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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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출판




내 이름은 안진진. 

내 가족 아빠, 엄마, 동생과 이모네 가족, 안진진의 남자인 김장우와 나영규의 이야기로 안진진의 삶을 하루일과를 쓰듯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안진진은 K장녀에 아비소식모르는 홀어미 아래 나름 잘 자란 주인공이다. 


쌍둥이 이모와 엄마이지만 둘은 상반된 삶을 산다. 건축가 이모부로 경제적으로 편한 이모와 달리 백수에 술주정도 모자라 행방불명인 아빠로 십년은 더 늙어버린 엄마. 한량에 아무 능력없지만 마치 건달 대장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남동생 진모. 그런 동생이지만 편애하는 엄마이다. 실크 잠옷을 입는 이모, 늘어진 내복을 입는 엄마. 한 사람의 인생으로 바라보면 불쌍했지만 정작 내 학교 참여수업에는 잘사는 이모를 부른다. (마음과 달리 행동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도 모순.)


아빠도 자식들에겐 감상적이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듯도 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백수에 엄마가 시장에서 양말 팔아서 번 돈을 훔쳐가는 아버지로는 최악이다. 마음이 미워하고 싶지만 또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내 입장에서 부모이지만 밖에서는 알은체하고 싶지 않으니. 꼭 내 마음을 훔쳐본 듯 닮아있던 안진진. 어느새 친근해져버렸다.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으로 그 사람이 어떤 독서에 취미가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글을 읽고 내가 읽는 책들의 장르가 내 삶과 닮아있을 거라 생각에 다시금 읽어왔던, 앞으로 읽고 싶던 책들의 목록을 훑어보게 했다. 내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이었나.


안진진이 결국 결혼할 상대를 계획적인 삶을 사는 나영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술 마실 때 정신줄 놓은 모습을 자신이 김장우에게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자신만은 ‘나’를 장악해 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술에 잠식당해 가족을 고통받게 하고 타인에게 ‘나’를 놓아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잠시였지만 아버지처럼 살면 안되는 자신은 해내야하니까.


내 가족에 대한, 가난에 대해 숨기고 만난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 환상이었고 결국 결혼이 감옥과도 같다면 이모도, 엄마도 아닌 자신의 삶으로 어떠한지 경험해보겠다 했지만 그 역시 계산된 안정적인 삶을 택했다는 것도 모순아닌가. 어차피 인생은 모순투성이이지만 그 모순 속에서 ‘나’를 찾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



🔖 책 속 밑줄 긋기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P15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P64


나는 생각했다. 누구나 똑같이 살 필요는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인정하지만, 그렇지만 하필 아버지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고. 저토록 극심한 고통을 겪어가면서까지 남하고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일일랑 나는 못 할 것 같다고. P92


내가 누군가에게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그것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겐 사랑에 꼭 필요한 맹목(盲目)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이 하나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탐색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 것이므로. P100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내가 남들보다 술에 대해 월등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시절 초반 몇 년을 제외하곤 가능한 한 술을 마시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런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타인들 앞에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없어 스스로를 방치해버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결단코 '나'를 장악하며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못 했지만, 나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P 184


그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미래에 내 어머니가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또 어떤 난해한 분야의 책들을 골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어머니는 결코 이모가 읽어왔던 그 많은 소설책이나 시집을 선택해 책값을 치르지 않을 것이란 점만은 분명했다. 이 쌍둥이 자매들은 똑같이 책에 의지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었지만, 선택하는 책은 이토록이나 정반대였던 것이다. 마치 그들의 삶처럼. P187


회색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서서히 세상 전체를 결빙시키려고 작정한 듯 시시각각 수은주가 내려가던 삭막한 2월의 어느 날이었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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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 마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처방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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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리텍콘텐츠 출판



무리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잠시 내려놓고 다른 공기로 전환이 필요할 때 별것 아니지만 아침에 자기전에 한 페이지만 읽어도 무거웠던 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정신과 의사 토미의 상담실. 만화로 보는 토미는 잠언들 사이에 있다. 답답했던 마음을, 고민을 실제가 아닐 수 있으므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라 한다. 괜찮다며 힘들었던 나에게 오늘은 쉬어라고 정신 안정제를 잠언으로 해결해주는 마음 처방전이다. 

Chapter1. 다른 사람을 실망시켜도 괜찮아요

Chapter2. 인간관계는 사실 개선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Chapter3. 사실 진짜 고민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요

Chapter4. 강해지는 방법은 집착을 줄이는 거예요


짧아서 짬짬이 독서가 가능하다. 어떤 철학적 질문을 요하거나 심리적 어려운 단어도 없어서 머리가 지끈 거릴 때 멍 한 기분일 때 가볍게 읽기 좋았다. 


