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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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신형철 시화詩話

난다 출판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이 책은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5부로 나누어 시와 시인에 대하여 말해준다. 

시화(詩話)

1. 시나 시인에 관한 이야기. 시화를 나누다. 

2. 문학 한문학에서, 시에 관한 비평ㆍ해설ㆍ고증과 시인의 일화 따위를 단편적으로 기록한 책.

작가는 이 책머리에서 2016년 한 해 동안 한겨레에서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연재한 글을 거의 수정 없이 책을 엮었다고 했다. 인생의 역사는 시작부분을 읽고 아들에게 바치는 책 같았다. 인생을 사는 방법을 시를 통해 깨닫고 알게 되기를 바란 것 같은데 너무 멋진 아버지 아닌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와 관련된 책, 장난감 등으로 아이의 현재에 시선을 맞추었는데 작가는 넓은 세상의 이야기들을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린 인생 그 자체의 역사들의 이야기로 인생을 알려주니 말이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 말하며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것이 시라 말했다. 시를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라 말하며, 인생을 그 시의 행과 연에 비유했다. 책 중간 중간에 이렇게 긍정과 부정이 함께 있는 문장들이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작가님 특유의 표현방식 같다.

시의 언어 안에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프롤로그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로 읽을 각오했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지만 한장 한장 시를 읽고 시에 대한 글을 읽으면 이 시가 이런 뜻이었는지 앞으로 넘겨가며 시를 다시 읽었다. 사실 시는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읽다보면 우연히 그 의미를 알게되는 때가 있는데 그런 시간이 좋아져서 시를 자꾸 찾게 된다. 왜 시를 썼는가도 알게 되는 것이 좋지만 시의 언어들이, 유희들이 매력적이라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시와 시인에 대하여 생각들을 쏟아냈다. 

나는 아름다운 시들과 달리 정치적 시들이 많은 최승자 시인의 책을 읽고 마냥 어둡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가는 최승자 시인이 《연인들》시집 이후의 정치색이 빠져버린 것에 못내 아쉬운 듯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과연 시인의 삶에 대해 몰랐다면 시의 해석이 서정시로 달리 해석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무조건 이해가 안돼서 어렵고 내가 이해한 것이 틀리면 나는 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시는 내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비평도 해보고 해석해보며 읽어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다. 시인에 대한 이야기와 시가 탄생한 배경, 시를 해석하기 위해 다른 시를 인용하여 설명해줌으로 예쁜 옷을 입혀준 듯 시를 보고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화는 정말 오랜만에 읽었는데 교양인의 삶에 잠시 다녀온 기분이 들어 좋았다. 한동안 시를 찾고 읽는 즐거움에 빠져있을 것 같다.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P44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견뎌낸 사람, 그런 사람만이 밟을 수 있는 장소가 시의 영토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볼 따름이다. 가장 처절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상하리만치 당당함을 잃지 않은 그의 시가 내 옆에 있으므로. P52

무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책임은 이제 당신에게 있고, 당신은 자신의 고통이 진실한 것임을 필사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모든 가족들”을 포함한) 이웃들의 눈이 경찰의 눈을 닮아갈 것임을 예감하며 심리적으로 고립된다. 

타인을 ‘안다고 여기는’ 태도는 언제나 위험한 것이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완전한 폭력이다. 이런 폭력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에게 권력이 있을 때 발생한다. P59

🏷️🏷️한 시인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불행한 편에 속한다 할지어도 그것을 타인이 주관적으로 확언하는 말을 하는 것은 부주의한 일이다.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해서 타인이 아무 때나 ‘그는 불행하다’라고 말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P67


「소네트73」

-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 해 중 그런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보리라.

전엔 예쁜 새들이 노래했지만 이젠 황폐한 성가대석.

추위를 견디며 흔들리는 그 가지들 위에

누런 잎들 하나 없거나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계절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해가 진 후

서녘에서 스러지는 그런 날의 황혼을.

