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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더티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 혹은 임금노동을 뜻한다. 여기서 더럽다는 표현은 물리적 오염이 아니라 도덕 또는 윤리적 위반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1.다른 인간이나 동물과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노동으로 이따금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2. 선량한 사람들, 즉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보기에 더럽고 비윤리적인 노동이다.
3.그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거나 낙인 찍혔다고 느끼게 함,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함으로 상처를 주는 노동이다.
4.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반한 노동으로 그들은 그 일이 사회질서 유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명시적으로는 그 일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런일이 가능하려면 그 더티 워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해야 하는데 이는 다른 누군가가 매일같이 고역을 치르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위임한다는 뜻이다.(p30)
저자 이얼 프레스는 미국의 작가이자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고로 책에선 미국의 사례를 들어 서술됐다. 크게 네가지 사례로 나누어 교도소와 구치소 내 정신병동의 교도관, 드론으로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드론조종자, 도축노동자, 시추선 생존 노동자와 테크업계에서 이루어지는 더티워크의 실상을 담아냈다.미국사회는 원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만큼 더티워크 일자리가 많음에도 더티워크 계층의 구성은 무작위적이지 않다고 한다. 주로 선택지와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배정된다. 기술, 자격, 교육수준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 지닌 사회적 유동성과 권력이 없는 덜 특권적인 사람들에게 주로 돌아간다. 더티워크의 문제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이런 사회에선 손을 더럽히는 짐을 누가 떠맡고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는 혜택은 누가 누리는가 하는 문제 또한 경제적 특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동시에 도덕적 불평등을 반영하고 강화한다. (p27) 즉 더티워크의 위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는 불평등이다! 오랫동안 용인되고 장려했던 제도적 폭력이 폭로될때 흔히 더티워커 즉 부패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며 스캔들로 취급된다. 이는 매일 발생하는 일상적인 제도의 부당함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p28) 이른바 '선량한 사람들' 혹은 겉보기에는 계몽된 태도를 가졌지만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아무것도 할 의도가 없는 '수동적 민주주의자' 들 또한 비난할 자유를 누리게 된다. 책에 따르면 더티워크는 그 일을 하는 개인만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를 더럽히고, 그가 만나고 교유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p411)
물론 모든 더티워커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서 만족감을 얻는다고 인터뷰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더티워커들은 선택지와 기회의 폭이 넓지 않다. 드론조종자, 특수한 국가적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어떤 사회건 더티워크는 어느정도 불가피하기에 우리나라의 사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을 읽기 전부터 짐작했지만 역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분노했으며 부끄러웠고 무력감을 느꼈다.개인적으로 도축노동자를 다룬 편에선 정말 책을 덮고 싶었다. 도축노동자의 실상과 도축산업의 구조, 무항생제, 방목, 좋은 먹거리를 찾지만 노동자의 노동환경엔 무관심한 윤리적 소비의 양면성...마음이 착잡했다. '구조적 가해자','수동적 민주주의자', '선량한 사람'으로써 앞으로도 일어날 모든 불합리한 일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공감할 수 있을까. 쉽게 구획화되고 책임이 분산되는 시스템 안에서 휴대폰과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석탄을 소비하며 고기를 먹는 내 일상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큰 빚을 지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방향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이 책은 그런 복잡 미묘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더티워크가 법과 정책의 산물이며 예산편성,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라는 점(p458), 도덕성 외상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유화하는 것이라 했다.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크던 작던 빚을 지고 있으며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듣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단 그런 과정에서 빚어질 권력의 언어와 목소리의 불평등 또한 경계해야 할 숙제이다.
-하니포터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