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장편소설
박소현 옮김
다산책방 출판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베스트셀러 『작은 땅의 야수들』이 기백 넘치는 호랑이에 한국인의 혼을 담은 ‘호랑이 에디션’으로 1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소설이고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라는 점은 『파친코』가 생각났지만 『작은 땅의 야수들』은 독립운동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일환으로 호랑이 사냥을 하던 일본인들의 만행이 근대사의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묘사되어 있었고, 우리 민족의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불굴의 의지가 잘 표현되어 더욱 실감 나게 읽을 수 있었다.
1917년 겨울 일제강점기 조선, 깊은 산속 굶주림으로 짐승을 쫓으며 산을 헤매던 사냥꾼은 호랑이를 만난 일본군 대위 야마다 겐조를 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호랑이가 먼저 죽이려 들지 않는 한, 절대로 호랑이를 죽이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아 새끼 호랑이가 사정거리 안에 두고서도 활시위를 당기지 않지만 일본군은 돈이 되는 호랑이를 총으로 쏴 죽이려 한다. 화가 난 호랑이를 남경수가 막아서며 일본군을 구하게 되고, 야마다 대위는 적에 맞서 동맹군을 몸 바쳐 보호하는 위엄을 가진 호랑이 사냥꾼 남경수를 존중하게 된다. 길을 안내한 백 씨는 바로 죽인 반면, 호랑이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것에 대해 보답으로 살려줘야 한다며 그를 두둔하고 목숨을 구해준다. 선물로 남경수에게 라이터 주었는데, 훗날 아들 정호는 아버지의 유품인 라이터를 소중히 간직한다. 누이는 마을 홀아비에게 시집을 보내고 정호는 스스로 살기 위해 경성으로 향한다.
인물들 중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나 열 살에 견습 기생으로 팔린 옥희에게 조금 더 애정이 갔다. 소설의 많은 내용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사냥꾼의 아들인 정호보다 참혹했던 그 시대를 견디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기생이었던 옥희의 삶을 통해 기생은 예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주기도 했고, 경성에 택시나 전차가 등장하여 인력거꾼의 줄어드는 일자리를 일종의 동정심같이 자신들이 조금은 보전해 주고자 인력거를 탔으며 자신들의 공연을 통해 그들의 자녀들의 사립학교 모금을 마련해 주기도 하며 일본으로 인해 바뀌어가는 한국의 모습들 속에 전통성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그리고 옥희를 보며 가장 중요한 권력과 자신밖에 모르는 남자를 절대 사랑하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얻는데, 안동 김씨 본가와 연이 끊긴 가난한 장남 인력거꾼 한철과 사랑에 빠져 그의 대학 등록금과 가족의 생활금도 주었지만 6년의 사랑 동안 돌아오는 것은 현재 배우이지만 과거 기생과는 가문의 명예가 있어 옥희와 결혼만은 할 수 없다 말하며 둘 사이는 끝이 난다. 기생으로 한몫 챙겨 노후를 준비해야 했던 옥희와 연화는 영원할 거라 믿었던 불같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직업도 노후준비도 모두 놓치고만 꼴이다.
무자비한 일본군에 짓밟힌 월향이라는 인물은 그 시대 여성들이 힘없이 당해야 했던 참혹함에 화가 났다. 권력에 맞선 복수는 꿈꿀 수도 없이 한 소녀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그냥 꺾이고 짓밟혀 버렸으니. 교양은 찾아볼 수 없을 야만적인 행태들로 그것을 정복이라 말하며 웃고 있는 모습은 읽으면서 속에서 감정이 거칠게 치밀어 올랐다. 마치 내가 그 장면 속 만행을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복받치는 분노를 억지했다.
젊은 남자 한 명이 3.1운동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을 크게 낭독하는 장면에서 밀려오는 감동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와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옷을 입고 머리도 단정히 하고 다녔는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과 붙잡혔을 때 한국을 대표하여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했다는 말을 읽으며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았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3.1운동에는 단이를 중심으로 분칠한 여자들이 두려움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손을 맞잡고 대항한다. 기생이었음에도 사랑에 헌신하고 나라를 위해 쓰임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육체를 내 던져서라도, 배우지 못했어도 나라 잃은 설움을 알고 자주 독립해야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일제강점기의 억울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을 꿈꾸지만 돈에 백발의 권력 있는 남자의 첩으로 살기를 택하는 것이 최선인 기생의 인생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꿈꿔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꿈꾸어보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기생들. 월향. 은실. 연화. 옥희. 예단. 그들은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지만 인생이었지만 풍류를 알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리 밑 고아 거지들의 왕초가 된 남경수의 아들. 정호는 상경해 미꾸라지라는 또래 소년을 만나 아이들의 거지 왕초 영구를 만나게 되는데 영구를 제압하고 자신이 새로운 왕초가 된다. 중국집, 카페, 한약방 등에 자리비를 명목으로 수금을 하며 패거리가 된다. 정호는 옥희를 향한 짝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한철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되자 사회사상가 이명보를 만나 독립운동의 임무를 받고 활동하게 된다. 옥희에게 상처 준 한철에게 복수하는 정호를 보면서 호랑이 잡던 사냥꾼 아들이 큰 활약이 아니라 사랑의 복수 따위를 하다니! 공산당 이명보의 손발이 되어 딱히 큰 업적을 남기지 않은 것도 실망감이 컸다.
출판사와 자전거 사업을 하는 김성수는 일본이 승리할 경우 한국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이명보는 왜 우리가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지 합리적이지만 정의롭지 않다고 되려 설명하게 된다. 단이와 인연이 있던 김성수는 이명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독립운동 선언문을 인쇄해 주는데, 이 인쇄판이 결국은 친일로 편안히 살던 김성수에게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물이 되어 해방 후에도 벌을 줄 수 없었다. 김성수는 친척과 집안이 모두 친일이었음에도 일본과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축적한 부로 잘 살아간다.
사냥꾼 남경수는 호랑이가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은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은 어머니가 호랑이가 되어 자신을 돌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 땅에서 최고 포식자인 호랑이가 우리를 지켜준 듯, 이 땅에 야수들이 존재했었으며 몸집이 크고 힘센 모습이 아닌 연약한 여성도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야수가 내면에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읽는 내내 가슴이 끓어올랐고 독립운동이 무사히 거사가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경우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직하게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하는 인물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겠다.

