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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평점 :
『어느 작가의 오후』
Afternoon of an author
F.스콧 피츠제럴드 X 무라카미 하루키
인플루엔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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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편집하고 번역해 화제가 된 《어느 작가의 오후》는 피츠제럴드의 작가 활동 후기에 속하는 단편 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을 담았다. 작가 활동 시작과 함께 피츠제럴드 번역가로서 경력을 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리뷰들이 글의 시작마다 있다. 글은 언제 어디에 실렸는지, 간략한 내용과 느낌을 기록했는데 소설 읽기 전에 북메이트가 안내해주는 느낌이라 이해하는데 좋았다.
작품들은 피츠제럴드가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글을 모은 것으로 어두웠던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있었다. 술에 쩔어있고, 경제난으로 어려워 상업적 글을 써야했던 시기임에도 글을 놓지 않았던 의지때문이었는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재평가 되기도 했다.
유려한 문장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삶의 고뇌와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잘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었다. 인물에 투영시킨 감정보다 본인이 화자로 나설 때와 마음가짐(?)이 달라서 그런지 좀 더 진솔하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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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국의 여행자>
알래스카에서 모피사업으로 돈을 번 미국인 넬슨은 자유를 찾아 아내 켈리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상착의로 자신들과 어울릴만한지 기준으로 시간을 보낸다. 속물이 아니라며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고 백작 계급만을 믿고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결국엔 허영심이 그들의 평온함과 사랑과 건강을 잃게 했다. 자신들이 괴괴한 달빛 아래에서 본 검은 형체는 다른 부부였을지 혹은 그들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들의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다.
인생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뭔가가 손상되었고, 둘 사이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 P24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곳이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P43
📚 소설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
원제 ‘Two Wrongs’은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잘못이 더해지면 절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부부 사이의 위기를 그리는데, 이는 실제로 피츠제럴드 부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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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만 도는 남편 빌. 에미는 아이를 낳으러 병원으로 갔다 현관 앞에 넘어지며 사산했다. 빌이 경제적으로 힘들고 건강도 요양을 해야하는데 에미는 아들과 자신의 꿈인 발레리나를 하기로 선택한다. 자업자득.
사랑에서 미움, 연민으로 변화되는 마음은 더 이상의 행복을 기댈 수 없는 포기한 사람이 느끼는 것 아닐까. 잘못을 후회하고 다가서도 상대는 용서도 넘어선 공허한 마음으로 맞이한다면 둘 사이에는 무엇이 남았나.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가슴속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빠져나가면서 남긴 공간을 느꼈으며, 어느 순간 전부 다 빠져나가서 사라져버린 것을 느꼈다. 그러다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고, 심지어 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P96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 있을 때, 마지막으로 거짓 없이 솔직한 순간이 찾아왔다. 자신이 금세 이 일을 잊어버리고 오늘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P107
📚 소설 <크레이지 선데이>
피츠제럴드가 1930년대 초 할리우드에서 일할 때 경험한 몇 가지 사건이 소재로 쓰였다. 실제 주인공과 같은 실수를 했는데 억누르지 못하는 자기과시 욕구가 개인적인 약점이라고 소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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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여배우 엄마를 둔 할리우드 영화각본을 쓰는 조얼은 영화감독 마일스의 초대를 받는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는 조얼은 칵테일을 마신 상태에서 자신의 장래를 쥐고 있는 영화계 인사들이 보는 가운데 배우와 작품을 풍자한 토막극을 한 후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람들은 아마추어 조얼을 향해 분노를 했고 집단의 비난과 퇴짜를 감지했다. 마일스 아내 스텔라의 친절함도 집으로의 초대도 모두 마일스가 계획한 것에 조얼은 속은 것은 아닐지. 자신감으로 계획도 못알아차림 건지.
냇 키오의 도움을 받아 코트를 입을 때 거대한 파도 같은 자기혐오가 조얼의 마음속에 밀려왔고, 조얼은 더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절대로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P125
📚 소설 <바람 속의 가족>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남부 시골 마을에 재능과 학식을 겸비했음에도 알코올의존증으로 인생을 망친의사. 거대한 토네이도 묘사의 큰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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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의사로 진료보다 약국을 하며 살길 바라던 닥터 포레스트 재니가 의사가 부족한 시골에서 고뇌를 하는 장면과 토네이도가 소리로 공포감을 얼마나 주는지 묘사가 잘 나와있었다. 총을 머리에 맞은 조카를 수술하는 것이 술때문에 할 수 없다면서도 의사의 사명감은 불쑥 튀어나온디. 의도치 않게 토네이도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헬렌과 돌아오겠다는 약속때문인지 몽고메리 시로 돌아가는 객차 안에서 술을 멀리하겠다 한다.
토네이도가 덮치자 모든 환경이 변화되고 혼란스럽다. 닥터 재니도 명성을 가졌지만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은 혼돈 속에 있다. 꼭 토네이도 처럼.
