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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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초, 명절, 신년 같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책을 약 닷새간 마음 졸이며 읽었다. 최근에 한 작가님의 물음 덕분에 내가 책을 읽는 습관을 되짚어 본 결과 '앞표지→뒷표지→뒷날개→앞날개→그리고 1p 부터 차근차근' 의 순으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언제나 한결같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스포를 당하고, 이미 이야기의 큰 맥락을 알고 시작해서 조금 김이 빠지거나 오히려 더 힘들게(이번처럼) 책을 읽는 경우도 생기긴 하지만, 묘한 강박증에 의한 습관은 쉽게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번처럼 강렬한 경험 이후에도 그럴 맘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뭐 사실 이 책은 표지에서도 많은 내용을 다 드러내고 있지만, 그만큼 뒷 표지에도 이야기의 큰 맥락이 그만큼 다 제시된다. 물론그 사건의 팩트가 이 책의 중요점은 아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곧 납치당하게 될 것을 알고 시작해 이후 8년의 시간(3096일 동안) 그 곳에서 버텨나갈 것들을 모두 인지한 상태에서 그 앞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버거웠다. 도입부의 사소한 모든 구절이 모든 감각을 긴장하게 했고, 그래서 책장을 넘길때마다 무서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중요점은 '사건' 보다는 '그 사건 속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근에는 미드 중 정신과 상담의의 비중이 크게 차지하는 시리즈를 접하고 있어서였는지 소녀가 바라보는 가족, 세상, 범인, 그 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고, 모든 상황의 배경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추론하는 것이 결코 이전처럼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북트윗을 하고 싶었던 구절에 다트를 꽂아둔 모습. 책을 다 읽자 다트 케이스의 바닥이 다 드러날 정도였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나는 밤잠을 설쳤고, 마음이나 감각 뿐만 아니라 몸까지 아팠으며, 순간순간 심하게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쉴새없이 희노애락이 바쁘게 교차되는 감정들과 온갖 복잡한 심경에 속이 매스꺼울 지경이라, 앞으로는 이런 류의 논픽션은 쉽게 집어들지 않겠노라고 거듭 다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감상의 나열들이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초에 결코 어울릴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초에 읽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고, 근래에 여러가지 다른 책,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궁금해했던 인간의 근본적인 기질이랄까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일정 부분은 해소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고민하게 만들어준 책이기도 했다.

책 후반부에 와서는 지난 봄에 읽었던 <7년의 밤>이 생각나는 책이며, 그만큼 힘든 책이라는 감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재밌게도 두 책은 같은 출판사의 책이다. 더불어, <체인질링>, <어둠 속의 외침> 같은 영화나 <다이어트의 여왕> 같은 소설도 함께 떠올랐다. 읽는 동안은 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또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이 시점에서는 그 어떤말도 쉽게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아마도 논픽션이 주는 힘겨움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일 쯤에는 저 많은 책 속 구절들을 다시 정리하다보면 내 맘과 생각이 아주 조금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란 막연한 기대감만 남아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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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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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포스팅이다. 어쩐 일에선지 시험기간부터 포스팅 뽐쁘가 확 올라서 하루에 2개 3개씩도 막 업데이트를 하다가, 연말 부터 갑자기 그 기운이 훅 사그라들어 해가 바뀌고 이제사 첫 포스팅을 하게 됐다. 하필이면 신년부터 겪은 집안의 큰 사건 때문에 더 경황이 없고 어떤 생각의 여유를 가질 여력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연말에 페이스북에서 운영중인 독서 그룹(링크) 에서 이 책을 토론 주제로 삼은 후에 급하게 무기력해진 느낌이 있었달까. 토론이란 것을 본래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번을 계기로는 참 여러모로 생각의 전환을 겪었던 것 같았다. 여튼 2011년의 내 마지막 독서 <나를 보내지 마>가 바로 그것이다. 


지인이 추천해 준 도서였다. 왠지 모르게 제목만 보고 병원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처음엔 시한부 인생, 그런 느낌으로) 책 소개를 앞 뒤 표지에서 훑어보니 아주 관계가 없는 내용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말 생각보다도 많이 무심하게 읽기 시작하다가 토론을 통해서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진 책이기도 했다. '이래서 다른 사람과의 의견 교류가 중요하구나'라는 느낌을 갖게도 해줬고, 근래에 받은 질문 중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중 어느것이 '약'이겠느냐? 라는 물음도 연달아 떠올리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관련 작품으로, 책을 원작으로 한 동제의 영화와 같은 소재를 다룬 <아일랜드>를 바로 보려고 구해놨는데, 앞서 말했듯 연말-연초로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책만 이제사 겨우 마무리짓고 읽는 순간순간 눈을 붙잡았던 주요 구절을 겨우 한 번 정리해 둔 상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스토리를 따라잡고 토론이 진행되면서 들리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느낌이었지만, 주요 구절을 다시 한 번 훑어보니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참 염세적인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됐었다. 


