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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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정보라 소설집
래빗홀 출판






변기에서 괴물같은 존재가 나오고, 남편없이 임신이 되고 난 후 남편을 찾는 이야기들은 판타지 소설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무관심관 현실같아 보였다. 모두 자신의 일이 아니면 냉소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 그래서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야기들이 모두 쎄다! 읽고 나면 ‘후-’하는 긴장감과 반전, 오싹함이 스며있다. 공포의 분위기도 다양했지만 기괴하지만 또 가까이 다가가고픈 캐릭터들도 매력이 있다.

환상과 재미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공포의 존재가 된 이유나 복수 상대를 내 손을 거치지 않고도 죽이는 통쾌함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어둡고 추하고 악함을 갖고 있다 생각한다. 숨겨야하고 보이면 내 존재가 부정되거나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을 책 속에서는 스토리로 인물들로 보여주며 조금은 숨기고 있는 불안이 해소되는 듯했다.

*정보라 작가님 친필 사인본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






<저주 토끼>

저주를 내릴 줄 아는 할아버지네는 대장간을 하는데 마을의 큰 술도가 회사를 운영하는 아들과 친구다. 술공장을 더 크게 만들려고 현대화하고 감미료를 섞은 맛만 내는 술이 아닌 진짜 술을 만들려는 중 공업용 알코올을 사용한다는 경쟁업체가 만들어낸 거짓 소문으로 공장은 도산한다. 친구는 자살하고 부인도 따라 죽게되고 경쟁업체는 헐값에 공장을 사들여 술맛만 감미료를 섞어 만든다.
할아버지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저주토끼 인형을 그 집 안으로 보내어 3대가 모두 정신은 미치고, 온몸이 부서지고, 옥상에서 떨어지며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할아버지는 죽고 없지만 그 토끼와 함께 영혼으로 머무르는데, 분노와 슬픔과 원한을 사람들은 ‘나’에게 찾아와 해결책인 저주를 요청한다.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불문율에는 이유가 있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P34-35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 나이기 때문이다. P37




<머리>

시작부터 오싹했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나오다니!!
자신의 오물을 먹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혐오감이 든다. 다른 이들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지만 나에게는 화장실에 가는 것을 거부할 만큼 스트레스이다. 결국 자신이 혐오한 머리에게 자신의 세월과 지금 가진 옷가지를 빼앗긴 후 머리가 늙은 자신을 차지하고 원래의 나는 변기 속으로 넣어 물을 내린다.
섬뜩한 이야기 이지만 내 안의 내가 혐오한 어느 존재에 대해 나는 버리고 모른척하려고만 했지 그 혐오가 자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텅 빈 듯하기도 하고 꽉 찬 듯하기도 하고 쓰린 듯 저린 듯하기도 한 그 야릇한 공간은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있으면 이내 더럭 커져서 그녀를 점령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의미 없이 움직이는 화면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머릿속을 비웠다. 그러나 생각의 샘은 하염없어서 퍼내고 또 퍼내도 다시 흘러나오곤 했다…… P56-57



<차가운 손가락>

애인이 있는 사람을 빼앗은 죄일까. 교통사고가 나고 허우적대며 탈출을 시도하는 중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환각인지 실제인지 모르지만 빼앗긴 남자의 애인처럼 비아냥거린다. 살아남기 위해 탈출이 급박한 상황에서 반지가 중요하다며 찾는 모습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의 사랑도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사랑도 중요한데 과연 이끌린다는 감정을 도의적 관계를 어긋낼 만큼 용인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P86



<몸하다>

피임약을 오랜 시간 먹고 남자도 없이 임신 진단을 받는다. 남편이 되어줄 사람을 찾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빠없이 태어난 아이는 핏덩어리였다가 결국 혈액으로 변했다.

괴물과 귀신들이 나오는데 아이가 형체가 없다는 것에 공포보다 기괴하다는 쪽에 더 가까웠던 소설이다. 왠지 미혼모가 떠오르기도 했고,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여성의 이야기 같아 현실에서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없는 아기는 정상적인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일까. 혼자 잘 키울 수 있다 마음먹어도 그 의지로는 인정할 수 없는 건가.

