐거움이다. 사실 이번에 선택한 이 책은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곧바로 읽기를 시도했으나 시작부터 엄청난 규모의 범죄사건과 연루된 도입부에서 거부감을 느끼며 덮어둔 채 한참을 미뤄왔다. 그런데 어떤 심사에선지 갑자기 잊혀졌던 이 책이 불쑥 가슴 한켠에서 고개를 쳐들었고- 나는 이미 깊어질만큼 깊어진 새벽 2시경 책장 한켠에 꽂혀진 이녀석을 찾아 동이 트기 직전까지 단숨에 완독해버렸다. 근래에는 한참을 겪어보지 못한 몰입이었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나름 파격적이고 충격적일 결말이자 반전이 정말 심드렁하게 예상됐다는 것이다. 이전에 퍼즐이라는 쏘우의 패러디작같은 한 영화를 보면서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인데, 책을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무심코 ‘혹시 이거 이렇게 되는거 아닌가?’ 싶은 내용이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요즘 남들이 뭐라건 매일매일 챙겨보는 미니시리즈와 유사한 컨셉이어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고 서운함마저 감도는 기분이었다. 난 참 눈치 없기로 유별난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쉽게 예측되어 버렸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다 슈이치 특유의 문체, 일본 작가들만의 섬세한 감성은 나를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접한 세계속에서는 오직 일본만이 해낼 수 있는 그 감성, 디테일함의 위력. 나는 다시금 그 마력에 빠져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륙, 중국의 장점이 상상이상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웅장함이자 한없이 조증에 가까운 희극이라면, 일본은 울증에 가까운 섬세함 그것을 기반으로 한 비극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나의 내면적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일본의 예술세계를 사랑한다.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에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내 스스로 잘 알기때문에 여러모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 요즘같은때는 가급적 피하는 편인데, 결국 또 이렇게 되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이미 나의 정신세계를 충복에 가깝게 사로잡은 에쿠니씨의 단편 모음집 <장미 비파 레몬>이 들려있다. 오늘 밤은 또 한참을 잠 못 이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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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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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이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
나는 그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시인
모든 게 엉망이었을 때도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약물에 의존하려고도
가르침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잠을 자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시 쓰는 법을 배웠다.
바로 오늘 같은 밤
바로 나 같은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이런 시를 위해.


-
레너드 코헨






**
아주 오래전 학업의 의무가 막중하던 고3시절 인기리에 방영하던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우연히 이 시집에 실린 작품 중 하나이자 이 시집의 제목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를 접하게되었다. 류시화 시인의 명성은 그 전부터도 익히 들어 알고있었지만, 한 작가의 시만이 줄줄히 실린 작품집은 왠지 모르게 거부반응이 들어 피하던 중 인생 혹은 철학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세계 각국의 유명한 시들이 모인 하나의 컨필레이션 앨범과도 같은 이 책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또 개인적으로 우연히 만난 시 한편을 접하고 감상에 빠지는 것은 매우 즐거우나, 시집을 통째로 사서 읽는 것은 앞서 접한 좋은 시에 대한 느낌이 금방 잊혀지는 것 같아 꺼리게된다. 아마도 내가 책 한권으로 발행 된 시집을 통째로 다 읽은 것은, 중학생 시절 학교 축제때 진행된 독서골든벨 참가를 위해 읽었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절친했던 친구가 무조건 읽으라고 쥐어줬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애석하게도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에 이어 이 책이 세번째인듯 싶다. 그래도 한때는 학교에서 클럽활동으로 시화부와 문예부에 들었던 경력도 더러 있으며, 나름 문학을 사랑하노라고 자청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삶과 인생을 테마로 하는 철학적인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모음 시집이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정독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발췌하여 따로 기록해 둘 만큼 강한 임팩트를 주는 부분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빠른 시일내로 일상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 책을 다시 한 번 차근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취미생활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쉽게 가져보지 못한 마음가짐이다.

시집에 대한 리뷰는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쓰기를 진행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책 본문에 실린 한 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리뷰를 시작하는게 가장 긍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시를 소개한다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평을 남기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종종 다른 책들의 리뷰도 이런식으로 작성해야겠다. 조만간 남자친구와 이별하여 세상이 온통 우울 투성인 내 절친에게 이 책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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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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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미술계에서 꽤 큰 위치를 차지하고 계시는 연배 높으신 화가 한분을 만나뵙고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 난다. 연배때문일까, 혹은 미술계에서도 상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단에 속해계신 탓일까. 생각보다 순수미술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과 시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신 그 화백님께선 저녁식사로 곁들인 반주를 한 잔 손수 따라주시며 내게 물으셨다.

