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열화당 미술책방 5
모리스 세륄라즈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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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술사, 인상파

 

자신의 주관을 지켜가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기존의 인습을 비판적으로 용기 있게 검토하며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시도한 미술가들에 의해 이끌려 온 19세기 미술사는, 15세기의 피렌체, 17세기의 로마를 거쳐, 파리에 그 주요 무대를 두고 있다. 즉, 이 시기의 전세계의 미술가들이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미술의 본질에 대한 토론에 함께 하기 위해, 또한 당대의 내노라 하는 화가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파리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기 프랑스에서 펼쳐진 회화의 한 유파인 인상주의는 그 주제와 기법, 그리고 속해있는 화가들의 발전방향에 따라서 여타의 다른 유파들과 차이점을 가진다. 또한 그 영향력은 회화에서 시작하여 음악․ 문학 분야에까지 이른다.

다시 말하면, 인상주의란, 감각적으로 느낀 인상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묘사하려는 회화적 체계이며, 인상파 화가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규칙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에 따라 대상을 재현하는 화가라 정의된다.

 

’인상파’ 명칭의 유래

출품된 모네의 작품 《인상일출(日出)》이라는 풍경화의 제목을 보고 한 미술기자가 '인상파 전시회'라고 하는 다분히 조롱 섞인 기사를 《샤리바리》에 실은 것이 '인상파'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인상파의 그룹전은 세상의 몰이해와 싸우면서 1886년까지 전후 8회에 걸쳐 열렸는데, 1877년의 제3회전부터는 그들 자신도 '인상파'라는 명칭을 사용할 만큼 이 명칭은 일반화되었다.

 

ㅁ인상주의의 주제

인상주의는 대상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종래의 전통 미술의 주장을 거부하고 회화에 있어서, 색채나 상상력을 강조한 외젠느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와 아름다운 효과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좀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에 이어,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와 그의 친구들이, 인습에 구애 받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계의 탐구에 몰두하려는 시도로 채색에 있어서 과감하게 도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세기 전의 사실주의 화가들처럼, 종교나 신화, 역사에서 등을 돌리고, 특히 당 시대의 풍속과 초상·정물 등의 시민적 장르, 주변의 흔한 풍경 등을 주제로 채택하였다.

그들은 옥외에서 자연을 볼 때 각 대상들이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개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눈에서 혹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뒤섞여 훨씬 더 밝은 색조의 혼합물로 보인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눈이 적절한 암시를 받으면, 거기 있을 거라고 믿어지는 대상들을 엮어 가면서 저절로 전체 형태들을 인지시켜 내는 것을 알고 색채와 형태의 흥미로운 구성과 양지와 음지의 즐거운 대조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햇볕을 받는 부분은 사물의 원래의 색채보다 훨씬 더 밝게 보이며 그 그림자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색조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ㅁ인상파의 기법

회화에 있어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종래의 원칙들을 버리고 있다. 즉,‘품위 있는 주제’며, ‘균형 잡힌 구도’, ‘정확한 소묘’보다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 화가 자신의 감각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         색의 분할과 시각혼합작용: 검정색, 회색, 갈색 계통을 배제하고 청색, 녹색, 황색, 오렌지색, 적색, 보라색 계통을 시각적 혼합방식에 따라서 사용하려 했다. 즉 팔레트 위에 물감을 섞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색을 각각 캔버스 위에 병치 시킴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색이 배합되어 보이도록 하는 방법을 썼다. 예를 들어,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색의 작은 터치를 나란히 포개 놓음으로써 보라색으로 보이게 했다. 이러한 방법은 태양광선의 색의 혼합이 실제 물감의 색의 혼합과는 다른 결과물을 나타내준다는 과학적 사실과 각 색깔은 그 주위의 공간을 그 색의 보색으로 물들이며 그림자를 형성한다는 물리학자들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이러한 원칙들을 딱딱하게 방법론적 이론으로 삼아 적용하는 것을 피했다.

-         구도: 사진의 영향을 받아 시야를 네모난 틀로 잘라내는 식의 대담한 구도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스냅샷과 같이 진행중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일본의 목판화 유끼요에의 영향으로 평면적이지만, 선명한 색채감과 함께 유동적인 구도를 주는 방법 역시 유행하였다.

 

ㅁ인상파 화가

인상파화가들은 재능과 기질면이 서로 다르듯이, 화풍에 있어서도 결코 한결같지는 않았다. 모네, 피사로, 시슬리 등이 그 중에서도 인상파의 작풍을 가장 잘 나타낸 작가들로 알려져 있으나, 그들도 역시 시기에 따라 화풍이 변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상파화가들이 유형적인 아카데미즘에 반항하고 어떤 관례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찰과 기법으로 밝고 미묘한 대기(大氣)의 인상을 묘사하는 데 전념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화가들로는 대장격인 에두아르 마네와 까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베르뜨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끌로드 모네, 폴 고갱, 알프레드 시슬리, 오귀스뜨 르누아르, 폴 세잔, 조르쥬 쇠라,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드 뚤루즈 로트렉 등이 있다.

 

ㅁ인상파의 음악과 문학으로의 영향

“나는 감각을 통해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지드의 말을 문학가와 음악가 역시 받아들여 인상파 화가들의 뒤를 따랐다. 끌로드 드뷔시의 <봄(1887)>에 대해 <형식의 경시와 색채성의 과대평가>를 비난하기 위해 언급되었지만, 곧 이러한 부정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음과 음향을 모든 형태로 분할하고 해체시키며 감각적으로 특색있게 재현한 이러한 양식이 인정 받기 시작했다. 문학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앙드레 지드나 마르셀 프루스트에 이어, 독일에서도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독일의 인상주의 작가들은 극도로 정교한 언어와 세밀한 표현을 강조하는 개성적인 문체를 특징으로 하였다. 또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이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서정시에 보다 적합하였다. 이러한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가로는 R.M. 릴케·R. 데멜·H.V. 호프만스탈 등이 있다.

 

ㅁ인상주의의 의의

미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근대적 감성의 해방운동이자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옮아가는 중요한 교량이며, 서유럽의 사실주의 미술의 마지막 단계로, 20세기 예술을 향한 중요한 거점이다.

인상주의적 관점이 기존의 화풍에 정면으로 대립함으로써 당시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으나, 소수 화가들 중, 모네와 르누아르와 같이 충분히 오래 산 작가들의 경우, 12년동안의 악전고투 후에, 전 유럽에서 유명하여지고 존경 받게 되어, 새로운 미술 운동을 일으키려는 혁신자들에게, 일반 대중나 비평가들이 새로운 방법을 인식하고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후에 그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용기를 주고 있다.

 

 

 

이상, 나름대로 정리해 본 인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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