 

2010년에 개봉했던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한 장면, 포스팅을 위해 캡쳐하고자 화면을 넘기다 순간 멈칫, 해 버렸다. 


토론의 소재는 참 많은 책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앞으로의 토론에서 어떤 책을 택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도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깊어졌다. 황우석, 줄기세포 논쟁, 도덕, 윤리, 정의란 무엇인가, 생명존중, 번역과 편집의 문제(^^;;), 인간의 한계, 학습효과 등 이 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의견을 나누며 나왔던 주요 키워드이다. 분명히 '복제인간'을 통한 '근원자(책 속에서 사용된 단어)'의 생명 연장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윤리 밖의 문제인데, 그렇다고 단순히 그것만으로 No!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었던게 이 책이 지닌 궁극적인 매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전문학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에서 003번으로 나온 출간서이다. 편집 위원들은 '고전이 과거의 책이라는 편견은 불식되어야 한다. 현재 가장 생생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젊은 고전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라는 말로 이 시리즈의 의의를 말한다. '고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때, '모던 클래식(젊은 고전)'이라는 명칭으로 나온 이 책의 의미와 전개에 대해서는, 아마도 올해가 끝나는 순간까지 거듭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내가 알 수 없고 상상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모태 음모론자지만, 그래도 이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에 대한 다수의 인식과 규칙은 점차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고전이 존재하고 대접받아야 하는 큰 이유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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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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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서양각국사' 라는 과목의 학기 과제로 읽기 시작해서, 후반부 100쪽 정도를 종강 이후에 어렵게 마무리 지은 책이었다. 타임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던 '박노자'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으로 '러시아에서 살아봤다'는 표현 하나 때문에 막연하게 일제 말기쯤 태어난 엘리트 집안의 여성 진보 운동가(& 학자, 근데 이런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했던 터라 생각보다 젊고, 게다가 귀화 외국인에, 우리보다 우리나라를 더 잘 아는 진짜 별난 사람이라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저자 소개 항목에 '춘향의 나라'에 대한 동경을 갖고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하필이면 그 유명한 박노자씨의 책 중 첫 선택을 <하얀 가면의 제국>으로 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여겼던 부분이기도 했다. 어떤 특정한 시각의 치우침 보다는 '두루 다 비판하여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 (물론 박노자씨 성향 자체가 치우침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나라들은 한번씩 다 살뜰하게 까발림(?) 당하고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는 맥락에서)이 참 좋았다. 