" 그래, 자네는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책을 많이 읽는가? "

" 주변 친구들보다도 조금 더 좋아하고 많이 찾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 훌륭하군 훌륭해, 그러면 어느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가? "

" 박완서 작가님입니다. "

" 아아, 그 여자분, 그래그래 그 분 훌륭하시지. 책도 여러 교양서나 개발서 좋은 것이 많지만
아직 학생이라 시간이 좀 있을 때, 우리 문학을 많이 읽도록 해. 문학이 훌륭한거야. 알겠나? "

사실 누군가 내게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올 때, 나는 근래에 가장 탐독하고 있는 일본의 여류작가 에쿠니가오리를 주저없이 얘기한다. 하지만 연배도 꽤 있으시고, 문학이 아닌 미술계에 종사하시는 어르신께 답하는 만큼 국내에 저명한 작가분을 언급해야 한다는 순간적인 판단이 들었기에, 나는 주저없이 박완서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렇다고 그분들 덜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근래에 와서 가장 많이 찾는 작가의 책이 에쿠니가오리였을 뿐 이다.

일단 대답을 마치고 약간 마음 한켠이 불편한 느낌을 가진 채 잠시 생각에 빠졌는데. 또 다시 옛날일을 되짚어 보자면, 내용의 이야기나 소재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작가가 누구며 어떤 생각이나 사회적 배경으로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도통 무관심했던 내 가치관에서 가장 처음으로 책의 표지를 돌려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던 것이 <대지>를 쓴 펄벅, 그리고 그 이후가 박완서님이었던 기억이 난다.(아마 그 때 접했던 소설이 <그 여자네 집>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박완서님의 신작이 소개 될 때마다 ‘ 아 이분... ’ 하면서 관심을 곤두세웠으니, 내 답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이번에 작가님의 산문집 <호미>를 읽으며 더욱 그 확신이 두터워졌다.

우리는 일상에서 각종 예술작품들을 접하며 영화같고 소설같은 삶을 꿈꾼다.(또 그렇게 되고 싶다고 수도없이 읊조린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영화 혹은 소설을 바라보며 동경하고 탐닉하는동안 잠시 외면하고 버려두는 우리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오히려 더 우리가 말하는 소설같고 영화같을 때가 많다고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보통 그런 낭만적인 삶에 대한 동경의 표본으로 꼽는 것이 앞서 언급한 세 여류작가 펄벅, 박완서, 에쿠니가오리 이 세사람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볼 때 펄벅작가는 그녀가 살아온 세기와 그녀가 집필의 배경으로 선택한 그 환경들이 내가 사는 곳과는 너무나 다르며, 에쿠니가오리는 내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통 삶’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써나가기에, 그것을 쫓기는 다소 부담감이 있다. 그렇게 볼 때 남는 지향점은 단 한 사람이다. 박완서님... 순수 낭만 동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과 가장 많은 것이 맞아떨어지는 그 분의 이야기들이.... 나는 너무 매혹적이며 아름답다고 결론을 지었다.

책의 본문 중 -시작과 종말-이라는 단락에서 서정주 시인에 관한 이야기가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겪은 칭송과 폄하, 영예와 치욕에 동의하여 고개 숙인 적도 침 뱉은 적도 없지만 어느 한 계절도 그의 시를 떠올리지 않은 계절이 없다. 그만큼 자연과 계절의 마음과 통하는 많은 시를 남기셨고, 그런 시들은 그분이 겪은 이승의 영욕을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으니 그분의 영혼도 그만하면 족하다고 끄덕끄덕 미소 지으시지 않을까.


<호미>에서 시작과 종말 중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고스란이 읊은 듯 한 글을 썼을까. 때로는 배아파 나를 낳아준 내 부모도 어쩜 이렇게 내 속을 몰라줄까 싶을 때가 있는데, 단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야말로 남남인 그녀가. 심지어 나보다도 몇갑절을 돌아 한참을 먼저 태어나 한참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그녀가....

