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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원작소설을 표방하여,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을 하면 재빨리 책으로 출간되는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인상이 찌푸려진다. 워낙 영상매체로 된 장르를 좋아라 하는 취향탓일수도 있지만.. 뭐랄까 돈 되는건 일단 하고보자는 싸구려 자본주의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영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설로 된 원작을 먼저 접하고 너무너무 빠져들었을 때, 그러다 차후에 그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화되었을 때 나중에 그것을 택하는 경우는 있어도. 영상물 이후에 원작 출간물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나름 책은 또래들에 비해 많이 읽고 즐겨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이번 <말리와 나> 역시, 툴즈에서 제공해주지 않으셨음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빨리 읽어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운 공명만을 허공에 흩어놓은지 몇달만에 간신히 책을 집어들었다. 그간 자기개발서만 주구장창 읽어와 지쳐버린 심신에, 그래 이번달은 가볍고 즐거운 소설의 달! 이라며 가장 편해보이는 책을 고른 것이다. 영화 속 말리는 그야말로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감상을 깨기 싫은 마음에 더욱 미뤄왔던 것인데, 그나마 근간에 이 책을 읽은 친구(심지어 그 친구는 말리의 사촌격인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고 있다.)가 극 강추해준 덕분에 이 책이 이번 소설의 달 4월에 가장 먼저 선택된 것도 있었다. 지인을 만나러 한참간 지하철을 타야 하는 길을 나서며 아무생각 없이 책을 들고 나선 나는.. 어느새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뻔한 위기를 맞을만큼 이 책에 빠져있었다. 고작 첫 페이지를 연지 1시간도 채 안되서 말이다!!!
영상매체를 보고 난 뒤에 원작소설을 읽는 경우의 장점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징상 매 순간순간 장면을 하나의 만화처럼 머리속에 그려보기를 좋아하는 내가 쉽게 구체적으로 그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영화나 드라마에서 먼저 만난 주인공의 모습으로) 2. 영화 혹은 드라마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과 표현기법 내에서 다 전할 수 없던 것들(그래서 사건의 전개나 구성에 다소 억지스러운감이 있던 것들)을 좀 더 심도있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3. 영상매체의 시간제약상 다 담아내지 못한 편집용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 <말리와 나>는 위의 그런 3가지 장점이 유달리 극대화되었던 책이다.
나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과 한평생 교감을 나누고 온 마음과 정신을 다 바쳐서 충성하는 개라는 종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은 더욱 각별해졌다. 본가 시골집에 있는 잡종 백구 이쁜이와, 전형적인 똥개 얌전이도 생각났고.. 나만 보면 못잡아먹어서 안달난채로 목줄이 끊어질때까지 덤벼들며 짖어대는 멍멍이와 언젠가부터 우리집에서 함께 살게 된 강아지 홈리스(집을 잃은채 떠돌다 우리집에서 밥을 몇 번 얻어먹더니 아주 정착했다.)까지 차례차례 떠올랐다. 모두가 잠 든 짙은 새벽에 말리의 엄청난 에피소드를 읽으며(지금 우리집에 있는 개들이나 그간 키워온 개들은 비록 말리처럼 대단스럽진 않았지만) 얼마나 대책없이 큰소리로 웃었으며, 또 언제 그랬냐는듯 눈물지었는지.. 아마 내 방에 있는 인형친구들 외에 아무도 모를것이다.
책을 보면서 사뭇 심각해 진 것은 말리의 격정적이었던 인생이 영원한 안식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나도 사랑하는 애완견들을 여럿 떠나보냈지만 모두 자연사였다.(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 부모님이 팔아버리셨다거나..) 나는 이제까지 내가 독립적인 진짜 성인이 되면 내 능력으로 번 돈으로 자가용도 명품백도 아닌 반려 애완동물 먼저 입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내 스스로 맞아들여 키우던 녀석이.. 어쩌면 살아있는게 더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과연 말리의 주인과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엄청난 두려움이 되어 밀려왔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숨을 내 손으로 거둘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순간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할까... 처음으로 굳게 지켜왔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은 직후에 도서관 고양이 듀이를 집어들었다. 그 애틋한 감정을 계속 잇고싶어서였다. 그리고 내 선택은 역시나 탁월했다. 나는 지금도 이 리뷰를 쓰면서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와 함께 나눠먹는 그 순간만큼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마 듀이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그러할 것이다. 벌써 새벽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딱히 한것도 없는데 어느새 말리의 이야기를 접하며 울고 웃던 깊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또 영화로 구체화 된 그 엉뚱맞고 귀염성있는 말리의 모습이 보고싶어졌다. 시간이 참으로 늦었는데도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니, 말리란 녀석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봐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주인의 곁에서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주인의 애정 어린 손길 한번이면 금은보화를 누리는 백만장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