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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러브액츄얼리같은 가볍고 코믹한 연애소설일 줄 알았다. 근래에는 툴즈에서 받은 리뷰도서 및 학교 세미나 과제자료들 덕분에 다소 난해한 중수필 혹은 개발서만을 꾸준히 접해왔던 터라, 오랜만에 받은 밝고 가벼운 연애소설로 마음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그래도 20대 초반 여대생의 봄인데, 하루종일 집안에 우중충하게 앉아 개발서 및 기업사례분석 원서와 사투만 하는것은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은 초반부터 나를 심히 난감하게 몰았다. 호루모라니, 귀신이라니, 나는 결코 <퇴마사>를 신청한 것이 아닌데....
자유로운 연애와는 거리가 먼, 각자 너무도 진한 성향탓에 남들같은 연애 한 번 못해본 젊은 남녀들이 꾸려가는 에피소드.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가 이 책에 앞서 집필했던 <가모가와 호루모, 2006년작>의 속편이자. 호루모라는 판타지를 기반한 일종의 전통경기(?)를 진행하는 각 대학의 인물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소소하고도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다. 전작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을 완독하고서 든 느낌은 전작을 읽어야 즐거움과 몰입이 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아쉽게도 전작은 국내서적으로 출간되지 않은 듯 하다.)
호루모라는 생전 처음보는 판타지 요소 덕분에 그것에 대한 묘사를 이해하는 것(책을 간단히 읽어넘기지 못하는 성격)과 옴니버스로 토막토막 구분되어진 인물간의 전체 관계를 파악하는데 다소 힘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 하드커버 맨 뒷면에 실린 전체인물관계도를 수십번도 넘게 펼쳐본 것 같다. 우습지만 나이탓인거 같기도 하다 - -;; 가장 대표적으로 툴즈에서 소개받았고, 이번에 읽은 판타스틱 호루모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테메레르 1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판타지는 찾아다니며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한 권에 빠지면 예약구매를 하면서까지 그 완결을 쫓아다니는 타입인데.. 이번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또한 그정도의 마력을 지닌 책이라고 당당히 말하겠다. 전작이 빨리 국내판으로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작가의 드라마화 된 다른 작품 <사슴남자>도 조만간 읽어볼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문체나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했다. 재밌고 즐겁고 귀엽고 낭만적이면서도 간간히 힘있는 철학이 담긴 소설.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이 좋았던 것은 교토의 구석구석이 눈 앞에 연상되는 듯한 묘사이다. 내가 이제껏 유일무이하게 다녀온 해외 여행 경험이 바로 일본이며, 간사이지방인 탓에 아직까지는 그 어떤 나라보다 교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곳에 머물렀던 것은 어느새 만으로 따져도 2년이라는 긴 시간 이전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두 눈과 가슴에 담아온 전통과 낭만이 살아숨쉬던 광경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지금 가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정말 아름다울텐데.. 라는 생각도 동반되면서 말이다.
잔혹한 추위에 치아를 딱딱딱 부딪치며 옷깃을 여미던 겨울도 이제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다. 어울리는 단어를 꼽아보자면 낭만 혹은 로망 정도가 매치되는 봄이 온 것이다. 요즘 같이 어딘가로 산책하고픈 시기에 이 책 한권을 가슴에 안고 삼청동의 정독도서관이나 운치있는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간접적으로나마 교토의 고전적인 낭만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