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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사랑 ㅣ 오늘의 젊은 문학 8
박유경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월
평점 :
『여분의 사랑』
박유경 소설
다산북스 출판
“잊고 있던 내 마음 속 여분의 사랑을 보았다”

인물간의 오고가는 감정들이 한데 묶여있어 글의 한 부분을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다. 반전이 있거나 감정을 고조로 끌어올리지 않지만 잊고 있던 내 마음 속 여분의 사랑을 보았다.
내가 마음을 먹고 결심한 데에 대하여 부딪히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로 인한 분노들이 인물 속에 많이 보였다. 열린 결말들이 그동안의 세상의 어두웠던 면들을 잊지 않고 내면에 누르며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말 사소한 오해들로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에 눈치봐야 하는 일들과 잘못이 없음에도 나를 힐난하듯 바라보는 시선들에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때가 있는데 그런 시점들을 잘 살려내 준 것 같다.
단편들 중 <여분의 사랑>과 <루프> 소설이 좋았다.
여성은 힘없고 나약한 존재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약자로 늘 남성과 비교되고 올라갈 수 없는 한계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대상이 되기보다 자신이 주체가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자 하는 강함을 드러낸 점 때문에 좋았다고 느낀다.
📖떠오르는 빛으로
계절이 바뀌는 것에 무감해져서, 아름다운 것을 봐도 아름답지 않아서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많았다. 채아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로 살았던 때의 감각이 그리웠고, 희우 작가를 만나면 잠시라도 그때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P11
가현과 시현은 하민의 죽음이후에도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졸업을 해도 인도 여행을 다녀오며 서로 다른 구석이 많지만 함께 좋아한 희우작가 북토크를 계기로 만나게 된다. 서로 몰랐던 점이 많았지만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현은 시현이 말한 빛이 어떤 빛인지 알겠다고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가장 낮은 자리
그런 눈은 어김없이 지민의 가슴골에 머물렀다. 벗어야 벗겨지는 게 아니다. 노골적으로 보는 시선은 무례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 지민과 눈이 마주치면 김 기사와 비슷한 눈으로 웃어 보였다. P49
그저 두 남자의 수치를 목격했다는 것만으로 지민의 자리가 낮아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P50
지민은 추운 겨울 모델하우스 광고를 위해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일을 한다. 운전 중 벤츠 운전자와 시비가 붙은 김기사는 상대 운전자의 덩치를 보고 깨갱한다. 이십대 은호는 오십 넘은 팀장이 누님이라 부르라 하면 얼굴을 붉힌다. 지민은 이런 두 남자들이 지민이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야한 농담을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 혼자 있던 지민은 돌 하나가 누군가의 눈처럼 번뜩였고 지민은 돌 하나를 들고 차 주변을 도는 자신을 상상하며 가슴을 두근거린다.
지민도 어쩌면 그들과 같은 강함을 열망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열함이 내면에 있었던 것일까.
📖여분의 사랑
서른한 살의 다희가 스물여섯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주도 그랬다. 다희는 래시가드의 물기를 몇번이나 눌러 짜며 우주는 없다고 중얼거렸다. 엄마는 할머니와 아빠의 폭언에 메말라 버렸다. 메마른 사람이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주는 건 날카롭게 버려진 가시로 찌르는 상처뿐이었다. P75
“너네 엄마가 언제든 헤어지라고 했어.”
우주가 울컥한 목소리로 “알아”하고 대꾸했다. 우주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언제부턴가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다희는 온화했던 우주를 알아서, 우주가 군대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아서 이해하려 애썼고 원래의 우주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P75-76
폭력적인 우주와 함께 한다면 자신의 미래는 불행할 것이라고 다희는 안다. 사랑한다고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우주를 사랑해서 우주가 원하는 여행도 왔지만 폭력적 우주를 본 후 다희는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결정하고 우주를 떠난다. 주인집에 갇힌 개들을 보고, 썩은 물 냄새 진동하는 수영장물을 보면서 자신도 우주 안에 갇히게 되면 저렇게 물어뜯기고 썩어버릴 것이라 느꼈던 것 같다. 다희는 자신의 육체는 떠나왔지만 스물둘의 우주와 변해버린 우주사이에 여분의 사랑을 남겨둔 듯했다.
