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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이 책 마치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삶과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게 된 <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일본버전이랄까.
<어머니의 유산>은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파리유학을 다녀왔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있는 중년의 미쓰키를 중심으로 어릴때부터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언니 나쓰키와 평생 서양에 대한 동경과 선망으로 살아온 에고이스트 어머니 노리코의 이야기이다. 책은 크게 1부 남편의 불륜, 어머니의 치매악화로 인한 돌봄과 간병이 중심이 되어 미쓰키와 나쓰키의 성장과정과 결혼, 어머니의 어린시절과 외도, 아버지의 죽음이 이야기 되고 2부 어머니가 죽고 난후 멀리 여행을 떠난 미쓰키가 호텔에 장기숙박을 하게 되며 만난 숙박객들 사이에서 교류하며 천천히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여기서 일본소설 '금색야차'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소설처럼 살고 싶었던 외할머니의 평생 꿈이었다.이 소설엔 돈과 연애, 화려한 삶을 선망했던 보바리즘 의 '마담보바리', 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을 시종일관 냉정하게 관철시키는 '이방인' 또한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겐지이야기', '세설' 등 유명소설이 언급되는데 주인공들의 삶과 어떻게 맞물려 엮어나가는지 되짚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오랫동안 바랐지만 어머니의 행복 또한 바랬고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버틴 미쓰코, 어릴때부터 이어진 언니와의 차별의 상처를 항상 짊어지고 살아온 미쓰코와 허울 뿐인 관계로 남은 남편 데쓰오, 어머니의 죽음으로 오랜 애증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찾기 시작한 미쓰코 여러 미쓰코의 모습 중 어느 것 하나 동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와 돌봄노동, 늙음과 죽음, 중년으로서의 여성의 위치와 가족 간 관계와 미묘한 갈등을 담담하면서도 적나라하고 예리하게 담아낸 500페이지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한 어머니의 유산은 끝끝내 미쓰코 스스로가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었던 자기회복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마침내 행복하다- 소리내어 말하는 미쓰키의 모습에 안도의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밑줄긋기
🔖p113 그 장면은 그때까지 있어온 불공평을 집약하는 것이었고, 그날 이후로도 계속된 불공평에 부딪힐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원풍경이 되었다.
🔖p199 인생에서 나이를 먹는 것과 불행을 아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p420 남의 불행이란 흔히 그 사람도 , 그 불행도 모욕할 수 있을 만큼 유형적인 것-궁극적으로는 통계수치로 환원할 수 있을만큼 유형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p479 종으로서 일류의 특징은 어린 시절이 길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노년 시절이 길게 이어지는 것도 큰 특징이라고 최근에 읽었다. 여자들 또한 '여자로서 끝나버린 ' 후에도 오래도록 살며 인연을 맺고 출산을 돕고 아이를 키우고 먹을 거리를 채집하고 불을 피우고 물을 긷고 다툼을 해결하며 공통체에 도움을 주었다. 늙은 여자의 거처가 당당히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류를 특징짓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이제는 모두가 제각기 살게 된 끝에 쾌씸하게도 그런 여자들은 존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취급을 받는다.
🔖p486 어머니가 가진 업의 깊이-고집을 부리며 인생을 달려나간 어머니가 가진 업의 깊이가 이제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평평해진 몸에서 나쁜 기운처럼 떠올랐다. 그날 안에 죽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렸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이 왔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p490 늙음은 잔혹해서 정신이 하늘높이 비상하고 피가 끓어오르기를 아무리 원해도 감동을 생명의 원천으로 담을 수 있는 잔 자체는 해마다 얕아진다.
🔖p491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서 직접보는 고통-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
젊을때는 추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늙음'이 두뇌와 전신을 덮칠뿐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모두를 덮치는 것이 또렷하기 보인다.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인 인생인 것인가.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