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플라시보 > 1억이건 10억이건 출발은 적금 통장이다.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카드 돌려막기, 카드 연체 등등을 다룬 TV프로그램이나 뉴스를 보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기에 무지하게 찔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카드빚이 엄청나서 카드깡에 사채를 끌어다 쓰기까지 한 얘기는 마치 내 미래일것만 같아서 더더욱 보질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하게 보며 혀를 찬다. 왜냐면 나는 지금 신용카드도 없고 빚도 없으며 적금 씩이나 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자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은 적어도 돈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매달 카드값에 식은땀을 흘리고 비싼줄 알면서도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은행 잔고는 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혹은 그 이하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당당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야 말로 카드빚에 시달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매꿀 생각에 머리 터지는 사람들이 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착실하게 잘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돈을 불릴 수 있는 더 실용적인 책들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까지 자기 이름 앞으로된 적금통장 하나 없는 사람이라면 필히 봐야 한다. 왜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부동산이나 주식 혹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을 굴리고 불린 사람이 아니라 오직 적금만으로 1억을 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떼어내어 적금을 붓는것. 사실 그것 부터가 가장 기본적인 출발인 것이다. 저금 통장 하나 없는 사람에게 10억을 이렇게 벌었다느니 20억을 저렇게 불렸다느니 하는건 너무 먼나라 얘기일테니 무식하나마 안쓰고 아껴서 저축한걸로 돈을 모은 이 책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주인공과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무척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 우선 주인공은 방송 작가라서 일을 세 가지나 하는데 나도 한때는 세 가지를 했으며 (책의 저자는 그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번 돈을 몽땅 저축했지만 나는 몽땅 썼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 일중 하나는 저자처럼 방송쪽의 일이었으며 작가도 했더랬다.) 한달에 50만원 에서 6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쓰며 (저자도 혼자 살며 나도 혼자 산다. 저자의 월세는 20만원. 나는 19만원이다. 즉 우리가 순수하게 집값을 빼고 쓰는 돈은 30에서 40만원 정도가 되는 것이다.) 급여의 상당부분을 적금을 붓는데 쓴다는 것. 그리고 아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는 점 (저자는 27. 나는 28에 정신을 차렸으며 그 전의 소비행태는 거의 붕어빵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 무조건 점수를 많이 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 쓴 책인데 그 뉘라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으리오.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한때 소비의 여왕이었다. 나 역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주제에 백화점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았고 젊은날 펑펑 쓰지 않으면 언제 펑펑 써 보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경우에는 대학교 다닐때 워낙 가난하게 다녀서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돈을 내가 자급자족 하다 보니 거의 거지처럼 살았다.) 돈을 벌자 마자 맺힌 한을 풀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넌 30만원짜리 니트를 입어도 돼. 대학 다닐때 얼마나 없이 살았니? 그래 넌 한끼 식사로 8만원을 지불해도 돼. 대학 다닐때 라면만 먹었으니 말이야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소비를 하고 그게 가난하게 지낸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28이라는 기가막힐 나이였고 내 이름 앞으로 된 적금통장 하나 없었다. (저자는 저금 통장에 700만원이 있긴 했지만 빚잔치를 하고 나니 제로 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허접한 액수인 15만원에서 출발해서 점차 액수를 늘이고, 예전에는 쓸돈 다 떼어놓고 남는돈을 저금했는데 지금은 저금을 먼저 하고 남는 돈으로 어떻게건 한달을 살아간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2년 10개월 만에 1억을 모으냐고. 물론 나도 그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자는 월 수입이 400만원을 상회했으며 대충 450정도는 벌어들였다. 그래서 한달에 꼬박꼬박 400만원이 넘는 돈을 저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월 수입이 400만원이 안되는 사람은 그녀처럼 2년 10개월 만에 1억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럼 그렇다고 해서 포기를 해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월 수입이 100이건 200이건 아껴쓰고 모으면 언젠가는 돈이 모이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언제 돈이 모일까 했었는데 100만원이 되니 200만원이 되는건 더 금방이었고 300이 되는건 또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돈이 돈을 낳냐고? 아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체감이 그만큼 빨랐다는 것이다. 마치 국민학교 다닐때는 1년이 10년 같더니만 지금은 1년이 1개월 처럼 느껴지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사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나는 저자처럼 모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영양실조로 눈다래끼와 원형탈모증이 걸리고 영화한편 책 한권 사 보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건 좀 미련한 짓으로 보인다. 내가 이 책에서 끝끝내 동의할 수 없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저런 부분이다. 그녀의 경우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서울에서 살기 때문에 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와 똑같은 금액으로 한달을 살려면 훨씬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은 사람답게 살면서 모으기를 권하고 싶다. 책이나 영화볼 돈도 아끼면 그만큼 더 빨리 벌기야 하겠지만 한달에 문화생활은 5만원. 이런식으로 딱 정해 놓으면 큰 낭비라고 볼 수 없다. 차라리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좀 줄이는게 낫다. (돈을 모으려면 우선 사람들 만나는걸 줄여야 함은 나도 충분하게 공감한다. 어디 들어갔다 하면 2-3만원은 우습게 나가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5만원은 순식간에 깨어지는 그 상황을 되풀이하다 보면 정말 돈 못 모은다. 그깟 몇만원에 떠냐고 하겠지만 10원이 우습게 나가면 10만원도 우습게 나가는게 돈의 속성이다. 단 나는 그녀처럼 무조건 돈을 쓰지 않으려고 사람을 안만나지는 않는다. 내가 평생을 볼 친구들에게는 그들이 내게 쏘는 것 보다 허접한 액수나마 가끔 쏜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이 책을 아직도 적금을 넣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고삼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이렇게 치열하게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까 월급을 상회하는 명품 가방을 카드로 척척 긁는것은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리고 다만 얼마씩이라도 적금을 넣다가 보면 재미가 들려서 돈을 훨씬 즐겁게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내 친구 K양은 나보다 월급이 50만원 정도가 많다. 말이 50이지 내 생활비와 맞먹는 액수이다. 거기다 그녀는 나처럼 나와 살아서 치약 하나도 다 내돈으로 사야 하는 상황이 아닌 본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현재 카드빚이 있으며 매달 카드값을 막느라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적금통장이 없으며 월급이 들어오는 저금통장은 하도 정리를 안해서 한번 갈때마다 통장을 하나씩 갈아 치워야 한다. 