이전에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두루 접하면서도 소설이 그 중 가장 으뜸이요, 그 다음이 시문학이다. 라고 생각하는 아주 편협적이고 외곬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솔직하고 나붓하게 담긴 에세이(혹은 산문)집이 참 좋다. 왠지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고, 위로해주는 것 같고, 칭찬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결국 이렇게 또 한권의 책과 또 한명의 작가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세상은 넓고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그 와글와글하고 복잡한 세태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내가 아니고 내가 없었던 곳에서 내가 느끼고 내가 소중히하는 것과 같은 것을 찾아내곤 한다. 그리고 기뻐한다. 아마도 그런것들에 의해 이 세상이 둥글둥글하고 조화롭게 유지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번에 <호미>에서 내가 추구하는 그것을 찾았다. 나는 이제 이 책의 맨 뒷장을 덮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이것을 끝냈다는 것이 아닌, 이것이 아니지만 이것과 유사한 또 다른것을 찾는다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정리한다. 이것 또 한 내가 느끼고 싶었던, 그리고 이번 책에서 찾은 또 다른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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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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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소설을 표방하여,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을 하면 재빨리 책으로 출간되는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인상이 찌푸려진다. 워낙 영상매체로 된 장르를 좋아라 하는 취향탓일수도 있지만.. 뭐랄까 돈 되는건 일단 하고보자는 싸구려 자본주의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영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설로 된 원작을 먼저 접하고 너무너무 빠져들었을 때, 그러다 차후에 그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화되었을 때 나중에 그것을 택하는 경우는 있어도. 영상물 이후에 원작 출간물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나름 책은 또래들에 비해 많이 읽고 즐겨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이번 <말리와 나> 역시, 툴즈에서 제공해주지 않으셨음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빨리 읽어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운 공명만을 허공에 흩어놓은지 몇달만에 간신히 책을 집어들었다. 그간 자기개발서만 주구장창 읽어와 지쳐버린 심신에, 그래 이번달은 가볍고 즐거운 소설의 달! 이라며 가장 편해보이는 책을 고른 것이다. 영화 속 말리는 그야말로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감상을 깨기 싫은 마음에 더욱 미뤄왔던 것인데, 그나마 근간에 이 책을 읽은 친구(심지어 그 친구는 말리의 사촌격인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고 있다.)가 극 강추해준 덕분에 이 책이 이번 소설의 달 4월에 가장 먼저 선택된 것도 있었다. 지인을 만나러 한참간 지하철을 타야 하는 길을 나서며 아무생각 없이 책을 들고 나선 나는.. 어느새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뻔한 위기를 맞을만큼 이 책에 빠져있었다. 고작 첫 페이지를 연지 1시간도 채 안되서 말이다!!!



 영상매체를 보고 난 뒤에 원작소설을 읽는 경우의 장점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징상 매 순간순간 장면을 하나의 만화처럼 머리속에 그려보기를 좋아하는 내가 쉽게 구체적으로 그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영화나 드라마에서 먼저 만난 주인공의 모습으로) 2. 영화 혹은 드라마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과 표현기법 내에서 다 전할 수 없던 것들(그래서 사건의 전개나 구성에 다소 억지스러운감이 있던 것들)을 좀 더 심도있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3. 영상매체의 시간제약상 다 담아내지 못한 편집용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 <말리와 나>는 위의 그런 3가지 장점이 유달리 극대화되었던 책이다.



 나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과 한평생 교감을 나누고 온 마음과 정신을 다 바쳐서 충성하는 개라는 종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은 더욱 각별해졌다. 본가 시골집에 있는 잡종 백구 이쁜이와, 전형적인 똥개 얌전이도 생각났고.. 나만 보면 못잡아먹어서 안달난채로 목줄이 끊어질때까지 덤벼들며 짖어대는 멍멍이와 언젠가부터 우리집에서 함께 살게 된 강아지 홈리스(집을 잃은채 떠돌다 우리집에서 밥을 몇 번 얻어먹더니 아주 정착했다.)까지 차례차례 떠올랐다. 모두가 잠 든 짙은 새벽에 말리의 엄청난 에피소드를 읽으며(지금 우리집에 있는 개들이나 그간 키워온 개들은 비록 말리처럼 대단스럽진 않았지만) 얼마나 대책없이 큰소리로 웃었으며, 또 언제 그랬냐는듯 눈물지었는지.. 아마 내 방에 있는 인형친구들 외에 아무도 모를것이다.



