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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꽤 오래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마음만 먹은채 미뤄오던 또 하나의 소설을 끝냈다. 올해 09년은 다독의 해, 그 중 4월은 내 나름 소설/문학작품의 달로 그동안 자기개발에서 지겨워진 마음을 조금 풀어놓고자 가급적 편안하고 술술 읽히는 가벼운 것들로 선택하는 중이다. 내 책장에는 주로 전공분야인 경제/경영라인의 자기개발서와 내 개인적인 관심 스타일의 소설책이 꽂혀있는데, 근래에는 한껏 나붓나붓하고 섬세한 감정묘사가 탁월한 일본소설에 그 관심이 부쩍 늘었다.
요시다 슈이치는 <악인>이라는 저서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내가 원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랄까 섬세함은 찾아볼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책의 리뷰를 위해 온라인 서점을 뒤져보니, 오히려 그간 내가 간과했던 그야말로 내취향인 책들을 많이 집필한 작가였다. 이로써 나는 일본 문단의 인재 중 또 한사람의 작가에 꽂혀버렸다. 첫번째는 에쿠니 가오리, <공중그네>로 날 휘어잡은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의 작가소개에 늘 언급되는 진짜 원조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이번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통해 마음을 준 요시다 슈이치까지.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유달리 잠이 안오는 밤이 지속되는 근간에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차분하게 소설을 읽는것이 더없는 즐거움이다. 사실 이번에 선택한 이 책은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곧바로 읽기를 시도했으나 시작부터 엄청난 규모의 범죄사건과 연루된 도입부에서 거부감을 느끼며 덮어둔 채 한참을 미뤄왔다. 그런데 어떤 심사에선지 갑자기 잊혀졌던 이 책이 불쑥 가슴 한켠에서 고개를 쳐들었고- 나는 이미 깊어질만큼 깊어진 새벽 2시경 책장 한켠에 꽂혀진 이녀석을 찾아 동이 트기 직전까지 단숨에 완독해버렸다. 근래에는 한참을 겪어보지 못한 몰입이었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나름 파격적이고 충격적일 결말이자 반전이 정말 심드렁하게 예상됐다는 것이다. 이전에 퍼즐이라는 쏘우의 패러디작같은 한 영화를 보면서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인데, 책을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무심코 ‘혹시 이거 이렇게 되는거 아닌가?’ 싶은 내용이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요즘 남들이 뭐라건 매일매일 챙겨보는 미니시리즈와 유사한 컨셉이어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고 서운함마저 감도는 기분이었다. 난 참 눈치 없기로 유별난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쉽게 예측되어 버렸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다 슈이치 특유의 문체, 일본 작가들만의 섬세한 감성은 나를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접한 세계속에서는 오직 일본만이 해낼 수 있는 그 감성, 디테일함의 위력. 나는 다시금 그 마력에 빠져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륙, 중국의 장점이 상상이상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웅장함이자 한없이 조증에 가까운 희극이라면, 일본은 울증에 가까운 섬세함 그것을 기반으로 한 비극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나의 내면적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일본의 예술세계를 사랑한다.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에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내 스스로 잘 알기때문에 여러모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 요즘같은때는 가급적 피하는 편인데, 결국 또 이렇게 되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이미 나의 정신세계를 충복에 가깝게 사로잡은 에쿠니씨의 단편 모음집 <장미 비파 레몬>이 들려있다. 오늘 밤은 또 한참을 잠 못 이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