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를 처음 만나게 해주었던 작품- "냉정과 열정 사이"가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제 베스트소설 중 하나로 들어가는 이 작품을 읽고, 너무나 좋아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여운에 잠겼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 뒤- 그녀의 결혼에세이집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를 읽고 "냉정과 열정 사이"와 비슷한 감동과 여운을 느끼고는 아 너무 반갑고, 너무 좋다. 이런 느낌의 작품을 또 볼 수 있다니...! .... 라고 독자로서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작품은 취향이 많이 갈리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권유해주거나 선물해주지 않는데... 유일하게 제가 나서서 친구에게 선물해준 책 중 하나이기도 해요. 아무튼- 긴 서론을 한 이유는... 저에게 있어, 에쿠니가오리라는 작가는 늘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기에... 이번 "빨간장화"를 읽고 느낀 실망감은 이루 설명하기 힘들었습니다. "우리, 둘이 있으면 둘 다 외로워지는 거야." "결혼에 대한 '진실'에 대한..." 이라는 조금은 장황하면서도 에쿠니가오리 팬이라면 오! 하고 책을 들게끔 광고는 했지만... 막상 책장을 들추고 읽어내려간 그 내용물은... 글쎄요. 분명,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생활의 일면을 들여다보며 느껴지는 무언가는 있지만... 의외로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에서처럼 마음 한 쪽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야기나 임펙트는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을 읽을때는 늘 다이어리에 옮겨적을 것이 넘쳐났기에... 늘 옆에 다이어리와 펜을 준비해놓는데- 이번엔 그런 준비도 무색하게; 한마디도 옮겨 적을것이 없더군요. 기대감이 너무 커서 제 실망감도 컸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다시 한번 들추려고 했지만 결국 마음이 동하지 않아 바로 책장 한 구석에 꽂아놔 버렸네요. 다음번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그런 작은 기대만 남기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