어차피 임신도 혼자서 했으니 아이도 혼자서 키우겠다고 그녀는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으면 태아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과 공포, 혹시 지금 아이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자라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P105



<안녕, 내 사랑>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2호가 하지만 그 노래로 1호가 생각난다. 1호 로봇을 첫사랑이라 부르며 어떤 로봇들이 와도 그 감정은 대체될 수 없다. 인간을 향한 첫 사랑의 그 아련한 기억처럼 로봇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시대도 머지않아 다가오겠지..
하지만 주인 인간이 낡은 1호를 대체할 로봇을 알아본다는 것을 세스, 데릭, 1호는 서로 정보를 공유했고 버려지기 전 칼로 인간을 찌르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로봇으로 파멸까지 되는 시대. 인공지능이 무서워진다.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 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 버릴 수 없었다. P141



<덫>

덫에 걸린 여우의 피가 황금이 된다는 걸 알고 여우가 죽을 때까지 이용했다. 훗날 자식들이 태어났는데 아들 딸 쌍둥이들 중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물어뜯고 그 피를 먹으면 남자아이는 황금피를 흘린다.
인간의 욕심으로 시작된 일은 결국 파멸로 이끈다. 정당하게 번 돈이 아님에도 자신의 욕망으로 가족을 사지로 내몰고 본인도 그 자손에 의해 복수의 대상이 된 것 마냥 죽는다. 자업자득이다.

마음이 불안하니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되고,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하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 손해를 입은 것을 알면 마음이 더욱 불안에 떠밀려 결정을 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P168






<흉터>

자신들이 믿고 있는 주술, 환상, 믿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을 권리는 없다. 원시시대 애니미즘처럼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괴물에게 자신들의 구원을 바라고자 제물을 바쳤다. 제물은 삶에 대한 강한의지로 살아남았지만 환상과 함께 모두 사라진 곳에서 이용가치로 사용된 자신은 세상에서 무슨 의미일까.

같은 동굴 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소년의 세계와 벌레의 세계는 너무나 달랐고, 자신외의 다른 생명체를 드디어 찾아냈으나 그 다른 생명체는 소년의 고통이나 기대나 희망에는 무관심하였다.
소년은 쇠사슬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해서 돌에 부딪쳤으나 다시는 벌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년은 그래서 처음으로 흐느껴 울었다. 공포로 범벅된 정신 나간 비명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눈물이었다. P190




<즐거운 나의 집>

자신이 믿었던 가치관, 삶이 꼭 많이 배우고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었는데. 알지 못하고 알아보지 않으면 바보처럼 당하는 게 세상이다.
반전이 아주 강하게 다가오는 소설. 찜찜하지만 복수 아닌 복수들이 이어진다. 귀신일지 우연일지 모르는 일들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특히 지하실 아이!!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집 밖의 문제를 피해 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 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P284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욕망으로 거짓으로 사람을 꾀어내는 자들은 벌을 받는다. 선한 마음, 진심어린 마음으로 행동하면 나도 공주처럼 바람과 모래를 지배하는 사람처럼 인간의 삶 대신의 무언의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삶이 행복할지 알 수 없다. 공주도 인간의 삶을 선택했으니.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 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P295



<재회>

영혼을 보는 사람들은 그 존재를 본다는 것으로도 무서울텐데 따스하게 이해해주기보다 잘못된 행동이라며 학대를 한다.
이 소설의 캐릭터가 가장 위로 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고, 만난 영혼들에게 마음을 보이고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다. 해결되지 않는 병과도 같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도 알 수 없으니 꽉 막힌 어둠 속 홀로 있는 느낌일 것 같아 읽으면서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바닥까지 가라앉는 것 같다.

세상에 취향은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애초에 그 상황에 계속 머물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P337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348-349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 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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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안하니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되고,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하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 손해를 입은 것을 알면 마음이 더욱 불안에 떠밀려 결정을 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P168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집 밖의 문제를 피해 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 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P284

세상에 취향은 여러 종류가 있는 법이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애초에 그 상황에 계속 머물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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