🔖 각 지역의 특성을 빗댄 옛말을 따라, 사람들은 남자를 ‘평안도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물론 그 사나운 야수들은 평안도뿐 아니라 이 작은 땅의 모든 산과 숲마다 넘쳐났기에 고대 중국은 이곳을 ‘호랑이의 나라’라 부르기도 했을 정도였지만, 확실히 그 별명은 남쪽에서 왔다는 농부들보다 그 남자에게 훨씬 잘 어울렸다. P20
🔖 그러나, 야마다는 순간적으로 그 남자의 눈 속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보았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은 다르기보다 오히려 비슷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에게는 각자의 편에 있는 민간인들보다 자신과 맞선 상대편 군인들이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기 마련이다. 비록 외양은 초라할지언정, 남경수는 자신의 적수들을 기꺼이 살해하고 동맹군을 몸 바쳐 보호할 인물 같아 보였다. 야마다는 그러한 위엄을 존중했다. P44
🔖 아마도 이것이 예전에 어머니가 교육이 끼치는 해약에 대해 경고했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눈앞에 남자 한 사람 보이지 않아도, 언어 자체가 옥희를 유혹했다. 옥희는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나열하면 자기 내면의 모습도 마치 가구를 옮기듯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마리 춤추는 나비처럼 언어 속을 누볐다. 내면에 쌓이는 단어들이 계속해서 그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가는데도 외부에서는 누구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없었다. P68
🔖 옥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절대로 비굴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정호가 가진 지식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흘렀으며 제 스스로 고통을 키워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옥희는 그가 장독 같은 마음 안에 깊이 묻어준 것을 꿋꿋이 지켜내리라 확신했다. 씨처럼 떨어져 내린 곳에서 멀리 탈출하기는 힘들 테지만, 갇힌 존재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정호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P163

🔖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남학생이 손에 들린 커다란 대자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혼자만의 목소리는 먼 거리 까지 가 닿지 못한 채 도중에 사그라들어야 마땅할 텐데, 싸늘한 주변 공기를 타고 증폭된 듯 도리어 공원 전체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인파로 가득한 광장은 물을 끼얹은 듯 소름 끼치는 침묵에 휩싸였다.
“우리는 인류 평등이라는 불가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후세까지 영원토록 자주권과 생존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전 세계 앞에 이를 선언하려 한다. 이는 인류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적 윤리, 하늘의 법령, 그리고 우리 현대의 정신과도 나란히 발맞추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떤 힘으로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P195

🔖 인생을 통틀어 아마 두 번은 없을, 말 그대로 천재일우의 순간이었다. 어느덧 한낮이 한참 늘어진 오후 3시, 영구의 개가 햇볕 속에 나른히 눕곤 하던 자리엔 마른 낙엽들만 모래 위에서 바스락대고 있었다. 정호는 무의식적으로 이 모든 풍경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 과거 자신에게 깊은 굴욕을 안긴 누군가에게 모욕을 대갚음하는 이 행복의 순간을 나중에 실컷 곱씹을 수 있도록 말이다. P441
🔖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P603

아무런 인정이나 대가를 받지도, 기대지도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에 일조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책의 시초다. (작가의 말)
#작은땅의야수들 #김주혜 #장편소설 #다산책방 #다산북스 #리커버특별판 #호랑이 #책추천 #베스트셀러 #읽을만한책 #서평
❤︎ ‘다산북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옥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절대로 비굴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정호가 가진 지식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흘렀으며 제 스스로 고통을 키워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옥희는 그가 장독 같은 마음 안에 깊이 묻어준 것을 꿋꿋이 지켜내리라 확신했다. 씨처럼 떨어져 내린 곳에서 멀리 탈출하기는 힘들 테지만, 갇힌 존재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정호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 P163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남학생이 손에 들린 커다란 대자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혼자만의 목소리는 먼 거리 까지 가 닿지 못한 채 도중에 사그라들어야 마땅할 텐데, 싸늘한 주변 공기를 타고 증폭된 듯 도리어 공원 전체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인파로 가득한 광장은 물을 끼얹은 듯 소름 끼치는 침묵에 휩싸였다. - P195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 P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