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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 - 김민정의 1월 ㅣ 시의적절 8
김민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시의 적절 『읽을,거리』
김민정의 1월
난다 출판
*시의 적절: 시의 적절함으로, 시의 적절하게!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으로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가 실린다. 우리들의 시계는 이렇게 우리들의 사계가 된다.
(김민정, 전욱진, 신이인, 양안다, 오은, 서효인, 황인찬, 한정원, 유희경, 임유영, 이원, 박연준)


『읽을,거리』는 김민정 작가가 ‘시의 적절’ 시리즈 첫 주자로 1월 1일에서 1월 31일까지 날짜별 일기, 에세이, 시, 인터뷰, 편지 등의 읽을 거리 들이 실려있다. 앞으로 24년 시의 적절 예정된 작가, 시인의 모은 글이 기대된다.
알베르 카뮈 번역가로 유명한 김화영 선생님의 인터뷰와 최승자 선생님의 책이 나오게 된 사연, 황현산 선생님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렇게 모아두지 않으면 알 수도 찾지도 않을 이야기들인데 그분들의 책에 대한 마음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1월 겨울에 읽음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상 외부나 동적인 활동보다는 사유하거나 감성적으로 조용하게 누군가의 그리움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인 듯했다. 매일의 다른 종류의 글 모음이라 계간지를 같기도, 김민정 시인이 기억하고 싶고, 좋아하는 글을 담은 일기장 같기도.
이제, 2월 <선릉과 전릉> 전욱진 시인의 책을 펼쳐야지.
🔖 말씨를 보면 알아. 출신지가 동대문 안이냐 밖이냐 그것도 바로 알 수 있어. ‘그냥’을 ‘기냥’이라 그러고 ‘여덟’도 ‘야닯’이라 그래. 내 인생 최초로 경이롭고 두려운 어떤 ‘타자他者‘를 만난 거지, ’어찐말(서울말)‘이라는 타자. 홀로 상경한 어린것이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잖아. 소외당하면 안 되니까. 같은 우리말이어도 서울말 특유의 어휘, 특히 어미 부분 억양의 울리고 내리고 꼬부리고 뒤트는 그 미묘한 음성학적 곡예 때문에 습득이 쉽지 않았어. 그래 자꾸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 그게 훗날 보니 외국어 습득이나 번역의 훈련 과정 중 하나였더라고. 다른 언어나 동일 언어나 새로운 환경 속의 소통이란 건 일종의 번역이니까. 그런데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서울말 억양 좀 배워서 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갔더니만 이거 완전 놀림감이야. 식구들이 밥상머리에서 “야가 언제부터 이리 어찐말을 잘 씨부리게 됐노”하며 막 놀려. 서울에서나 영주에서나 미운 오리 새끼요, 이방인이 된 거지. 그때부터 나는 언어의 여러 층위와 미세한 음성학적 변주에 민감해졌던 것 같아. 내가 외국어, 특히 불어 습득에 소질을 다소 보일 수 있었다면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언어가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거야.
P44(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작가의 의식과 독자인 나의 의식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더듬어가는 길. 길건 짧건 소설책을 다 읽은 후 덮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 번뜩이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디테일들, 그 디테일들이 모여서 만드는 무늬나 형식, 혹은 지향, 그 속에 서려 있는 작가의 체취와 마음의 진동 때문에 또다시 그 텍스트를 찾게 되고 다시 읽게 되는 거야.
P73(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나는 언제든지 자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태도가 시라고 생각해. 여러가지 각도에서 언어에 대해, 언어와 삶의 관계에 대해, 매 순간 천착하는 거, 그 태도가 나는 시라고 봐.
P79 (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 붓글씨도 마찬가지라고. 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획이 지나가는 거, 그걸 개칠이라고 하지. 그건 살아 있는 힘의 맥을 죽이는 거야. 붓음 심장의 떨림과 힘을 전달하는 도구야. 떨리면 떨리는 대로 힘이 넘치면 힘이 넘치는 대로 써나가야지 붓을 기울여 모양나게 그리면 안 된다고. 붓을 똑바로 들고 힘껏 붙잡고 쓰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 눕혀서 형상을 그리면 예쁘게는 쓸 수 있지만 나를 직방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내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가란 소리야.
P84 (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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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인터뷰 - 김화영『문학동네』2013년 겨울호인터뷰 >를 읽고.)
그래, 대구에서 청주로 이사를 한 후에 대구 사투리를 안쓰고 청주 지역 사람들처럼 되는 방법 중 여기 말투를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여기 사람들을 관찰하고 말투를 따라하며 익숙해졌는데 대구에 가면 이제는 내 말투가 바뀌었다며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짐도 느꼈다. 이토록 중요한 말투, 언어를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으면서 어느 순간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말투는 잊고 지냈구나 그때를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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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숭숭 바람이 드는데 도통 창문이 안 보이니까 깜깜도 하고 막막도 한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창문이 열렸으니 창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려니 이왕에 그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마음.
P98 1월 6일 에세이(체리와 땅콩이면 안 잊힐 터)
🔖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서로 갈리어 멀어짐, 그 이별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직진과 후진으로 표기해도 가히 무리는 아니리라.
P112-113 1월 9일 에세이(오늘은 사랑하는 후배 서유경의 생일이다./때론 이른봄이 이렇게도 들이닥치나보다)
🔖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이 구절부터 옮겨적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법정스님)
P116 1월 10일 에세이(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 여러분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글 말미가 이쯤이다 싶어서일 텐데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어떤 끝의 순간에 그 끝이라는 단어를 보무도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P131 1월 11일 에세이(허수경시인을 떠올리며/수경을 보라 수경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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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식과 독자인 나의 의식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더듬어가는 길. 길건 짧건 소설책을 다 읽은 후 덮고 나면 기억 속에 남아 번뜩이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디테일들, 그 디테일들이 모여서 만드는 무늬나 형식, 혹은 지향, 그 속에 서려 있는 작가의 체취와 마음의 진동 때문에 또다시 그 텍스트를 찾게 되고 다시 읽게 되는 거야. - P73
나는 언제든지 자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태도가 시라고 생각해. 여러가지 각도에서 언어에 대해, 언어와 삶의 관계에 대해, 매 순간 천착하는 거, 그 태도가 나는 시라고 봐. - P79
붓글씨도 마찬가지라고. 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획이 지나가는 거, 그걸 개칠이라고 하지. 그건 살아 있는 힘의 맥을 죽이는 거야. 붓음 심장의 떨림과 힘을 전달하는 도구야. 떨리면 떨리는 대로 힘이 넘치면 힘이 넘치는 대로 써나가야지 붓을 기울여 모양나게 그리면 안 된다고. 붓을 똑바로 들고 힘껏 붙잡고 쓰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 눕혀서 형상을 그리면 예쁘게는 쓸 수 있지만 나를 직방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내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가란 소리야. - P84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숭숭 바람이 드는데 도통 창문이 안 보이니까 깜깜도 하고 막막도 한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창문이 열렸으니 창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려니 이왕에 그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마음. - P98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그 일생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간다와 갔다로 표기해도 필시 억지는 아니리라. 나는 살아 너에게 가고 있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서로 갈리어 멀어짐, 그 이별을 말로 재는 줄자가 있다면 그 눈금의 시작과 끝을 직진과 후진으로 표기해도 가히 무리는 아니리라. - P112
여러분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글 말미가 이쯤이다 싶어서일 텐데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어떤 끝의 순간에 그 끝이라는 단어를 보무도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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