맨 먼저 소리가 있었고, 그는 소리의 일부가 되었다. 소리에 휩싸이고 소리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그의 존재를 소리와 분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소리가 모인 것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였다. 거칠고 날카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거대한 활이 현을 켜서 만들어내는 우주의 화음이었다. 소리와 힘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P171
📚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
글은 안써지는데 젤다가 병원 입원으로 거액의 빚까지 있어 산업적인 잡지 회사에서 요구하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연애 소설은 쓰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소설’ 형태로 어두운 일상을 그린 것은 피츠제럴드의 심경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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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써지지 않는 작가. 밖으로 나갔다 젊은 이들이 라파예트의 동상 높은 받침대에 서로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본 후 고립된 자신의 작가라는 직업에서 뭔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돌아간다. 하나의 착상으로 또 발전시키길 바라며.
과거와 미래와 주변의 이야기 탈탈 털어 소재로 글을 쓰지만 고갈되버리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창작의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완벽한 신경증 환자로군.“ 그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디어의 부산물이자 꿈의 찌꺼기인 인간이야.“ P205
📚 소설 <알코올에 빠져>
이 소설도 작가의 이야기 같다. 에스콰이어 편집장 아널드 기글리치가 원고를 게재해 작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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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 중독자는 술에 의존하고 중독된 것이 결국 죽음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므로 도울 수 없다고 간호사는 이야기한다.
중독자를 상대하는 것은 그들의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도 있을 것 같다.
📚 소설 <피네건의 빛>
작가는 빚에 떠밀려 정신없이 사는 자기의 생활을 픽션이라는 형태로 희화화하고 있드. 일종의 유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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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을 주겠다며 선금을 받고 글을 쓰겠다며 떠난 피네건.
글을 향한 열정일까. 돈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여유로운 작가에게서만 좋은 글이 나오는 걸까.
📚 소설 <잃어버린 10년>
1928년 준공된 아미스테드 빌딩을 설계했다고 말하는 트림블. 오리슨은 그가 10년동안 무슨일을 했을 까 궁금해 했다. 감옥에 있었을까, 제독의 남극 비밀기지나 브라질 정글에서 실종된 조종사들일 거라 생각하는 중 엉뚱한 대답이 나온다. 결국엔 10년간 술에 취한 사람이었다는 헤프닝.
짧은데 재미있지만 뭔가 담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나는 못찾고 있다.;;
"콜포터가 1928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미국에서 새로운 리듬이 생겨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P267
📚 에세이 <나의 잃어버린 도시>
내가 다니던 학교, 함께 있던 친구, 사람들 모두 떠났다. 뉴욕의 호황은 뜨겁고 활기가 있지만 모호하고 막연한 분위기다. 변해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붙잡고 싶기도했고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울기도 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변해가는 주변의 모습도 이러할 텐데 작가도 많이 아쉬운 모양이다😅
도시의 속도는 급격히 변했다. 1920년의 불확실성은 이제 황금을 좇는 한결같은 아우성에 묻혀 사라졌고, 우리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부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1927년 뉴욕의 들썩거림과 초조감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파티는 점점 더 커졌다. P292
📚 에세이 <망가진 3부작>
-망가지다/붙여놓다/취급주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에세이를 쓸 때 망가진 3부작과 나의 잃어버린 도시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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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망가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동안 자신은 저당잡힌 삶을 살아왔다 생각하며 붕괴되고 있다고 느낀다. 활기로 가득찬 여인을 만나며 내부의 균열이 아니라 세상은 인식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며 달리 생각해보라고 한다. 작가는 이런 불안정한 감정들을 글로 나타내는데 탁월하다.
망가졌지만 붙여놓았고, 갑자기 취급주의에서 반성을 한다. 지각 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그럼에도 살아남았으니 살아갈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인생이란 대체로 개인적인 문제였다. 나는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과, 싸우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실패가 불가피하다는 확신과 그럼에도 ‘성공‘하겠다는 결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특히 과거의 성과가 주는 압박감과 미래의 고상한 의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했다. 만약 내가 흔히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ㅡ가정적, 직업적, 개인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일을 해낸다면, 나의 자아는 힘껏 쏜 화살이 거침없이(마침내 오직 중력에 의해 땅에 떨어질 때까지)무에서 무로 날아가듯 그렇게 계속 날아갈 터였다. P305

📚 에세이 <젊은날의 성공>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P354)” 이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장일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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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물과 내가 하나 되었던 짧은 순간, 충만한 미래와 열망에 들뜬 과거가 하나가 된 찬란한 순간은 젊은 날의 성공처럼 인생이 진정 하나의 꿈이었던 그 때.
🔖내 꿈은 이른 시기에 실현되었고, 그 꿈의 실현에 수반하여 모종의 보상과 모종의 짐이 생겨났다. 너무 일찍 성공을 이룬 사람은 운명이라는 신비로운 관념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의지력에 대척되는 개념이다.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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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인생이란 대체로 개인적인 문제였다. 나는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과, 싸우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실패가 불가피하다는 확신과 그럼에도 ‘성공‘하겠다는 결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특히 과거의 성과가 주는 압박감과 미래의 고상한 의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했다. 만약 내가 흔히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ㅡ가정적, 직업적, 개인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일을 해낸다면, 나의 자아는 힘껏 쏜 화살이 거침없이(마침내 오직 중력에 의해 땅에 떨어질 때까지)무에서 무로 날아가듯 그렇게 계속 날아갈 터였다. P305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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