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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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성해나 지음
창비 출판

 


 

사진관집 아들로 불리는 기하는 아버지가 재하어머니와 결혼하며 여덟 살 어린 재하와 새로운 가족으로 산다. 아버지가 재하에게 살갑게 해줄 때마다 그 모습이 고깝다. 그래서 기하는 더 재하와는 친해질 수 없었을까. 서로 마음을 보듬어 주며 살자고 모였기에 잘 지내보려고 상처주지 않으려고 아끼는 말들이 가슴이 아프다. 

 

특히 모질게 밀어내는 기하때문에 재하어머니가 결국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엄마를 바라보는 재하의 마음이 느껴져 속상했다. 재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불쌍했고 안쓰러웠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응석 부리고 싶은 시절에 눈치보고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누가 될까 표현을 참는 모습이 내내 신경쓰인다. 

 

시간이 흘러 재회를 한 기하와 재하는 어색하기만 하다. 서로 성공하거나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음 했지만 꾸역 꾸역 살아가는 것을 들킨 것 마냥 현재를 마주하는 게 어렵다. 기하는 그 때의 어려서 인정하기 싫었던 재하어머니와 재하를 자신이 피하기만 했었고 가족의 관계가 유지되지 못한 탓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만난 재하를 궁금해하고 다가가보려 한다. 하지만 재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과거에서 기하는 완전히 벗어닐 수 없는 무게들로 나아가지 못한다. 

 

재하 역시 과거 형과 가족이었다면 함께 했던 추억이 가장 즐거워서 였을까 기하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거리감을 두는 형의 마음을 알기때문인지 지금의 만남조차도 나중에는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음때문인지 스스로가 한계점을 두고 있었다. 

 

책을 덮고나서도 제목처럼 기하와 재하를 그 곳에 두고 온 것만 같은 텅빈 느낌이 계속들었다. 슬픈 인물들이지만 또 함께의 기억들로 서로가 전하지 못한 마음을 언젠가는 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책 속 밑줄긋기

 


📚기하
   
검진이 있는 날이면 재하는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졌고 더 크게 웃었다. 겁이 나는 걸 감추려 안간힘 쓰는 게 빤히 보였다. 내가 모르는 재하의 표정. 그런 것이 언뜻 비칠 때마다 그 애를 향한 묵은 오해나 염오가 한층 누그러졌다. 면을 건져 먹는 재하를 보며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 P26


재하 모자 때문에 곤란을 겪으면서, 매일 밤 기나긴 언쟁을 벌이면서 아버지는 왜 이렇게까지 가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걸까. 아버지를 이해해보려 해도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 사이 단단하게 엮여 있던 굵은 선 하나가 점점 헐거워지다 어느새 툭 끊긴 느낌. P36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P38

 


📚재하


형이 넘겨준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커널형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우리는 등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사 없이 반복되던 멜로디와 코끝을 간지럽히던 은은한 등나무 향기, 앞머리를 쓸어올리던 바람. 
말보다는 표정이나 분위기, 실루엣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하형이 제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P53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P58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P74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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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 P38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 P58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 P74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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