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신문을 펴들 때마다 눈살이 찌뿌려지는 건 이제 습관이 될 것 같다. 언제는 안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이 씁쓸함과 짜증에 너무 익숙하다. 너무 몸에 배어버려, 세상이 원래 이런거지..식의 타성에 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나라당이 '국회선진화법안'을 입법하겠다고 나섰단다. 제목도 멋지다. 여기에는 '국회폭력방지법'과 '국회질서유지법'이 있는데, 이 안에 따르면 "국회 내에서 심의, 의결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행한 경우 1년 이상 ~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가중처벌' 조항이 포함"됐으며, "국회의장의 경찰공무원 지휘권을 신설해 회의장을 제외한 국회 내 모든 곳에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단다.  

 그래서 사실상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법률이라도 통과시키게 됐다는 것. 한나라당의 속셈이 뭔지는 뻔히 보인다. 

 요즘 들어 유독 (국민이든 시민이든 대중이든 다중이든 뭐든..)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전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투표'만이 유일하다. 거리정치만을 긍정하고 대의제를 무시하는 행태 속에서 우리는 거리정치와 대의정치간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직접 민주주의는 늘 언제나 좋고 대의제는 항상 나쁜 것인가? 이 간극 속에서 우리가 거리 의외의 장소에서 정치에 개입하는 길은 거의 차단되어 버렸다. 이는 한국인의 특성이 냄비뚜껑이라 항상 타올랐다가 확 식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확 타올랐을 때의 힘을 응고시키면서 제도적 형태으로 번역해 내는 능력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MB를 사람들이 직접 뽑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MB를 꾸준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언제는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하진 않는다. MB를 뽑은 것 자체를 두고 사람들이 미쳤다는 등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영속적으로 우리 삶의 조건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느냐의 문제, 제도적으로는 MB를 견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MB와 한나라당이 벌이는 작태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감각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MB의 지지율이 50%가 넘는다고 해서 이따위 법안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없진 않을 것이다. 이처럼 복수의 인간들을 일자로 포섭하려는 시도는 늘 미수에 그치고 만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대규모 집회가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길이 없는 한, 우리는 매일 되풀이되는 무료한 삶 속에서 푸념하듯 안주거리삼아 국회의원들을 씹을 뿐이다. [사실 어떤 경로가 있는지 확실히 모른다. 법, 제도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너무 법이나 제도에 집착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다음 아고라 등의 인터넷 공간에서의 활발한 활동이나 시민단체들의 여러 활동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국회나 행정부 등의 제도 등에서도 이런 통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의 한국 정치 현실에는 그 통로나 틈새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내가 무지한 것이길 바랄 뿐이다.]  

 국회선진화법안으로 돌아와 보자. 이 입법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어쨌든(민주주의의 근간인)국민의 대표이지만, 국민의 대표를 경찰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하려 한다. 그들은 국민의 대표가 더 이상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회 안에서 정치 자원들을 갈라먹는 이해관계의 조정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시인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처럼 국민의 대표라고 불리는 이들마저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리를 부정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치의 가능성 자체를 잃는다. 특히나 이들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없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대의제를 통해서도 대중들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정치는 불가능하다.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MB와 한나라당의 공세에 대해 다시금 정치를 재발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만큼 대중들의 정치적 자율성이 두드러지는 곳도 없지만, 한국만큼 탈정치화가 두드러지는 곳도 없는 것 같다. 이 간극을 줄일 수 있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 따위 악법은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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