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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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의 전작인 '심청'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바리데기' 역시 '심청'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고전 속 인물을 모티프로 한 점이나, 심청과 바리가 모두 개인적, 사회적 운명에 휩쓸려 먼 길을 떠난다는 점이나 상당히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그러나 '바리데기'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의 한 개인인 '바리'에 집중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리데기 무가' 속의 주인공인 바리는 처음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훗날엔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사약을 찾아 떠나는 인물이다. 온갖 고행을 견딘 후에 불사약을 얻어 아버지를 되살린 바리데기.

  소설의 주인공도 '바리데기 무가'의 바리공주와 같은 인생역정을 산다. 북한의 가파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집안이 몰락하고 힘들게 중국 쪽으로 도망친 바리. 바리는 마사지 기술을 익혀 차근차근 삶을 일구어 나가는 듯했으나, 또 운명의 힘에 쫓겨 영국으로 팔려가게 된다. 무거운 빚을 지고 밀입국자로 살아가는 바리.  출중한 마사지 기술로 빚도 다 갚고, 좋은 이웃도 생기고, 평생의 반려인 알리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이렇듯 짧게 요약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바리는 신비하고 영험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마사지를 하는 도중 마사지 받는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신내림을 받은 듯 사람들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바리는 사람들의 아프고 가팔랐던 과거를 위무해 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세상을 폭력과 전쟁의  야만 속에서 구원해 낼 희망의 능력은 아닌지....

  일견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던 바리의 인생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남편 알리는 아프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동생을 찾아 떠나 소식이 끊긴다. 또 딸 순이는 어린 나이에 생을 등지게 된다. 런던이라는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냈나 싶었더니 그것은 모래성처럼 가뭇없이 스러져 버린다. 딸의 죽음과 남편의 실종 앞에서 고개가 꺾인 바리.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소명, 자신이 찾아내야 할 불사약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아프간으로...소설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아우르며 바리의 개인사 내에서 그것들을 촘촘하게 직조해낸다. 세상의 온갖 폭력과 전쟁, 야수와 천사의 두 얼굴을 한 인간들의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 작가가 바라는, 보여 주려는 희망의 카드는 무엇인가? 한없이 약하고 약해서 쉽게 꺾여 버릴 듯한 한 여인, 바리를 통해 우리가 찾고, 바라야 할 희망은 무엇인가? 진정 희망은 있는가?

  폭력과 야만의 세상에서도 사람의 연약함을 끝없이 위로하고 쓰다듬는 바리의 손길, 바리의 마음, 바리의 눈물, 바리의 사랑, 바리의 끝없는 염원이 응축된 그 모든 것이 아마 생명수가 아닐까? 그것이 아마 불사약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그 한없이 크고 따스한 바리의 마음 속에 우리 모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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