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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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20살이 되었을 때, 동기 언니에게서 빌려서 매우 인상깊게 읽은 책인데 어째서일까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졌는지, 어떤 이야기였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개괄적인 구성만 떠오를 뿐) 나는 분명히 에쿠니씨의 글을 너무도 사랑하는데, 유독 그녀의 글만 이러하다.(이 책 뿐만이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전부) 이것은 새삼스레 느낄때마다 매우 불안하고도 섬뜩한 느낌이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 이 책의 뒷 이야기가 실려있다는 말을 듣고 우선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사뭇 그립기도 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나고 결말의 막바지까지 도착해서야 벼락을 맞듯 그 모든것이 와장창 생각났다. 그래 난 이 결말을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었지? 라는 번뇌가 밀려왔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맨드라미~>에 수록된 뒷 이야기가 미치도록 읽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에쿠니씨의 책을 읽으면 이른바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어디선가 25살이 되기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 중 한가지로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기’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이야기라면 몇날 몇일도 가능하지 싶다. (참고로 나는 놀면서도 밤은 절대 못새는 체질의 사람이다.)
 
 내가 근래에 자주 방문하는 카페에서 매우 진하고 쓴맛이 강하게 나는 드립커피 한잔과 입안이 얼얼할만큼 달고 깊은 맛의 초코케익을 주문해서 먹으며 책 읽기를 즐긴다. 참 아이러니한 메뉴 구성인데, 문득 케익 한입에 쓴 커피로 입을 중화(?)시키면서 든 생각이, 참 에쿠니씨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우 난해하고도 우리 주변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색채의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녀의 손길을 거치면, 그 누구보다도 천진난만하고 다정다감한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인물들로 재탄생된다. 마치 가벼운 동화책 한 권을 읽듯이... 어느 서평에서 내가 쓴 말이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을법한 이야기들이 비일비재한듯한 평범함으로 귀결되는 능력, 그것이 그녀가 지닌 최고의 마력이다.’라는 멘트가 떠오른다. 비범하고도 몽환적인 아이러니함, 어쩌면 마약이나 알콜중독에 빠져드는 이들의 순간적 쾌락이 대략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 묘사한 그런 느낌이 가장 궁극점에 이른 작품이 아마 이 <반짝반짝 빛나는>이지 싶다. 일반적인 남자들은 대개 혐오할만한 소재의 구성임에도, 내 주변에서조차 모두가 참 편안하고 느낌이 좋았다라고 호평하는 작품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해는 전국민이 붉은 물결로 축구에 열광하고 있던 그 해이다. 그때 나의 나이는 이팔청춘 십육세. 오직 우리나라의 그날 축구결과와 외국의 잘생긴 선수들, 학교에서 철없이 웃고 떠드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그 나이에, 우리와 같이 공동 개최를 했던 그 나라 일본에서는 이런 책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다. 손 쓸 도리가 없을 만큼...
 
 지금 드디어 갈망하던 <맨드라미~>의 내용을 차근차근 보고 있는데, 이 책은 에쿠니씨의 단편 모음집이다. 그 중 책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단편이 이 <반짝반짝~>의 10년 후 이야기이다.(책의 거의 후반부에 실려있다.) 나는 벌써부터 흥분된다. 햇수로 7년, 이야기 속에서는 10년이 훌쩍 지난 나의 아름다운 무츠키와, 쇼코 그리고 곤이 어떻게 성장했을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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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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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로 주인공만 대체된 <말리와 나>라는 느낌이 든다. 말리의 시작은 아주 무난하게 주인 부부에게 입양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듀이는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 극한의 상황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말리는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과가 있다면, 듀이는 까탈스러운 식성으로 도서관 식구들을 고생시켰으니 이런 부분까지 일맥상통한다.)

 

 차가운 한 겨울 도서반납통에 버려진 것을 계기로 스펜서 도서관과 19년의 고양이 치고는 긴 여생을 함께하는 도서관 고양이 듀이. 고양이를 유독 좋아하는 내 후배가 이 책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아니! 이런 개냥이가!!” 여기서 개냥이란 분명 외양은 고양이지만, 행동양식은 지극히 강아지스러운(애교도 잘 부리고 늘 사랑을 갈구하는)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듀이는 미국 전역의 사랑을 받아 마땅할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다.

