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P87
🏷️사랑은 시간을 멈추고 장소를 보존한다. P89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P90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P112
많은 문학이론가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 세계의 완강한 질서에 감히 도전하는 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 비타협의 결과로 그는 패배하고 말지만, 그 순도 높은 패배가 오히려 주인공의 궁극적 승리가 되는 아이러니의 기록,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 P120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 즉 ‘분인’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언제나 똑같은 ‘나’로서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면 그 앞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어떤 패턴(즉, 분인)이 생긴다는 것. ‘나’란 바로 그런 분인들의 집합이라는 것. P130-131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P131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P132
💬죽은 사람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두가 살인의 고통 속에 있다. 살인은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연쇄 살인이다! 죽은 사람만 생각하지말고 상실의 고통을 하는 사람들도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전국의 불특정 부모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 가진 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지당한 충고를 던진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비난하지 마라.’ P192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헤메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P207
“글쓰기는 ‘나’를 파괴하는 거예요. 칼끝을 자기에게 닿게 하세요.(……)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 치는걸 독자는 제일 싫어해요.”(《불화하는 말들》) 그의 최근 책 여섯 권은 괴롭다. 어디를 펼쳐도 ‘너는 가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경이라고 할까. 읽으면 비참해지지만 안 읽으면 비천해진다. P208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 (《무한화서》) 바로 이것이다. 생을 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