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차저차해서 인터넷 소설 한 권(☞ 서평보기)을 주문해서 읽은 일이 있다. 그냥 가볍게 읽어보려고 구매했던 책이지만 덕분에 문득 고3시절 기억의 단편이 한 자락 떠올랐다. 관내에서는 그래도 대학 진학 성적이 꽤 좋은 학교답게, 3학년 학우들에겐 특별 단체 열람실을 제공하던 우리 학교. 그 열람실에서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관리하는 선생님들을 피해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완전 몰입해서 읽었던 또 하나의 로맨스 소설 <신데렐라는 없다>. 이제 와서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제목은 <신데렐라는 없다>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만난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더 극단적인 신데렐라형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아아 반어법의 미학!”이라며 나를 푹 빠지게 했던 책이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문득 학창시절 설레는 가슴을 끌어안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면 나도 이런 영화같은 사랑을 경험해 볼 수 있겠지?’라는 공상에 빠졌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지 그 기억 하나를 되새겨 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구매해버렸다. 결국 뒤늦게 후회했지만‥ 또 이렇게 복잡한 여정을 거쳐 두권이나 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다 읽었지만 결론은.. 역시 인터넷 소설이라는 것. 주인공 이름이 잘못 쓰이는 맞춤법 오류나 픽션에서 맛볼 수 있는 온갖 극적인 상황은 다 연출해놓고 정말 극적으로 훌훌 해결되는 억지설정은 근래까지 날 지치게 했던 인문학 도서들로 다시금 손을 뻗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또 한가지는 당시 호기심 많던 여고생들 사이에서 “야 이 책 꽤 야하다는데~?”라는 이유로 친구에게 추천받아 달뜬 마음으로 혹 누군가에게 들킬 새라 부랴부랴 읽었던 책이기도 했다는 사실..... (다시 읽으면서 꽤 당황했다.) 현대판 신데렐라의 비극을 다룬 소재 중 가장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 <유리의 성>/ SBS 방영 나는 개인적으로 신데렐라물을 좋아한다. 남들이 아무리 개념 없는 된장녀들의 헛된 몽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왠지 모르게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 같은 동화 속 왕자님들을 극이나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은 언제 경험해도 설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작년에 들었던 한 전공수업에서 “어떤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남자가 재벌 2세였어요.” 이런 얘기는 결코 없다고, 그네들은 자기네끼리만 어울리지 너희 같은 애들한테는 관심도 없으니까, 책 많이 읽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던 한 교수님의 독설도 생각났다. 아주 오래도록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인터넷 소설을 주로 연재하는 작가들과 그냥 일반적으로 불리는(하지만 주로 멜로물이나 칙릿을 쓰는) 소설가는 뭐가 얼마나 달라?” 라고.. 나는 그 물음에 이러저러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전문성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글을 쓰고, 그 안에 사용되는 어휘를 나열하더라도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글을 쓰고자 하는 나도 이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 이 정도의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굳이 구매해서 본 것의 효용은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