책을 마무리 할 때 쯤, <미션 임파서블 4>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크렘린 궁. 사진은 궁에 있는 바실리카 성당.
왠지 모르게 게임 속 한 장면이 연상된다 했더니, 테트리스의 배경 화면으로 사용된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책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상대를 아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세계사적 보편성'아래 많은 닮음과 반복을 바탕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 이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느 시대의 일들이, 몇 세기를 돌아 또 다른 대륙에서 소재만 조금 바뀐 양상으로 또 다시 재현되고 하는 것 등등. 그리고 '너와 나는 다르다' 라고 하는 것 부터가 사실은 상대를 '타자'화 하는 각양각색의 '가면'을 쓰는 행위의 시작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이 책이 비록 2003년 이라크 전쟁 전후로 쓰여진 글들을 모았다고는 해도, 최근에 선물받은 <달러제국의 몰락>과 어느정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으며, 앞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던 '서양각국사'라는 전공 과목 시간에 알게 된 에드워드 사이드와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책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해 주어 여러모로 요긴한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려거든, 우선 그것을 자세히 알고 난 후에 시작해야 한다-는 다짐을 더욱 확고하게 갖게 해 준 책이기도 했다. 막연하게 '그건 이러이러하니까 그럴거야'라고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에 대한 인지.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사람사는 이야기며, 사람이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것들 까지. 지나온 2년 하고도 조금 더 되는 시간동안 트위터에서 스쳐지나가듯 봐 온 모든 것들이 불쑥 불쑥 떠오르며, 이 사람 '박노자' 라는 인물에 대해 한 번 제대로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직은 나 역시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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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6 세트 (묶음)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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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성은 이전부터 익히 들었지만, 올 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 비치된 책을 한가한 시간에 슬쩍슬쩍 보다가 이후에 드라마 버전도 겨우 보게 되었다. 그나마도 시즌 1을 한달에 한 편 정도(편당 20분 정도의 짧은 극임에도), 이따금 생각날때 보던것이 이번 시즌2가 완결이 되고 나서야 1에서 남은 반 정도의 분량과 시즌2의 전편을 순식간에 후다닥 몰아 보게 했다. 학기 중이라 여유가 안났던 탓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다큐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한국인의 밥상'처럼 보는 내내 솟구치는 식욕을 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체가 아님에도 이상하게 이 만화는 뭔가 '자극적'이었다. 단편단편 끊어지는 옴니버스보단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전개되는 서사를 좋아함에도, 이 만화는 이상하게 뭔가 '중독적' 이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시즌 1에선 '배가 고파져서' 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도 초반에 미묘하게 겉도는 느낌이 들다가,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시즌 전편을 완주하고 다음 시즌의 중간 지점에 와 있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머그컵에 담아서 앞에 두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헤실헤실 웃다가, 또 심각해져 인상을 찌푸리다가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히트를 치고 난 뒤, '우리나라엔 이런 곳 없나'라고 읊조리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부쩍 늘었다. 최근에는 (이 책이나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논현동 막집 이라는 곳을 알게되어 그나마 가장 흡사한 느낌에 꼭 가보리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 (논현동 막집 리뷰 보러가기 ☞ 클릭) 아마도 내가 추천하는 맛집이라면 군소리 없이 어디든 따라나서는 10년지기 절친과 함께 2012년의 첫 신년회를 이 곳에서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드라마와 만화 모두 '심야 정독(정주행) 절대 금지' 작품이다. 항상 만화 원작의 드라마를 추후에 보면, 만화에서 기대했던 상상 이상의 무언가들이 충족되지 않는 아쉬움을 느꼈는데, 이번 <심야식당>만은 그런 것과 별개로 또 매력이 담뿍 묻어나는 드라마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나저나, 책을 알바 하는 곳에서 본 터라 지금까지 나온 8권 모두 빨리 사야할텐데.. 새해가 오는 즉시 '휘문이가 휘문이에게'를 또 한번 시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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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시간 1~3 세트 - 전3권 - 여름방학편
노란구미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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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즐기며 천천히 보겠다던 나머지 두 권도 결국 주말에 다 읽어버렸다. 한 번 펼치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용은 아니었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1권 리뷰) 결코, 주인공 남정네들이 훈훈해서 그런게 아니란 말이다!;;;


앞 선 리뷰에서도 썼듯이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진짜로 원하는 길'에 대한 끝없는 고민 등 딱 지금의 내가 봤어야 할 시기의 내용 (게다가 달달한 연애직전의 이야기) 이라서 대사 하나하나에, 상황과 표현 모두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책이라는게, 필력이나 소재 글을 풀어내는 솜씨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두루 중요한 컨텐츠지만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후한 평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는 그 책을 읽는 시기나, 독자의 성격, 상황, 태도 등등 여러가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들이 반영되는데, 내가 이 책을 지금 이 순간에 집어든 것은 조금 오바를 더해서 '운명' 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한달쯤 전, 책을 집에 들여온 그 순간에도 조급함을 느끼지 못했고, 얼마 후 만난 친구의 추천사를 듣고도 큰 감흥이 없다가 바로 지금 이 순간 하필이면 지난주에 왠지 모르게 손을 뻗어 펼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2년만에 설렘보다 더 큰 두려움을 안고 복학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1년을 후다닥 흘려보내고, 이제 방학을 맞은지 딱 열흘쯤 지났다. 그런데 고작 2주도 안 된 그 전까지의 일들이 너무 아득해서 마치 '내가 어린시절엔 말야…' 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된 기분으로 기억을 더듬거리고 있는 중에, 그 아련한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학교와 학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딱히 그 고민의 방향이나 해답이 뚜렷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재학 3년, 휴학 3년의 길다면 긴 시간을 좀 흐리멍텅하게 살다가 이틀간 서너시간에 걸쳐 읽은 만화책 3권에 의해 아주 오랜만에 진지하게 지나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1년여)을 곱씹게 된 것이었다. 앞으로 내 방향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책 속 주인공들 -성훈, 히나, 준호-은 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치만,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이 너무 헛된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막연하게 심어준 것 같아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같이 성장해 가고픈'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라서 덕분에 즐겁고 이전보다 조금은 더 충족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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