📖검은 일
아픔이나 상처가 없는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을 보듬어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라니……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게 뻔하고 희망 따윈 없다고 생각했으니 더 이상 춤추지 않고 어린아이들과 고개만 끄덕였겠지. P87
파란색으로 고꾸라진 수익률을 보니 웃음이 났다. 코인에 들어간 수많은 돈은 어디로 가는 거지? 바람이 불자 가루가 휘날렸다. 가루는 산발적으로 몇 군데 쌓여 있을 뿐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시훈은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숲속으로 흩날려 가는 가루를 눈으로 좇았다. P115
코인과 주식으로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젊은 영끌족이 생각났다. 노동으로 성실히 돈을 버는 것보다 쉽다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고위험 투자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검은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모르나 말 그대로 어떤 일인지 돈만 보고하는 일이다. 결국 그 검은 일은 자신의 인생마저 검게 변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시훈은 깨달았을까.
검은 일을 하는 중 어둠 속의 허기지고 가루에 중독된 짐승들처럼 생존을 위해 시훈도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과도 같이 자신의 중독과 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을 찾는 아버지와 지훈이 있으니 시훈은 악을 쓰며 살아 남을 것 같다.
📖변신을 기다려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비슷하게 가지지 못해 배제당하고 서러웠던 마음이 스물셋 되어서까지 잘 잊히지 않았다. 가진 게 많으면 있는 것을 누리며 없는 것을 드물게 떠올리지만, 가진 게 없으면 없는 것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았다. 원하는 걸 갖지 못한 지금의 경험이 차이를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데 쓰일까 봐 조바심이 났다. P128
시터 앱으로 만난 아이 ‘지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훔친 것을 본 후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낸 지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일지 자신의 과거 일들이 기억나서 인지 그 해결되지 않은 찝찝한 사건으로 인해 모든 아이들에게서 지후의 얼굴이 보인다. 모든 일은 그런 것 같다. 내가 조금만 신경써주었더라면 달라질 일이었을텐데 귀찮아서 때로는 나에게 피해가 올까봐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두고 두고 기억 속에 잔재로 남아 나를 괴롭힌다.
📖루프
아빠가 아픈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저씨와 하나하나 해나갔고 자, 오늘은 어딜 가볼까, 묻는 아저씨의 활기에 매료되었다. 나는 어쩌면 엄마보다 더 아저씨를 좋아했다. 아저씨가 아빠처럼 굴며 자리를 채워준 것을 거리낌 없이 충분히 받아들였다.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 속에서 나 또한 안정을 되찾았음을 엄마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P165
그런 일들이 왜 수치스럽게 여겨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분했고, 분함이 가시지 않아 한 번 당하고 나면 여러 밤 땀을 흘리며 악몽을 꿨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무뎌지지 않았다. 잠시 수면 아래에 잠겨 있지만 언제든 다시 떠올라 날을 세울 수 있었다. P166-167
질병이나 사고 같은 건 합의되지 않은 상태로 찾아올 텐데 그런 일이 생겼을 때를 견뎌주지 않는 관계를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지금껏 좋다고 여기며 맺었던 관계란 작은 입김 하나에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건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 되풀이될 게 분명했다. 끓어오르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가 얼마나 다른 종류의 인간인지 깨닫는 지난한 과정만 남았다. P182
🔘결핍이 많고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의 삶이란 언제나 흔들리는 대지 위에 발을 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선뜻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같은 자리를 맴돌며 외로워했고 그런 종류의 외로움은 누구를 만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P189
차가운 시선과 나를 모르면서 자신들의 기준에 걱정된다는 말로 할퀴듯 상처를 주는 것을 지수는 그들에게 차갑게 대한다.
임신한 여성은 기혼이며 정상적인 가정 속에서는 축복이나, 미혼일 때는 겪어야 하는 수치심과 경계심으로 자신이 결정한 생각에 대해 존중받지 못하고 걱정을 앞세운 동정의 눈빛과 기초적인 생계도 우려스럽다는 말들을 들어야 한다. 반대적인 의견에 대하여 작가는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세상에서 대우받기 바라고 그런 세상을 향해 대항하는 듯하다.

📖손의 안위
은수의 몸매와 외모를 지적. 영업을 위해 몸을 바꿔야 하다니. 손의 상처로 소매치기 범으로 몰렸음에도 은수는 그들에게 맞춰주고 굽히기보다 그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보여주고자 꼿꼿히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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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많고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의 삶이란 언제나 흔들리는 대지 위에 발을 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선뜻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같은 자리를 맴돌며 외로워했고 그런 종류의 외로움은 누구를 만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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