그녀는 최신 핸드폰이 나오면 갈아 치워야 하며 길을 가다가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야하고 술값과 밥값은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그 결과 그녀는 갚아야 할 돈이 1천만원이다. 물론 그녀의 연봉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이긴 하지만 현재의 생활을 계속 해 간다면 갚기는 커녕 더 늘기만 할 것이다. 나는 결코 K양의 경우가 특수하지 않다고 본다. 내 주변의 많은 일하는 여자들이 K양과 같거나 혹은 더하거나 조금 못 미치거나. 어찌되었건 오십보 백보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신용 불량자들은 절대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K양을 떠 올렸다. 그리고 돈 모으느라 정신 없지만 이 책 만큼은 한권 사서 K양에게 읽어보라고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금 통장 하나 만드는것 만으로도 1억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와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현실적으로 월수입이 400이 안되는 사람은 절대 저자처럼 3년안에 1억을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안된다. 돈으로 할 수 있는게 점점 많아지는 요즘인 만큼 정말로 돈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란 소리냐고 반박하는 사람에게 묻고싶다. 그럼 당신은 돈을 지배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돈의 노예건 지배건 뭐건 간에 돈은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친구가 슬플때 술 한잔 사 줄 수 없고 내가 아플때 돈 걱정부터 해야한다. 내가 볼때 돈에 무관심해서 저렇게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처럼 영양실조 걸려가며 돈을 모을 필요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분명 돈은 모아야 하는 것이다. 천년만년 지금처럼 늙지않고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면 상관 없겠지만 말이다. 돈을 모으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래를 늘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턱없이 믿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저자는 2억 모으기에 돌입했다고 한다. 정말 독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10억을 저축으로 모을 사람이다 싶다. 이제 그녀도 1억을 넘기고 2억을 넘기면 적금만으로 돈을 모으라는 소리 대신 주식이나 투자에 대해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금통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까지는 저금만으로 1억을 모은 그녀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플라시보 >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할 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배달되었을때 나는 딱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 큰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서 읽지?' 책은 거의 560페이지에 육박했고 결코 가벼운 제질의 종이를 쓰지 않아서 책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웠던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블 (이 책도 장난 아니게 두꺼워서 집에서만 읽었었다.) 처럼 양장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후 처음으로 책을 반으로 잘랐다. (당시 선생님들은 반으로 잘린 책들을 보면 마치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린듯 진심으로 가슴아파 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깨근육의 통증이 더 급한 문제였으므로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책을 자른다는게 좀 걸리긴 했었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너무 무거워서 내가 들고다니질 않고,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림짐작으로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반을 잘랐지만 잘린 두권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들고다니면서 읽을만은 했다.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과학교양서. 사실 나는 학교다닐때 과학과 수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다른 과목도 관심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학교를 다 졸업하고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그냥 취미삼아 읽어보니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도 재미없지도 않았었다. 과학과 수학이 재미없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때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내신 15등급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거지로 대학에 들어간 인간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스티븐 호킹과 아이작 아시모프 그외의 사회과학 서적 몇가지를 그럭저럭 재미나게 본 기억만으로 나는 이 책에 덤벼들었다. 두께가 두께이니만큼. 그리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결코 만만치 않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읽으면서 종종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저자인 빌브라이슨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역시 과학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과학자들을 졸라서 자신이 이해가 될때까지 얘기를 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떤 단어들은 학교다닐때 분명히 들었고 그 뜻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인지 지금와서 남은건 대략적인 이미지 혹은 이런뜻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 뿐이었다. 그것만 뺀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거의 모든것의 역사이듯. 우리 인간과 관계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가장 처음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예들을 들어가며 과학이 절대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님을. 또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졌던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을 조금더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만약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고 시험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이 책을 꼭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예 처음부터 수학 과학은 나와 무관한 너무나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찍어버리고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읽다가 보면 간혹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시험에 나온다면 교과서에 적힌대로 답을 적어야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 투껍고 무거우며 약간 비싸다는 것만 빼면 내용 면에서는 100점 만점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과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를 했다고 하니 그 노력만 해도 점수를 주고도 남는다. 빌 브라이슨이 쓴 전작 [나를 부르는 숲]도 그렇지만 책 이상의 책이라 불리울 만하다. 다 읽는데 제법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플라시보 > 631쪽으로도 부족하다.
Sex
폴 조아니데스 지음, 대릭 그뢰스 시니어 삽화, 이명희 옮김 / 다리미디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과거 모 사이트에 섹스 칼럼을 쓰기 위해서 구입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책이었다. 그 후 누군가가 내게 책을 선물했고 나는 앞의 몇장만을 읽은 후 곧 책꽂이에 다시 꽂아 두었다. 첫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커서였다. A4용지에 육박하는 크기에다 631쪽에 달하는 책은 평소 내가 책보는 습관인 드러누워서 보기에는 무척이나 부적합한 책이었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이유를 대자면 비교적 SEX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도 확실하다고 믿었던 나 이지만. 막상 그것이 문자화되어 무어라 주절거리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적어도 책을 다 읽기 전 까지는 그랬다.

