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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1 - 1부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원작, 요코야마 미쯔데루 극화,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역사의 책에서 난세의 장을 접는 영웅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나다.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히 난투하다 붉게 피어오르고 산화하는 장정들의 이야기는 때때로 고혹적이기 까지 할 정도로 아름다우며, 시대를 평정하기 위한 영웅의 뜻은 위대하다. 진흙에서 피어오르는 연꽃같은 수많은 생명이 뒤엉켜 싸우며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어떤 이야기보다 극적이다. 그래서 삼국지나 초한지, 수호지를 읽을 때면 밤새 불을 밝히고 읽어도 동이 트는 것을 모를 만큼 푹 빠져들곤 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에게는 야마오카 소하치 원작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이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대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많다. 전국시대를 평정하는 가장 유명한 세 영웅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이 이야기책의 재미는 감히 삼국지에 비견할 만 하다. 하지만 일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완역본은 32권에 이를 정도로 긴 작품인데다가,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 쉴새없는 전쟁통에 등장하는 지명, 관직명 등 고유명사도 낯설다. 역사 교육에 있어 일본의 비중을 그리 크게 두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기에 그리 좋은 책은 아닌 것이다. 동서문화사의 <대망>(원작의 1부에 해당하는) 역시 12권에 이르지만 설명은 적어 쉽사리 읽히지는 않는다. 요컨데, 처음 몇 권을 읽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사를 모르고, 지리를 모르며, 인물을 모른다고 읽지 않고 넘기기에 대망은 다소 아까운 책이다.
요코야마 이쯔데루가 그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은 아마도 이런 문제의 일시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철인 28호, 요술공주 세리(를 그렸다고는 해도 철인 28호와 요술공주 세리가 동일인의 작품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를 그린 요코야마 이쯔데루는 32권에 이르는 이 대작을 옴팡 줄여 13권 으로 만들어주었다. 심지어 "만화"로. 이 정도면 읽을만 하다, 라고 생각했고 받아보았다.
읽고 난 느낌은? 애초의 생각대로, 읽을 만 하다.
일단 만화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다. 사람의 이름이 여전히 낯설다고는 해도, 인물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아있으니 앞으로 돌아가 찾아보기도 쉽다. 문장을 읽지 않아도 되니 보기도 편안하다. 세세한 문장의 결을 느낄 수 없어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갖을 수 없다고 해도, 활자 세대의 사람에게 있어 아쉬운 점이라고는 해도,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 사람들에게 32권에 이르는 책을 읽어내라고 요구하기는 무리이지 않은가.
하지만 뭐라고 할까, 다소간에 아쉬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우리가 접하는 현대적 일본만화와는 작화의 스타일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월등히 차이나기는 하지만, 인물의 캐릭터도 잘 살아나 있지는 않은 느낌이다. 본격적인 전쟁신이 없어서 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동적인 느낌보다는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방대한 양의 축약 덕분인 듯 하다. 거대한 이야기를 줄이려니 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낼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연재의 초기에 작화가 불안정한 것은 흔한 일이니 문제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리 줄였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원작의 재미라는 것도 있으니 더더욱 기대할 만 하다.
p.s.그러나, 다른 역사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영웅에 의해서만 이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