 

 책을 읽는 내내 여주인공이자 작가 비키와 듀이, 그리고 스펜서 마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건전한 사고방식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내고자 하는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까지 모든 것들이 각자 다른 분야 속에 녹녹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책 뒷면에 내가 열렬히 사모하는 배우 메릴스트립 주연으로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쓰여져 있었다. 아마도 여주인공 비키 역할이리라.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요동친다.

 

 우리는 때로 각박한 세상살이에 인상찌푸려지는 소식들을 접하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을 자주 입에 담는다. 하지만 언제나 느끼듯, 본능과 천성에 충실한 이 금수들이 이기심과 편리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올바른 답을 향해 갈 때가 많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배워야한다. 말 못하는 금수도 그러하거니와 우리가 그런 그들을 보며 느끼는게 전혀 없다면, 과연 그들이 우리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겨주겠느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독립을 하게 되면 꼭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 이전까지는 무조건 순백의 하이얀 고양이만을 고집해왔는데, 듀이를 만나고부터는 황갈색의 줄무늬가 우아하게 그려진 주황색 고양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 때, 내게도 듀이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이 찾아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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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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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이제 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는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노희경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 첫사랑에게 바치는 20년 후의 편지 “버려주어 고맙다” 일부















작가님.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였습니다.
사실 나는 제작이니 구성이니 하는 것은 잘 모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는 다녀도, 보통 작품을 선택할 때 이야기나 출연진을 우선으로 중시하면서
그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나 작가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보는거죠.

그때도 그랬습니다. 드라마를 그토록 재밌게 보고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님이 과연 누구인지, 이런 연출을 해 낼 수 있는 감독님은 누구인지
도통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나 <꽃보다 아름다워>로 다시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가 누구고 감독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감성 하나는 탁월하다.’라고 생각은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배우 연기 참 잘하네. 혹은 매력있네.’로 끝나던 지난 어린시절의 한계에서 아주 조금은
벗어난것이라고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누군가 나에게 책도 많이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무척이나 즐기는 당신은
어느 작가나 감독을 좋아합니까? 라고 물을때 주저없이 노희경, 당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언급합니다.
그런데 이 조차도 반년이나 되었을까 싶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는 드디어
수년간 습관처럼 활용해오던 검색창에 이 각본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검색해 볼 마음이 들었고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당신의 작품이며, 이전에 내가 그토록 탐닉했던 작품들 또한 당신의 것이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순간의 기분을 딱히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서 몇번을 울었고 일부 대사는 정신없이 받아적은뒤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블로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책을 쓰셨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빨리 구입하러 달려갈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슬펐습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글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책의 제목도 그러했거니와, 가장 최근이자 최대로 당신에게 빠져들었던 작품이 <그들이 사는 세상>
때문이었는지. 나는 표지를 제대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 책이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놀음에 관한 신파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드라마 속 준영과 지오 두 사람만의
관계가 조금 더 발전되어 뻗어나온 책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시절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만나고도 배우나 스토리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그 좁은 시야가 툭 되살아난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 시간을 그리다 이 책을 드디어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많이 울어버렸습니다. 내가 또 얼마나 모자랐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울음의 이유 중
그것은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시선에서 쓰여진 외로움에 대한 위로가 너무나 고마웠음이
그 나머지의 전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문체로 쓰여진, 엄마와 언니와 친구보다도 더 한없이
따뜻하고 무덤덤한듯 섬세한 그 위로가 나를 얼마나 많이 울게 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당신 책을 읽고 그동안 내 스스로 나에게 쥐어줬던 죄들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힘들더라도 하하 하고 웃으며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스스로 잘못임을 깨달아가며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방황합니다. 어린시절 철모르고 유명인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를
타인의 연기를 통해 구체화된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꿈꿨던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비록 과거의 나는 비전과 재능이라는 장벽 앞에서 도전도 해 보지 않고 주저앉았지만
유죄가 아닌 무죄가 되기 위해 뒤늦은 방황을 통해 몸부림이라도 쳐보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이
내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적어도 작가님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내가 아직 가능하다는 것과 따뜻했다는 것과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정말 아무것도 아닌 현실을 염세와 비판과 부정으로만 판단하던 이 유죄를 깨닫기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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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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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뜨거운 관심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깊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다가설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 관심은 마음을 열게 한다 중





