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는 내내 날씨도 꾸무럭했다. 찡찡한 표정의 하늘에서 비까지 내려 음산한 분위기는 고조되고 괜히 내 마음까지 잿빛으로 무거웠다. 서경식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행해진 세계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후 만들어진 '디아스포라'들의 비극적인 발자취를 따라 여행한다.  서경식 자신도 재일조선인이라는 일본 내에서의 이방인이자 소수자라는 자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이라는 나라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관계로 조선어와 조선문화를 박탈당해야만 했던 자신의 한스러운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드러난다. 자신이 디아스포라였던 관계로 늘 소수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시선을 기울였던 그의 내면이 비추어 진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신의 아픔과 비극을 위무하고 치유하듯 여행을 떠난다.

 서경식은 런던, 광주, 카셀, 브뤼셀, 오스나브뤼크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그것은 관광을 위한 여행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찾은 도시에서 그 사회의 디아스포라들의 흔적과 체취를 찾아 나선다. 그는 주로 디아스포라 작가나 화가들의 예술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의 고뇌와 비극을 반추한다. 그러한 과정에 이미 개입해 버린 독자인 나는 역사적, 정치적 비극의 희생자들인 그들의 삶에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 사회의 소수자이자 이방인이 감내해야만 하는 차별과 불편은 그들의 영혼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들 중 다수는 처절한 죽음을 당하거나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살아 가면서 겪는 아픔과 고뇌 그리고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식민지배로 인해 조국을 떠나 유랑하는 여러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민족들의 삶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과거 역사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가감없이 보여 준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들의 신산한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들의 고뇌와 아픔은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추방당한 자들, 아니 버려지고 내쳐진 존재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차별과 탄압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자가 어찌 디아스포라들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다만 이 책을 통해 역사 속에서 소수자일 뿐인 디아스포라들의 비극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사회의 야만성과 잔혹성 그 폭력성에 눈뜨게 되었다. 자신의 뿌리, 정체성, 문화, 모어를 상실하고 한없이 유랑하고 떠도는 여러 민족들과 개인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한 열린 관심이 필요하며 그들을 옥죄는 불평등과 차별을 철폐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자신 역시 디아스포라인 서경식의 글이어서일까? 그의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어조와 생각이 묻어나 조금은 인간 존재와 인간 사회에 대해 절망하게도 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우리 앞에 펼쳐 놓은 것일까? 왜 우리 앞에 그들의 삶을 부활시킨 것일까? 우리는 차별과 불평등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어쩌면 자신의 존재 외에 다른 존재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제발 눈을 뜨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제발 고통받고 아파하는 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건조하고 냉철한 어조로 그는 말하지만 그의 영혼엔 활화산처럼 신념과 열정이 들끓고 있으리라. 

 이 책은 비극적인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그러나 그 역사 앞에서 말살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되찾자고 조용히 부르짖는다. 우리는 이미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 목소리에 응답해야 하고, 잘못된 역사와 과거를 바로 잡아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그것이 야만과 잔혹으로 얼룩진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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