SEX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영위할수 있는지에 온갖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남자들에 대해서는 페니스의 크기와 만족도는 전혀 상관없다는 소리를 해대고 여자들에 대해서는 좀 더 SEX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 혹은 마음가짐을 가져서 궁극의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들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분명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SEX를 할때 생각해야할 다른 부분들. 이를테면 임신이나 출산. 성병. 아이의 성교육 등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면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이다.

알다시피 섹스는 성인 남녀가 사랑 혹은 그와 무관한 다른 어떠한 이유로 즐기는 몹시 개인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지식은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그 자체에만 집중이 되어있다. 섹스를 할때 혹시라도 감염이 될지 모르는 성병이랄지 임신과 같은 것은 마치 없는 일인것 처럼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입받아왔다. 하긴 막 섹스를 하려고 하는데 성병이 생기면 어쩌나 혹은 원치않은 임신을 하면 어쩌나를 생각하는 것은 로멘틱한 분위기를 상당히 방해한다. 그러나 그 로멘틱한 분위기라는 것을 위해 무시하기에 섹스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동반할수도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배우지 못했고 또 생각하거나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이 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를 붙이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의 대부분은 법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알아두어야 할 일들에 대해 잔뜩 적어두었다. 19세의 나이라면, 섹스란 그저 남녀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행하는 개인적 행위일 뿐이라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이미 섹스를 했을수도 있는 나이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19세 이전에 섹스를 경험했다.) 어떻게 보면 나처럼 나이가 든 성인보다 오히려 이제 막 섹스를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 물론 나이가 들어도 섹스에 대해 그저 몸이 하는 행동일뿐 머리나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며. 나 역시 그 중 하나임을 고백하는 바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식욕과 버금갈 정도로 (그렇게까지 자주는 아니겠지만)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섹스라는 것임을 감안할때.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좋은 음식이며 올바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법에서 요즘은 웰빙 어쩌고 하면서 유기농식에 대해서까지 떠들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도 욕구라는 것에 있어 별반 뒤지지 않는 섹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함께 하면 저절로 모든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질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해서 섹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답은 NO다. 단지 섹스가 성기로 이루어지는 성교라고만 생각한다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교적 성에 대해 개방적인 부모를 두웠지만 내가 부모로 부터 받은 성교육은 실질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관념에 관한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경우 섹스를 목적으로 사용하되 수단으로는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 주었고 어머니의 경우는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섹스를 할때는 반드시 피임을 하라고만 말했다. 아버지의 충고는 내 성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어떤 생각을 마련하게 해주었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때 나는 어머니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은 다음 부분을 직감으로 느꼈다. '내 딸이 섹스를 한다는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요즘 애들은 다들 그러니까 일단 한다고 인정은 하마. 그렇지만 어리석게 임신따위는 하지 말아라. 그럼 너는 수술대위에 오를수도 혹은 미혼모가 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피임은 꼭 해야해. 하지만 피임법은 니가 알아서 찾아보아라' 우리 어머니의 경우 내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때 케잌까지 사가지고 와서 축하를 해 주었지만, 그래서 일면 성에 대해 상당히 올바른 교육을 한것처럼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케잌과 떠들석한 축하 대신 내가 임신을 할수도 있고, 더불어 임신이 되는 섹스를 할수있는 육체적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섹스에 대한 모든걸 혼자 생각하고 혼자 터득했다. 그게 너무 당연한거라고? 그럼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혼자 생각하고 터득한것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빠트렸는가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비록 19세미만 구독불가를 붙이고 나왔지만 (아마도 그것은 상당히 노골적인 삽화때문이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만은 책의 제목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남녀라면 나이를 막론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섹스가 단지 남녀 혹은 동성간에 즐길 수 있는 육체적 기쁨에 관한 행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토록이나 두터운 책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계속 말한다. 다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다른책들을 참고하거나 혹은 다른 기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라고 말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는 섹스에 대해 이토록이나 길게 주절거리다니 놀랍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631쪽의 설명으로는 택도없이 부족한 것이 섹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비록 SEX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단순히 더 즐겁고 더 강하게 즐기기 위한 SEX가이드북만은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비록 좀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이 책은 장애우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상당 부분을 질병과 임신(혹은 낙태) 출산(그 후의 입양 혹은 육아) 등. 섹스에서 파생될 수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미 성생활을 10년을 즐겼건 20년을 해왔건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이 섹스를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631페이지로는 택도없이 짧은게 인간의 섹스, 혹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문제이다.