요즘 불안으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너무 준 것 같았는데 되는 대로 지금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괜찮다는 말을 해주어서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또 다시 불안으로 신경쓰고 스스로 지치는 것을 자초하겠지만. 


내 편을 들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책 📚

길다고 유명한 철학자가 썼다고 해도 내가 공감 안되고 무슨 말인지 모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인데 『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은 짧은 문장 몇마디이지만 조용한 저녁시간에 읽으니 잠들기 전까지 내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



🔖 006 지침


정신적으로 지치면 지금까지 신경 쓰이지 않던 것들이 거슬리게 됩니다. 


 뇌에는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하는 “방파제”와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능은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는 작동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타인의 시선이나 부정적이 뉴스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흘려 버리지 못하면 지쳐있다는 증거예요. 


🔖 010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은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좋습니다. 


‘여유가 되면 가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때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원할 때 가면 큰 깨달음이 있을 거예요. 장소뿐만 아니라 만남도 같은 논리니까요. 


🔖 106 실체


어떤 때는 불안해하고,

어떤 때는 괴로워하고,

어떤 때는 사랑스러워해도,

그것들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아도 돼요. 


어떤 때는 맑고, 어떤 때는 흐리고, 어떤 때는 눈이 내리고, 어떤 때는 번개가 치듯, 마음도 자연의 변화와 같아요. 


🔖 144 인생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더 재미있게 놀고, 더 많이 여행해 보세요. 


인생은 정말 멋진 것입니다. 기쁨과 분노, 슬픔, 고민하는 모습조차 아름답죠. 결국, 모든 것은 다 흘러 지나가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쌓이기 마련이에요. 


🔖 167 스스로 챙기기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은

누구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분 내는 일도

누구에게 피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해도 됩니다. 


#지극히짧고도사소한인생잠언 #토미 #리텍콘텐츠 #책속의명언 #책갈피를꽂다 #신간도서 #힐링 #정신건강 #자기계발 #마음처방전 # #책스타그램 #서평


❤︎ ︎❛리텍콘텐츠❜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006 지침



정신적으로 지치면 지금까지 신경 쓰이지 않던 것들이 거슬리게 됩니다.



뇌에는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하는 "방파제"와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능은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는 작동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타인의 시선이나 부정적이 뉴스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흘려 버리지 못하면 지쳐있다는 증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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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 - 김민정의 1월 시의적절 8
김민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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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적절 『읽을,거리』

 

김민정의 1월

난다 출판

 

*시의 적절: 시의 적절함으로, 시의 적절하게!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으로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가 실린다. 우리들의 시계는 이렇게 우리들의 사계가 된다.

(김민정, 전욱진, 신이인, 양안다, 오은, 서효인, 황인찬, 한정원, 유희경, 임유영, 이원, 박연준)

 



 


『읽을,거리』는 김민정 작가가 ‘시의 적절’ 시리즈 첫 주자로 1월 1일에서 1월 31일까지 날짜별 일기, 에세이, 시, 인터뷰, 편지 등의 읽을 거리 들이 실려있다. 앞으로 24년 시의 적절 예정된 작가, 시인의 모은 글이 기대된다.

 

알베르 카뮈 번역가로 유명한 김화영 선생님의 인터뷰와 최승자 선생님의 책이 나오게 된 사연, 황현산 선생님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렇게 모아두지 않으면 알 수도 찾지도 않을 이야기들인데 그분들의 책에 대한 마음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1월 겨울에 읽음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상 외부나 동적인 활동보다는 사유하거나 감성적으로 조용하게 누군가의 그리움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인 듯했다. 매일의 다른 종류의 글 모음이라 계간지를 같기도, 김민정 시인이 기억하고 싶고, 좋아하는 글을 담은 일기장 같기도.

 

이제, 2월 <선릉과 전릉> 전욱진 시인의 책을 펼쳐야지.

