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숨결을 맛보다.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나를 부르는 숲>은 나를 대자연의 품으로 끌어 들였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어쩌면 빌 브라이슨의 재치와 위트를 맛보리라 기대했던 것 같은데, 그보다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내뿜는 당당한 위용과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물론 눈으로 보지 않고, 그저 활자로 생생한 체험담을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미국이라는 광대한 나라에 자리한 애팔래치아 산맥을 짧은 시간이나마 여행할 수 있었다는 게 즐거웠다.  나같이 등산같은 동적인 활동을 심히 꺼리는 인간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행서적이었다고나 할까?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곰에 관한 여러 사건담은 오싹했다. 곰에게 습격받아 죽은 사람들, 또 곰의 습격을 간신히 피해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간담이 심히 공포스러웠다.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산맥을 오르다 곰에게 당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면서도 등산을 결심하는 장면은 조금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위험이 빠진 모험이란 없지 않은가? 빌은 알코올 중독 경력이 있는 친구 카츠와 애팔레치아 트레일 종주를 결심한다. 그의 사전 준비담은 꽤나 재밌었는데, 등산용품을 구입하거나, 관련 서적을 읽는 그의 모습은 자못 유쾌하고 진지했다.

 빌과 카츠는 종주를 시작하고, 그들은 숲길을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땀이 흐르고, 지치고 피곤해했으나 어느새 걷는 데 이력이 난 그들은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사랑하게 된다. 때로는 험한 길과 난폭한 날씨와 낯선 동물들과 특이한 인간들을 만나 애먹기도 하고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마다 상황을 슬기롭고 적절하게 헤쳐 나간다. 문명과 단절된 숲속의 생활에 푹 빠져 들기도 하지만, 금세 마을에 내려가 맛보는 소다수와 치즈 햄버거에 사족을 못쓰는 그들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어느새 그들은 애팔래치아 산맥에 어울리는 산사람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들은 문명화된 생활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한다. 그러한 빌과 카츠의 심적 변화와 동요는 출렁이는 그래프를 그린다. 그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빌과 카츠는 왜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걷기로 결정한 것일까? 책에서는 구체적인 목적이나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신이 빚은 거대한 자연에 몸을 내맡긴 그들의 결정은 일견 어리석게도 보이나, 그들은 등산의 과정을 통해 진정 자연속에 속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이기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힘든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하나씩 쌓아간다. 물론 끝까지 트레일을 완주하지 못하고 30%가량만을 걷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들이 트레일을 걷고 또 걷는 풍경은 내 뇌리속에 인상깊게 박혔다.

 빌과 카츠는 트레일 종주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삶의 변화를 꾀했다. 또 자연의 숨결을 깊이 맛보고 문명화된 삶의 안락함이 전부가 아님을 실감했다. 그리고 산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함으로써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었다. 빌과 카츠가 더욱 친해지고 더욱 사랑하게 됐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여행함으로써 대자연의 숨결을 깊이 들이 마셨다. 나도 훗날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걸어 보고 싶다. 그 길이 나에게 안겨 줄 많은 선물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