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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날들 -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시간
김신회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2010년에는 스스로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중 첫 번째는 단연 독서에 대한 내용. 1년 365일 동안 책 100권 읽기, 다만 그 모든 책들에 대해 서평을 꼭 쓸 것 그리고 시리즈물은 한권으로 취급할 것. 태생이 워낙 한가지에 오래도록 집중을 못 하는 체질이라 책 한권도 꽤 느릿하게 읽고, 한 번 펜을 들면 빠르게 해결하지만 그 펜을 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내가 세워놓고도 ‘과연…?’이라는 의문을 품었던 바로 그 계획, 그 안에서의 첫 번째 타자가 바로 이 책이었다. <가장 보통의 날들>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하는 도서 배너를 이것저것 클릭해보다 우연히 흘러들어간 페이지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근래에 에세이·산문집·여행기에 푹 빠져있다 보니 우선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마치 10년 후의 내 모습일 것만 같았던 저자 소개 코너였다.
(저자, 김신회) 일 년에 아홉 달쯤 일하고 석 달은 여행을 떠나며, 여행을 떠나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낸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에겐 부러움을 사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자유로워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정작 스스로는 통장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나는 이 부분에서부터 이 책에 이미 온 맘을 뺏겨버렸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책의 샘플 예문부터 추천사, 출판사 서평까지 모조리 읽어치웠다. 식사를 할 때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느라 굽은 허리가 필 줄 모르는 우리 조부모님을 생각하며 쌀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모습과 같이…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페이지를 읽어내려 가며 “지금 당장 사버리자”라고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단서. 재작년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알게 됐고 그 이후로 때 묻지 않은 맑은 음색에 푹 빠져버린 가수, 요즘은 홍대 여신으로 잘 알려진 요조yozoh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는 사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여자들의 소박한 삶을 여행이라는 소재와 함께 써내려간 매력적인 여행기’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그녀가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죄다 써버렸기 때문에 통쾌하면서도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드는 거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적당한 규모의 동지들이 모이게 된다면 난 홍대 근처에서 ‘우리는 어쩐지 분하다!’라는 피켓을 들고 데모를 벌일 것이다. 단, 작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아, 이것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라며 맥주 한 잔씩 돌린다면 분노를 가라앉히고 화해의 악수를 청할 용의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요조yozoh (뮤지션)
이렇게 부푼 기대를 한 움큼 던져줌으로써 말라가는 고학생의 지갑을 또 다시 열게 만든 이 책은 제목에서 주는 느낌만큼이나 유별난 임팩트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책을 구매하기에 이른 나의 결심을 후회하게도 만들지 않았다. 그저 아주 보편적인, 사소한, 일상적이고도 흔하디흔한 이야기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해서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고도 눈치 채지 못하는 그런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요조yozoh, 나는 그녀의 청아한 음색이 참 좋다. /사진출처 (☞ http://club.cyworld.com/yozohschool)
나는 정말 이런 책이 너무나 두렵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결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책임감 하나로 일상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나라고 외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당장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이대로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처참한 기분. 여행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없이도 무작정 발걸음 닿는 곳으로 나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온 맘 가득 안겨주는 그런 책을 또 한권 만나버렸다. 그것도 신년 첫날부터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요즘 에세이·산문집·여행기 장르의 책들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덕분에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들의 소박한 문체도 꽤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방송작가를 직업으로 갖고 있다. 이런 장르에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 아마도 이 책이 나에게 준 유일한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새해에는 약 5개월간 맡아오던 업무가 끝나버려서 졸지에 월급이 반으로 뚝 줄어들게 되었다. 당장 다른 일을 구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 공백 기간을 메우려면 이번 달은 꽤 촉박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좌불안석,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다. 아.. 나도 당장 요조여신과 함께 홍대 어딘가에서 저자를 향해 시위라도 펼쳐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