** 

“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든다고 해서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스스로 나는 최고다,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해요. 그게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핵심이예요 (후략) ”
 
-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누구나 사랑에 빠져요 중





** 

누구든 이 가게 앞을 지나가면 발걸음을 멈추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마르틴은 점점 잊혀져가는 이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그녀는 꽃을 달아주는 것만 같다.



- 첫사랑을 닮은 과자점 중















***

 본 내용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옮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페이지만 표시해 둔 곳이 있는데 p.28쪽에 있는 어느 종가집의 간장과 장인의 빵 반죽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어느 종가집은 간장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그 비법 중 하나가 선대에서 전해 내려온 간장의 일부를 새로 담그게 될 간장과 섞는 것 이라고 한다.



 <빵빵빵 파리>의 저자가 파리에서 만난 제과 장인또한 그러했다. 어제 사용한 빵 반죽의 일부를 남겨두었다가 오늘 새로이 구울 빵에 조금 섞어 반죽을 함으로써 그 빵집(혹은 종가집)이 존재해 오던 순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선대의 자취를 조금씩 조금씩 보존해간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적으로 볼 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0에 가까운 아주 작은 범위의 수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선대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전통을 되새길 수 있다는 그 의식이 정말 멋스러워보였다. 그것은 소중한 우리의 옛날 것,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지인이 블로그에 종종 이 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구절들을 포스팅하는 것에 공감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댓글로 써보고 하면서 나와 이 책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포스팅의 내용은 인생과 사랑을 담은 하나의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랜 고민끝에 책을 사기로 마음먹은 날  온라인 서점에서 소개된 글은 파리의 유명한 빵집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혹 다른 책을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한참을 고민 끝에 결국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책이고 왜 그런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는지에 대한 해명-저자가 파리 유학 시절에 만난 파리의 유명한 빵집들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메인테마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느낀 저자의 생각이나 그곳에서 들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저자가 유학시절을 통해 깨달은 고찰들이 곳곳에 녹아있는 책이다-을 들은 후 나는 어렵게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내 개인 블로그에는 위의 구절 말고도 늦은 밤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탐닉하다가 문득 전류가 통하는 느낌에 정신없이 메모패드와 펜을 찾아 토씨하나 틀림 없이 그 구절을 옮겨두고 다시 포스팅한 흔적들이 여럿 남아있다. 머리가 나쁜 탓에, 너무나 즐겁게(혹은 감격스럽게) 읽은 책들을 나중에 떠올렸을 때, 특정 구절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너무도 속상해 책을 읽으며 메모하는게 늘 습관화되어 있기는 한 나지만 이번 책만큼 수많은 구절을 적어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그만큼 나는 이 책 <빵빵빵 파리>를 읽었던 지난 2주간의 긴 시간동안 이 속에 푹 젖어있었다.



 저자의 철학은 내가 살고자 하는 가치관의 방향과 많이 일치했다. 저자가 보고 듣고 느끼며 감격했던 내용들 또한 내가 로망으로 여기며, 언젠가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 내 삶에서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더 쉴새없이 매달린 듯 하다. 더불어 한가지 더 좋았던 것은, 해외여행 경험이라고는 제작년 초여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 열흘간 체류해 본 것이 전부임에도 마치 내가 유럽의 거리를 거닐고 특히 파리 어딘가에서 이 책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착각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무런 위화감도 아무런 의구심도 없었다. 그만큼 피부를 가볍에 와닿는 부드럽고 얇은 실크소재의 잠옷과도 같은 느낌, 이 책은 내게 그런 촉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자그마한 규모의 수제 빵집(그것도 아주 맛있는 빵들로 가득찬) 또한 존재한다. 누군가 나에게 왜 학교에서도 멀고 여러모로 불편한 이 동네를 고집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 빵집도 상당 부분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주저없이 말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맛을 내 주변 친인들과 두루 나누고싶다. 종종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과의 약속날에는 어김없이 빵집에 들러 그날 제일 맛있어 보이는 빵을 사들고 즐거운 만남을 향하곤 한다. 그런데 본문중에 그러한 구절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친구란 ‘빵을 나누다’ 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이 평생을 기다려 온 운명의 반려를 만난 기분에 휩싸였다. 온몸이 쭈뼛쭈뼛 짜릿해져옴을 느꼈다. 그간 내가 무리하면서 누려온 즐거움은 단순한 오지랖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의 그 기분이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더 소중해졌다.