 

 


🔖 말씨를 보면 알아. 출신지가 동대문 안이냐 밖이냐 그것도 바로 알 수 있어. ‘그냥’을 ‘기냥’이라 그러고 ‘여덟’도 ‘야닯’이라 그래. 내 인생 최초로 경이롭고 두려운 어떤 ‘타자他者‘를 만난 거지, ’어찐말(서울말)‘이라는 타자. 홀로 상경한 어린것이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잖아. 소외당하면 안 되니까. 같은 우리말이어도 서울말 특유의 어휘, 특히 어미 부분 억양의 울리고 내리고 꼬부리고 뒤트는 그 미묘한 음성학적 곡예 때문에 습득이 쉽지 않았어. 그래 자꾸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 그게 훗날 보니 외국어 습득이나 번역의 훈련 과정 중 하나였더라고. 다른 언어나 동일 언어나 새로운 환경 속의 소통이란 건 일종의 번역이니까. 그런데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서울말 억양 좀 배워서 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갔더니만 이거 완전 놀림감이야. 식구들이 밥상머리에서 “야가 언제부터 이리 어찐말을 잘 씨부리게 됐노”하며 막 놀려. 서울에서나 영주에서나 미운 오리 새끼요, 이방인이 된 거지. 그때부터 나는 언어의 여러 층위와 미세한 음성학적 변주에 민감해졌던 것 같아. 내가 외국어, 특히 불어 습득에 소질을 다소 보일 수 있었다면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언어가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거야.

P44(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작가의 의식과 독자인 나의 의식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더듬어가는 길. 길건 짧건 소설책을 다 읽은 후 덮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 번뜩이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디테일들, 그 디테일들이 모여서 만드는 무늬나 형식, 혹은 지향, 그 속에 서려 있는 작가의 체취와 마음의 진동 때문에 또다시 그 텍스트를 찾게 되고 다시 읽게 되는 거야.

P73(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나는 언제든지 자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태도가 시라고 생각해. 여러가지 각도에서 언어에 대해, 언어와 삶의 관계에 대해, 매 순간 천착하는 거, 그 태도가 나는 시라고 봐.

P79 (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붓글씨도 마찬가지라고. 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획이 지나가는 거, 그걸 개칠이라고 하지. 그건 살아 있는 힘의 맥을 죽이는 거야. 붓음 심장의 떨림과 힘을 전달하는 도구야. 떨리면 떨리는 대로 힘이 넘치면 힘이 넘치는 대로 써나가야지 붓을 기울여 모양나게 그리면 안 된다고. 붓을 똑바로 들고 힘껏 붙잡고 쓰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 눕혀서 형상을 그리면 예쁘게는 쓸 수 있지만 나를 직방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내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가란 소리야.

P84 (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를 읽고.)


그래, 대구에서 청주로 이사를 한 후에 대구 사투리를 안쓰고 청주 지역 사람들처럼 되는 방법 중 여기 말투를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여기 사람들을 관찰하고 말투를 따라하며 익숙해졌는데 대구에 가면 이제는 내 말투가 바뀌었다며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짐도 느꼈다. 이토록 중요한 말투, 언어를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으면서 어느 순간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말투는 잊고 지냈구나 그때를 생각나게 했다.

 

 

🔖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숭숭 바람이 드는데 도통 창문이 안 보이니까 깜깜도 하고 막막도 한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창문이 열렸으니 창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려니 이왕에 그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마음.

P98 1월 6일 에세이(체리와 땅콩이면 안 잊힐 터)

 

🔖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서로 갈리어 멀어짐, 그 이별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직진과 후진으로 표기해도 가히 무리는 아니리라.

P112-113 1월 9일 에세이(오늘은 사랑하는 후배 서유경의 생일이다./때론 이른봄이 이렇게도 들이닥치나보다)

 

🔖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이 구절부터 옮겨적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법정스님)

P116 1월 10일 에세이(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 여러분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글 말미가 이쯤이다 싶어서일 텐데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어떤 끝의 순간에 그 끝이라는 단어를 보무도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P131 1월 11일 에세이(허수경시인을 떠올리며/수경을 보라 수경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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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식과 독자인 나의 의식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더듬어가는 길. 길건 짧건 소설책을 다 읽은 후 덮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 번뜩이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디테일들, 그 디테일들이 모여서 만드는 무늬나 형식, 혹은 지향, 그 속에 서려 있는 작가의 체취와 마음의 진동 때문에 또다시 그 텍스트를 찾게 되고 다시 읽게 되는 거야. - P73

나는 언제든지 자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태도가 시라고 생각해. 여러가지 각도에서 언어에 대해, 언어와 삶의 관계에 대해, 매 순간 천착하는 거, 그 태도가 나는 시라고 봐. - P79

붓글씨도 마찬가지라고. 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획이 지나가는 거, 그걸 개칠이라고 하지. 그건 살아 있는 힘의 맥을 죽이는 거야. 붓음 심장의 떨림과 힘을 전달하는 도구야. 떨리면 떨리는 대로 힘이 넘치면 힘이 넘치는 대로 써나가야지 붓을 기울여 모양나게 그리면 안 된다고. 붓을 똑바로 들고 힘껏 붙잡고 쓰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 눕혀서 형상을 그리면 예쁘게는 쓸 수 있지만 나를 직방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내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가란 소리야. - P84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숭숭 바람이 드는데 도통 창문이 안 보이니까 깜깜도 하고 막막도 한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창문이 열렸으니 창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려니 이왕에 그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마음. - P98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서로 갈리어 멀어짐, 그 이별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직진과 후진으로 표기해도 가히 무리는 아니리라. - P112