 책을 보면서 사뭇 심각해 진 것은 말리의 격정적이었던 인생이 영원한 안식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나도 사랑하는 애완견들을 여럿 떠나보냈지만 모두 자연사였다.(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 부모님이 팔아버리셨다거나..) 나는 이제까지 내가 독립적인 진짜 성인이 되면 내 능력으로 번 돈으로 자가용도 명품백도 아닌 반려 애완동물 먼저 입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내 스스로 맞아들여 키우던 녀석이.. 어쩌면 살아있는게 더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과연 말리의 주인과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엄청난 두려움이 되어 밀려왔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숨을 내 손으로 거둘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순간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할까... 처음으로 굳게 지켜왔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은 직후에 도서관 고양이 듀이를 집어들었다. 그 애틋한 감정을 계속 잇고싶어서였다. 그리고 내 선택은 역시나 탁월했다. 나는 지금도 이 리뷰를 쓰면서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와 함께 나눠먹는 그 순간만큼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마 듀이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그러할 것이다. 벌써 새벽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딱히 한것도 없는데 어느새 말리의 이야기를 접하며 울고 웃던 깊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또 영화로 구체화 된 그 엉뚱맞고 귀염성있는 말리의 모습이 보고싶어졌다. 시간이 참으로 늦었는데도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니, 말리란 녀석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봐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주인의 곁에서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주인의 애정 어린 손길 한번이면 금은보화를 누리는 백만장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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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성찰
공병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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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휴학을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던 순간에는 정말 엄청난 상실감이 느껴졌다. 사실 이번만큼은 지난 07년의 사건보다야 조금 더 내 스스로에 의한 선택이며, 외부적인 요건들도 애초에 내가 방지할 수 있었을 일임에도... 단면적인 결과물로는 어쨌건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 때문이니 자뭇 섭섭하고 슬픈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된 논쟁의 테마로써 성악설이 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화두가 붉어질때면, 분명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선하다, 다만 조금 이기적일 뿐이다. 이기적인 것은 악함이 아니다. 생존하고자 하는 1차원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조금 더 고차원적인 생존욕구일 뿐이다. 라고... 내가 그런 맥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나와 내 주변인들은 때때로 밑도 끝도 없는 칭찬과 격려에 목말라한다. 이것 또한 배고프면 밥을 찾고, 피곤할 땐 편안하게 잠들 곳, 추울땐 몸을 덮을 것을 찾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제껏 볼 수 없던 무한한 능력과 효용을 창출케 한다. 그런데 그러한 칭찬에의 갈망이 왜 이기심과 악으로 몰아져 비판받아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요즘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금 부족하거나 참아야 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왔고, 그 누구보다 항상 근면하고 정직한 내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자녀를 속이는 주변의 다른 어른들보다 왜 늘 부족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슬퍼했다. 나는 그러한 부모님 아래서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성장해왔고, 내가 꼭 이러한 부족함들을 자라서 메워주리라고 거듭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사회적 어른이 되고나니.. 우리 부모님이 행했던 것이 옳은 것인데, 왜 틀린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했는지 그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하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설득력있는 누군가의 무한한 칭찬이 그리워졌다. 너도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사농공상 어쩌구 하는 것들이 지배하던 폐쇄적인 구조가 아니다.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얼마전에 중학교 온라인 교육계의 거성인 엠베스트 김성오 대표의 저서 <육일약국 갑시다>라는 책을 읽었다. 김성오 대표 또한 동기 학우들에 비해서는 다소 불우한-하지만 매우 건강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자신만의 순수하고 뜨거운 노력으로 지금의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 중 하나이다. 나는 그 분을 보면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때 얻은 위로에서 솟아난 용기를 공병호 박사님의 <성찰>이 나를 북돋는다. 너는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머릿말에서부터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가슴에 새겨준다. 노력하라, 자신하라, 근면하면 언젠가는 이룰지니....

사실 경상계열 전공자로서 공병호 박사님의 이름을 모른다면 참 아쉬움이 많은 사람일것이다. 나도 그 부분에서 참 부끄러운것이, 그 유명하신 분을 이름만 익히 들어 알고있었지 저서를 한 번 접해봤다거나 그 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세븐툴즈 리뷰도서를 통해 처음으로 그 분의 명성이 왜 그토록 자자하게 알려졌는지 느끼게되었다. 나는 이렇게 또 대단하다고 감탄할만한 사람을 한분 더 알게되었다. 이제는 이 무서웁고도 미련한 외곬수가 또 발동할 차례인 듯 싶다. 이제 다음 목표는 저자의 최신작 <공병호의 소울메이트>이다.

우리는 보통 직접 느껴본 사람만이 진짜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늘 부유하게 살아온 이들은 정말 어려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없기에, 현실적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와 헌신을 하는 이들은 그들과 생활면에서 별 차이없는 또 다른 불우이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선하다고 믿기에, 그러한 사회적 편견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아직은 세상이 그러한 믿음을 형성하기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에 내가 접한 공병호 박사님이나 김성오 CEO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옳음이라고...

나는 이제 <성찰>을 통해 칭찬을 받았다. 밑도 끝도 없이,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은 무조건 옳으며 더 노력하라는 그 무엇보다 기운나는 칭찬을 말이다. 충분한 근거가 없는 칭찬은 때론 듣는이에게 독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피곤하고 해야할 일이 많을 때, 억지로 자극적일만치 진하게 탄 커피를 마시고 조금 더 힘을 내서 해야할 일을 성취해내듯이... 때때로 우리에겐 유행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푸는 칭찬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위력은 그 어떤 것보다 대단한 결과물을 끌어낸다고 말이다. 나는 이미 칭찬을 받고 힘을 얻었으니, 이러한 것이 필요한 다른 어느 누군가를 찾아나서야겠다. 그리고 그러한 내 칭찬이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게, 나 또한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물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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