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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대여, 이제 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는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노희경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 첫사랑에게 바치는 20년 후의 편지 “버려주어 고맙다” 일부
작가님.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였습니다.
사실 나는 제작이니 구성이니 하는 것은 잘 모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는 다녀도, 보통 작품을 선택할 때 이야기나 출연진을 우선으로 중시하면서
그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나 작가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보는거죠.
그때도 그랬습니다. 드라마를 그토록 재밌게 보고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님이 과연 누구인지, 이런 연출을 해 낼 수 있는 감독님은 누구인지
도통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나 <꽃보다 아름다워>로 다시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가 누구고 감독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감성 하나는 탁월하다.’라고 생각은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배우 연기 참 잘하네. 혹은 매력있네.’로 끝나던 지난 어린시절의 한계에서 아주 조금은
벗어난것이라고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누군가 나에게 책도 많이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무척이나 즐기는 당신은
어느 작가나 감독을 좋아합니까? 라고 물을때 주저없이 노희경, 당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언급합니다.
그런데 이 조차도 반년이나 되었을까 싶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는 드디어
수년간 습관처럼 활용해오던 검색창에 이 각본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검색해 볼 마음이 들었고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당신의 작품이며, 이전에 내가 그토록 탐닉했던 작품들 또한 당신의 것이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순간의 기분을 딱히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서 몇번을 울었고 일부 대사는 정신없이 받아적은뒤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블로그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책을 쓰셨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빨리 구입하러 달려갈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슬펐습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글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책의 제목도 그러했거니와, 가장 최근이자 최대로 당신에게 빠져들었던 작품이 <그들이 사는 세상>
때문이었는지. 나는 표지를 제대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 책이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놀음에 관한 신파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드라마 속 준영과 지오 두 사람만의
관계가 조금 더 발전되어 뻗어나온 책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시절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만나고도 배우나 스토리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그 좁은 시야가 툭 되살아난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 시간을 그리다 이 책을 드디어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많이 울어버렸습니다. 내가 또 얼마나 모자랐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울음의 이유 중
그것은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시선에서 쓰여진 외로움에 대한 위로가 너무나 고마웠음이
그 나머지의 전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문체로 쓰여진, 엄마와 언니와 친구보다도 더 한없이
따뜻하고 무덤덤한듯 섬세한 그 위로가 나를 얼마나 많이 울게 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당신 책을 읽고 그동안 내 스스로 나에게 쥐어줬던 죄들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힘들더라도 하하 하고 웃으며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스스로 잘못임을 깨달아가며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방황합니다. 어린시절 철모르고 유명인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를
타인의 연기를 통해 구체화된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꿈꿨던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비록 과거의 나는 비전과 재능이라는 장벽 앞에서 도전도 해 보지 않고 주저앉았지만
유죄가 아닌 무죄가 되기 위해 뒤늦은 방황을 통해 몸부림이라도 쳐보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이
내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적어도 작가님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내가 아직 가능하다는 것과 따뜻했다는 것과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정말 아무것도 아닌 현실을 염세와 비판과 부정으로만 판단하던 이 유죄를 깨닫기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