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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혹은 내가 많이 컸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상실의 시대를 처음 접했을 때가, 정확히 중학교 3학년때였다.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한참 고입 준비로 바빴을 10월 부터 11월 까지 기말고사 기간에 나는 시험 준비를 하지 않고,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물론 내가 공부를 포기했다거나, 고입에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예고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 영 수 같은 과목시험 보다, 실기 시험이 더 시급했다.
덕분에, 나는 학원에가서 공부하는 시간 보다 서점에 눌러 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도 나를 배려하여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런 좋은 환경 속에서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그렇게 순탄하게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주위 환경은 좋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리고 가슴 속, 정신 까지도 이 책을 소화하려 하지 않았다.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겨웠고, 나는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으로 성 용어 '페니스' 라든지 '마스터베이션' 같은 용어를 접했고, 성적 묘사같은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 성이 개방화 된 '일본 작가'의 글이라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장면을 무시하고, 이책을 반드시 읽어야 겠다는 의무감과 오기로 끝까지 읽었다.
그러나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는 느낌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허무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주인공, 와타나베, 미도리, 나오코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차라리 나가사와의 열정에 관심이 갔다. (나가사와의 여자와 잠자기 작전 따위는 관심 없었고, 그가 잘하는 공부 뭐 이런데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특히 외무성시험에 합격하고, 다른 합격자들이 파티를 하고 있을 시간에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나는 좋았다)
그정도로 나는 이 책의 '성에 대한 이야기'가 혐오스러웠다. 아, 그리고 몇년 후 고2가 된 지금. 나는 갑자기 문득 상실의 시대를 다시 보고싶어졌다. 웬지 지금 쯤이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중3때 처음 상실의 시대를 끝장 까지 읽기까지는 약 한달이 걸렸다.
나는 며칠 전 상실의 시대를 폈고, 읽기 시작했다. 3일 밤 동안 읽었다. 아, 그리고 읽는 내내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혐오스러운 장면들도 아무렇지 않았고, 게다가 아,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장면들 (그러니까 _ 성 에 대한이야기)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는 무언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느낌인지는 정말 알 수 있다. 정말,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싶다. 20살이 되면 나는 이책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