여러분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글 말미가 이쯤이다 싶어서일 텐데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어떤 끝의 순간에 그 끝이라는 단어를 보무도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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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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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끝의 살인』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

약 1년 5개월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공표가 되고, 일본은 충돌 예측 지점이 되어 무법천지상태가 된다. 비상식량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죽음을 준비하거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살인 범죄, 약탈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주인공 하루 짱은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자살, 2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약 67일 남은 지구의 멸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가. 엉뚱하게도 운전실습을 받기위해 운전연습학원에 가는데 이사가와 강사는 왜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주행실습 중 트렁크에 실린 시체 발견에 이어 강사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는 것도 이상했는데 강사는 경찰이었다.

 

📝

그 외 의문점들은 많다. 이상한 건 범인은 왜 도망친 나카노 이쓰키를 붙잡아 고문까지 했으면서 그냥 놓아주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여놓고. 그래서 하루짱의 2층 집에서는 동생이 아니면 나나코였나. 범인은 살인을 한 동기가 무엇? 종말이면 살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가. 흠..얼렁뚱땅 넘어간 건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건지 답답함이있다.

 

곳곳에 숨은 범인같은 인물들 사이에도 세상 종말에도 생명을 구하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종말이 온다면 무슨 준비를 할까 고민과 이들처럼 묵묵히 원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또 하루를 살아낼까. 수사를 함께하며 뭉친 이들은 범죄현장에서 자신의 희생으로 타인이 남은 생을 살 수 있다면 도망치기보다 희생을 기꺼이하여 세상의 끝에서도 인간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듯 했다.

 

세상 종말이 배경에서 살인사건의 수사가 범인으로 추청되는 인물들을 추적하고 있지만 짜릿한 한방이나 매력적인 인물은 없어서인지 조금 아쉬웠던. 하지만 예견된 종말을 앞두고서도 배움을 시작하는 등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보자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 “두 분, 정말 수사를 할 겁니까?“

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P129 형제 배





**

366쪽

나는 이치무라는 노려보며 말했다. → 나는 이치무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세상끝의살인 #아라키아카네 #북스피어 #에도가와란포상 #디스토피아소설 #첩혈쌍녀시리즈 #장편소설 #일본소설 #미스터리소설 #서평

"두 분, 정말 수사를 할 겁니까?"

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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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 43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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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43


장진영 장편소설

민음사 출판




 

 

장진영작가의 『취미는 사생활』 소설은 사회적 문제임에도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번 『치치새가 사는 숲』은 책 제목만으로 작고 아름다운 새가 노래할 것 같았지만 청소년 성폭력이라는 더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어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읽고 난 뒤에 여운이 아주 길게 남았다. 왠지 내가 책 속에서 놓친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소설은 서른 중반이 된 나와 과거 열네 살인 내가 교차하며 이야기한다.

 

간지러워 하는 '나'는 게가 되고 싶어 하는데, 나에게 언니는 계속 긁으면 피가나 딱지가 앉아 게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지 자매사이의 농담이 아니라 나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킬 수 있는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가 정말 필요했던 것 같다.

 

중학교. 열네 살. 소녀에게 예민한 시기이지만 부모의 돌봄이 부재였기에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아슬아슬한 나쁜 행동을 만들었고 연예인병으로 주목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의 떠올리면 부끄러웠던 행동들. 누군가 알까봐 숨겨두고 싶었던 과거들. 중학생의 철이 없다고 하기에 상대방이 상처받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미에게 잘 보이기위해 친구가 되기 위해 해야만했던 잘못된 행동은 모두가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폭력은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것은 잊은 건지 생각도 안한 건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상처주는 말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누가 될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생각하며 예쁘게 쓴 내 마음 가득 적은 일기장이 사랑이라 착각하게 만든 폭력자로 인해 더 이상 펼칠 수 없는 추잡한 일기장으로 변모시켜버렸다.

 

그 시대는 일하기 바빠서 그러했다는 부모의 핑계는 부재에 의해 방임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정이있었다고 말하면 사랑에 목말랐던 아이가 폭력에 의해 자신이 품었던 치치새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었을 때의 슬픔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슬프다.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진 보호자들이 결국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아이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에 노출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 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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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P7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P45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P50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P62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P75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P76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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