 무언가 칭찬받고 싶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존중받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 소중했던 물건들을 우연히 큰 맘 먹고 해치운 대청소 중에서 발견해내는 기분. 나는 그러한 기분을 이 책을 읽으며 거듭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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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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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액츄얼리같은 가볍고 코믹한 연애소설일 줄 알았다. 근래에는 툴즈에서 받은 리뷰도서 및 학교 세미나 과제자료들 덕분에 다소 난해한 중수필 혹은 개발서만을 꾸준히 접해왔던 터라, 오랜만에 받은 밝고 가벼운 연애소설로 마음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그래도 20대 초반 여대생의 봄인데, 하루종일 집안에 우중충하게 앉아 개발서 및 기업사례분석 원서와 사투만 하는것은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은 초반부터 나를 심히 난감하게 몰았다. 호루모라니, 귀신이라니, 나는 결코 <퇴마사>를 신청한 것이 아닌데....





 자유로운 연애와는 거리가 먼, 각자 너무도 진한 성향탓에 남들같은 연애 한 번 못해본 젊은 남녀들이 꾸려가는 에피소드.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가 이 책에 앞서 집필했던 <가모가와 호루모, 2006년작>의 속편이자. 호루모라는 판타지를 기반한 일종의 전통경기(?)를 진행하는 각 대학의 인물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소소하고도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다. 전작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을 완독하고서 든 느낌은 전작을 읽어야 즐거움과 몰입이 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아쉽게도 전작은 국내서적으로 출간되지 않은 듯 하다.)





 호루모라는 생전 처음보는 판타지 요소 덕분에 그것에 대한 묘사를 이해하는 것(책을 간단히 읽어넘기지 못하는 성격)과 옴니버스로 토막토막 구분되어진 인물간의 전체 관계를 파악하는데 다소 힘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 하드커버 맨 뒷면에 실린 전체인물관계도를 수십번도 넘게 펼쳐본 것 같다. 우습지만 나이탓인거 같기도 하다 - -;; 가장 대표적으로 툴즈에서 소개받았고, 이번에 읽은 판타스틱 호루모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테메레르 1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판타지는 찾아다니며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한 권에 빠지면 예약구매를 하면서까지 그 완결을 쫓아다니는 타입인데.. 이번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또한 그정도의 마력을 지닌 책이라고 당당히 말하겠다. 전작이 빨리 국내판으로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작가의 드라마화 된 다른 작품 <사슴남자>도 조만간 읽어볼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문체나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했다. 재밌고 즐겁고 귀엽고 낭만적이면서도 간간히 힘있는 철학이 담긴 소설.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이 좋았던 것은 교토의 구석구석이 눈 앞에 연상되는 듯한 묘사이다. 내가 이제껏 유일무이하게 다녀온 해외 여행 경험이 바로 일본이며, 간사이지방인 탓에 아직까지는 그 어떤 나라보다 교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곳에 머물렀던 것은 어느새 만으로 따져도 2년이라는 긴 시간 이전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두 눈과 가슴에 담아온 전통과 낭만이 살아숨쉬던 광경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지금 가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정말 아름다울텐데.. 라는 생각도 동반되면서 말이다.





 잔혹한 추위에 치아를 딱딱딱 부딪치며 옷깃을 여미던 겨울도 이제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다. 어울리는 단어를 꼽아보자면 낭만 혹은 로망 정도가 매치되는 봄이 온 것이다. 요즘 같이 어딘가로 산책하고픈 시기에 이 책 한권을 가슴에 안고 삼청동의 정독도서관이나 운치있는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간접적으로나마 교토의 고전적인 낭만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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