덧붙임 : 책을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을 딱 두권을 만났었는데 하나는 아시모프의 바이블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책이다. 앞으로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의 리스트가 더 늘어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 리스트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영어 들어봤니 - I love English Series 1
석태용 외 지음 / 고원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책은 스프링노트식으로 작게 나와서 들고다니면서 읽기 편하게 되어있고(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버스안에서나 지하철안에서 간간히 공부하시는 것을 즐기는 분에게도 편리하게 해줄 책인 것 같다)
내용이 다른 회화책과 다르게 조금은 야한(?),거친 회화가 들어있는 것도
있으며 흔하게 접해보지 못한 내용이 주류를 이뤄서 신선했다.
가격도 저렴한데 테잎까지 있으니 좋은 책 같다.

그런데 후기가 하나도 없다니...
난 이렇게 진흙속의 진주같은 책을 발견하고나서의 개척감?만족감을 좋아한다.
베스트셀러중엔 라면받침으로나 쓸만한 책도 많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수생각 박광수의 여자들이 궁금해하는 남자들의 속마음 108문 108답
박광수 지음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박광수라는 사람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여러 기사들을 통해 본 그는 광수생각에서 드러난 그런 모습은 거짓이였고

굉장히 이기적이며 두얼굴이고 여자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천박한 늑대같은 속물인 남자인것을

알았고 여성커뮤니티에서도 그의 인터뷰 모음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그가 쓴 남자의 속마음이라면 정말 믿을만 하지 않는가.

아예 다 까놓고 쓰지 않을까 생각했고 적중했다.

다만 책 서두에는 늑대같은 남자에게 당하지 않게 여자들을 자기 딸로 생각해서 해주는

아비의 말이라는 식으로 했는데 내 보기엔 그런것 같진 않다.

그럼 그동안 아름다운 만화를 그리고 했던것은 무엇이란말인가?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고 아내를 미화시킨 그 그림들에 나타난 남자의 순정과

이 책에 나타난 속물주의 남성.

내가보기엔 경제적으로 쪼들려서 허겁지겁 출판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폰트 한 30이상 되는 글자크기에 간단한 답변들...

맘만 먹는다면 일주일안에 다 해치웠을 책같지 않은 책.

책값이 아깝지만 그래도 한권 더 주는 이벤트를 통해 구매했으니 크게 아까운 느낌은 아니다.

장점이라면 말했듯  늑대같은 남자들의 속마음은 알 수 있었다.

남자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은 분들은 보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