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의외로 정식으로 읽어본 사람은 드물지 않나요^^* 사실 누구 말대로 고전이란게 다들 좋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읽어보지는 않은거잖아요. 말 그대로 다소 어렵기도 하구요. 국내 희랍어 원전 번역은 척박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전무했던 것이 얼마 전까지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읽는 수많은 그리스 신화집이라든가 희곡들은 희랍어에서 바로 번역되었다기 보다는 영어가 다른 언어의 번역을 중역한 경우이거나 혹은 토머스 불핀치의 저서를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조차도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대해서는 강대진 교수님께서 여러 기회를 빌어 수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물론 심심풀이로 읽을 바에야 괜찮지 않아,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심심풀이라도 제대로 된 걸 먹어야죠. 언제까지 아폴로 같은 것만 먹고 살겠습니까.
요즘의 경우에는 조금 사정이 달라져서, 당대의 저작들이 원형 그대로 활발히 번역되고 있습니다. 원형 그대로라면 어폐가 있겠네요. 희랍 고전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를 한국어로 향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되고 있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여기에는 천병희 교수님의 활발한 번역 활동의 비중을 간과할 수 없지요. 실제로 제대로 된 희랍어 번역들을 찾다보면 저자 "천병희"라는 서지에서 정말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뭐 거의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이 분의 활동을 거의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오이디푸스 왕"을 읽은 정도의 독서와 라틴어 수업중 들은 강대진 교수님의 강력한 추천 정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 교수님의 학적 태도를 볼 때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추천인 것 같아요(요즘 이 분의 저서도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희랍 희곡을 읽을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이 희곡들의 대부분이 당대에는 "다 아는 이야기"를 기분으로 해서 작성되었다는 것에 있을 겁니다. 때문에 웬만한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도대체 이 인물들의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힘들더군요. 프롤로그에서 시작하는 현대 소설과는 달리 어떤 사건의 중간부터 띡 시작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오이디푸스 왕도 마찬가지로 그의 출생 당시의 신탁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도입부 자체가 이미 오이디푸스가 시련을 이겨내고 왕이된 후, 국가에 재앙이 닥치는데서 시작합니다. (아...그랬던가...- -;;)
거기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희곡의 구조도 문제가 되지요. 때문에 다른 번역들은 대부분 산문으로 "재서술"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러스 부분, 이런 저런 말들이 중언부언 이어지는 코러스 부분을 읽는 것은 아주 고역입니다. 첫 부분은 정말이지...안습입니다. 당췌 이 것을 왜 읽는가 회의가 들 정도로 재미가 없고 힘겹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마치 장미의 이름의 첫 100페이지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지나면 굉장한 세계가 펼쳐지거든요.
단지 고전이라는 것을 떠나서 이 이야기의 재미는 별 열개를 주어도 부족합니다. 저는 문학을 잘 읽지 않는데도 그리 재미났으니 신뢰할 수 있는 점수입니다. 인물들의 얽히고 얽히는 관계라든가 비장함, 드러나는 비밀, 반전 등 재미의 측면에서도 희대의 이야기꾼 스필버그를 능가합니다. 품격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단순한 "고대 저작"이 아니라는 것은 아마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통해 해설을 해주잖아요...미도리 아버지한테도 그렇고...그런 이야기나 하면서 여자친구를 잘 만드는 것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요...거의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수준인데.
여하튼 간에 이 책의 포인트는 "처음을 견뎌내고","번역을 잘 선택하라"입니다. 일리아드에서 좌절하신 분들 도 재도전 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문예세계문학선 11)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ISBN 8931001681
소포클레스 비극/ 천병희 역/ 단국대학교 출판부/ISBN 8970922156
(두 번역의 차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것은 문예출판사 것이었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