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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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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뜨거운 관심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깊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다가설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 관심은 마음을 열게 한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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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든다고 해서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스스로 나는 최고다,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해요. 그게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핵심이예요 (후략) ”
-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누구나 사랑에 빠져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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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이 가게 앞을 지나가면 발걸음을 멈추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마르틴은 점점 잊혀져가는 이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그녀는 꽃을 달아주는 것만 같다.
- 첫사랑을 닮은 과자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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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옮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페이지만 표시해 둔 곳이 있는데 p.28쪽에 있는 어느 종가집의 간장과 장인의 빵 반죽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어느 종가집은 간장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그 비법 중 하나가 선대에서 전해 내려온 간장의 일부를 새로 담그게 될 간장과 섞는 것 이라고 한다.
<빵빵빵 파리>의 저자가 파리에서 만난 제과 장인또한 그러했다. 어제 사용한 빵 반죽의 일부를 남겨두었다가 오늘 새로이 구울 빵에 조금 섞어 반죽을 함으로써 그 빵집(혹은 종가집)이 존재해 오던 순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선대의 자취를 조금씩 조금씩 보존해간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적으로 볼 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0에 가까운 아주 작은 범위의 수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선대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전통을 되새길 수 있다는 그 의식이 정말 멋스러워보였다. 그것은 소중한 우리의 옛날 것,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지인이 블로그에 종종 이 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구절들을 포스팅하는 것에 공감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댓글로 써보고 하면서 나와 이 책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포스팅의 내용은 인생과 사랑을 담은 하나의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랜 고민끝에 책을 사기로 마음먹은 날 온라인 서점에서 소개된 글은 파리의 유명한 빵집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혹 다른 책을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한참을 고민 끝에 결국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책이고 왜 그런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는지에 대한 해명-저자가 파리 유학 시절에 만난 파리의 유명한 빵집들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메인테마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느낀 저자의 생각이나 그곳에서 들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저자가 유학시절을 통해 깨달은 고찰들이 곳곳에 녹아있는 책이다-을 들은 후 나는 어렵게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내 개인 블로그에는 위의 구절 말고도 늦은 밤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탐닉하다가 문득 전류가 통하는 느낌에 정신없이 메모패드와 펜을 찾아 토씨하나 틀림 없이 그 구절을 옮겨두고 다시 포스팅한 흔적들이 여럿 남아있다. 머리가 나쁜 탓에, 너무나 즐겁게(혹은 감격스럽게) 읽은 책들을 나중에 떠올렸을 때, 특정 구절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너무도 속상해 책을 읽으며 메모하는게 늘 습관화되어 있기는 한 나지만 이번 책만큼 수많은 구절을 적어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그만큼 나는 이 책 <빵빵빵 파리>를 읽었던 지난 2주간의 긴 시간동안 이 속에 푹 젖어있었다.
저자의 철학은 내가 살고자 하는 가치관의 방향과 많이 일치했다. 저자가 보고 듣고 느끼며 감격했던 내용들 또한 내가 로망으로 여기며, 언젠가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 내 삶에서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더 쉴새없이 매달린 듯 하다. 더불어 한가지 더 좋았던 것은, 해외여행 경험이라고는 제작년 초여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 열흘간 체류해 본 것이 전부임에도 마치 내가 유럽의 거리를 거닐고 특히 파리 어딘가에서 이 책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착각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무런 위화감도 아무런 의구심도 없었다. 그만큼 피부를 가볍에 와닿는 부드럽고 얇은 실크소재의 잠옷과도 같은 느낌, 이 책은 내게 그런 촉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자그마한 규모의 수제 빵집(그것도 아주 맛있는 빵들로 가득찬) 또한 존재한다. 누군가 나에게 왜 학교에서도 멀고 여러모로 불편한 이 동네를 고집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 빵집도 상당 부분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주저없이 말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맛을 내 주변 친인들과 두루 나누고싶다. 종종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과의 약속날에는 어김없이 빵집에 들러 그날 제일 맛있어 보이는 빵을 사들고 즐거운 만남을 향하곤 한다. 그런데 본문중에 그러한 구절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친구란 ‘빵을 나누다’ 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이 평생을 기다려 온 운명의 반려를 만난 기분에 휩싸였다. 온몸이 쭈뼛쭈뼛 짜릿해져옴을 느꼈다. 그간 내가 무리하면서 누려온 즐거움은 단순한 오지랖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의 그 기분이란,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더 소중해졌다.
무언가 칭찬받고 싶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존중받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 소중했던 물건들을 우연히 큰 맘 먹고 해치운 대청소 중에서 발견해내는 기분. 나는 그러한 기분을 이 책을 읽으며 거듭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