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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갓 20살이 되었을 때, 동기 언니에게서 빌려서 매우 인상깊게 읽은 책인데 어째서일까 이야기가 어떻게 맺어졌는지, 어떤 이야기였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개괄적인 구성만 떠오를 뿐) 나는 분명히 에쿠니씨의 글을 너무도 사랑하는데, 유독 그녀의 글만 이러하다.(이 책 뿐만이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전부) 이것은 새삼스레 느낄때마다 매우 불안하고도 섬뜩한 느낌이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 이 책의 뒷 이야기가 실려있다는 말을 듣고 우선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사뭇 그립기도 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나고 결말의 막바지까지 도착해서야 벼락을 맞듯 그 모든것이 와장창 생각났다. 그래 난 이 결말을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었지? 라는 번뇌가 밀려왔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맨드라미~>에 수록된 뒷 이야기가 미치도록 읽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에쿠니씨의 책을 읽으면 이른바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어디선가 25살이 되기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 중 한가지로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기’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이야기라면 몇날 몇일도 가능하지 싶다. (참고로 나는 놀면서도 밤은 절대 못새는 체질의 사람이다.)
내가 근래에 자주 방문하는 카페에서 매우 진하고 쓴맛이 강하게 나는 드립커피 한잔과 입안이 얼얼할만큼 달고 깊은 맛의 초코케익을 주문해서 먹으며 책 읽기를 즐긴다. 참 아이러니한 메뉴 구성인데, 문득 케익 한입에 쓴 커피로 입을 중화(?)시키면서 든 생각이, 참 에쿠니씨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우 난해하고도 우리 주변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색채의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녀의 손길을 거치면, 그 누구보다도 천진난만하고 다정다감한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인물들로 재탄생된다. 마치 가벼운 동화책 한 권을 읽듯이... 어느 서평에서 내가 쓴 말이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을법한 이야기들이 비일비재한듯한 평범함으로 귀결되는 능력, 그것이 그녀가 지닌 최고의 마력이다.’라는 멘트가 떠오른다. 비범하고도 몽환적인 아이러니함, 어쩌면 마약이나 알콜중독에 빠져드는 이들의 순간적 쾌락이 대략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 묘사한 그런 느낌이 가장 궁극점에 이른 작품이 아마 이 <반짝반짝 빛나는>이지 싶다. 일반적인 남자들은 대개 혐오할만한 소재의 구성임에도, 내 주변에서조차 모두가 참 편안하고 느낌이 좋았다라고 호평하는 작품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해는 전국민이 붉은 물결로 축구에 열광하고 있던 그 해이다. 그때 나의 나이는 이팔청춘 십육세. 오직 우리나라의 그날 축구결과와 외국의 잘생긴 선수들, 학교에서 철없이 웃고 떠드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그 나이에, 우리와 같이 공동 개최를 했던 그 나라 일본에서는 이런 책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다. 손 쓸 도리가 없을 만큼...
지금 드디어 갈망하던 <맨드라미~>의 내용을 차근차근 보고 있는데, 이 책은 에쿠니씨의 단편 모음집이다. 그 중 책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단편이 이 <반짝반짝~>의 10년 후 이야기이다.(책의 거의 후반부에 실려있다.) 나는 벌써부터 흥분된다. 햇수로 7년, 이야기 속에서는 10년이 훌쩍 지난 나의 아름다운 무츠키와, 쇼코 그리고 곤이 어떻게 성장했을지에 대한 기대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