만물을 휴식 속에 밀봉해버리는 죽음의 분신인

시커먼 밤이 조금씩 앗아가는 황혼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불타오르게 해준 것에 

다 태워져, 꺼질 수밖에 없는

임종의 자리처럼, 제 젊음의 재 위에

누워 있는 그린 불의 희미한 가물거림을.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청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다가 시인 자신도 그 청년에게 매혹돼버린 것. 하여 셰익스피어는 ‘시인인 내가 나의 언어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기려 불멸이 되게 하리라’라는 요지의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P78

🏷️🏷️내가 변함없이 존재하더라도 그대는 나를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대가 그렇게 보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속에서 늙는 것은 나나 그대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그 자체라는 뜻이 아닌가. P80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P87

🏷️사랑은 시간을 멈추고 장소를 보존한다. P89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P90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P112

많은 문학이론가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 세계의 완강한 질서에 감히 도전하는 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 비타협의 결과로 그는 패배하고 말지만, 그 순도 높은 패배가 오히려 주인공의 궁극적 승리가 되는 아이러니의 기록,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 P120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 즉 ‘분인’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언제나 똑같은 ‘나’로서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면 그 앞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어떤 패턴(즉, 분인)이 생긴다는 것. ‘나’란 바로 그런 분인들의 집합이라는 것. P130-131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P131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P132

💬죽은 사람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두가 살인의 고통 속에 있다. 살인은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연쇄 살인이다! 죽은 사람만 생각하지말고 상실의 고통을 하는 사람들도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전국의 불특정 부모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 가진 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지당한 충고를 던진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비난하지 마라.’ P192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헤메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P207

“글쓰기는 ‘나’를 파괴하는 거예요. 칼끝을 자기에게 닿게 하세요.(……)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 치는걸 독자는 제일 싫어해요.”(《불화하는 말들》) 그의 최근 책 여섯 권은 괴롭다. 어디를 펼쳐도 ‘너는 가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경이라고 할까. 읽으면 비참해지지만 안 읽으면 비천해진다. P208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 (《무한화서》) 바로 이것이다. 생을 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 P210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하지만 맞힌 사람은 잊는다는 것.”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그런 원장면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 때문에 이후 내내 일이 안 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이 안 풀릴 때마다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는 어떤 사건 혹은 장면. P220-221



서둘지 말고, 바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이 셋은 자주 엉킨다.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위험한 때다. 김수영이 걱정한 것도 그것이지 않을까.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P228


「나날들」

- 필립 라킨

나날들은 왜 있는가?

나날들은 우리가 사는 곳.

그것은 오고, 우리를 깨우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그것은 그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있는 것:

나날들이 아니라면 우리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아, 그 문제를 풀자면

사제와 의사를 불러들이게 되지

긴 코트를 입은 채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그들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막을 수는 없고 다만 잠수하듯 상기해 볼 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그는 역순으로 과거와 재회한다. 아직 아내가 살아 있던 때를,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던 때를, 어린 딸이 식탁 주위를 뛰어다니던 때를, 그리고 아직 도시가 물에 잠기기 전 그와 아내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던 때를, 어느새 바닥(1층)까지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자신의 집은 너무 높고 멀다. 언제 이만큼이나 산 것인가. 

P234-235 「나날들」 시를 이야기하기 위해 《작은 큐브로 만든 집》 영화의 은유를 한 것.

🏷️긴 인생을 짧게 줄여놓은 파노라마 영상을 볼 때면 으레 눈물이 흘렀다. 이미 살고 난 뒤에 되돌아보면 일생이란 저렇게 짧게만 느껴지겠구나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더 근원적인 감정은 어떤 분함에 가까웠다.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없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시간을 사는 인간의 이런 종적 결함이 원통해서 눈물이 났던 것일까. P234


내가 변함없이 존재하더라도 그대는 나를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대가 그렇게 보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속에서 늙는 것은 나나 그대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그 자체라는 뜻이 아닌가. - P80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 P112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 즉 ‘분인’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언제나 똑같은 ‘나’로서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면 그 앞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어떤 패턴(즉, 분인)이 생긴다는 것. ‘나’란 바로 그런 분인들의 집합이라는 것. - P130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하지만 맞힌 사람은 잊는다는 것."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그런 원장면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 때문에 이후 내내 일이 안 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이 안 풀릴 때마다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는 어떤 사건 혹은 장면. - P220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막을 수는 없고 다만 잠수하듯 상기해 볼 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 P234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없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시간을 사는 인간의 이런 종種적 결함이 원통해서 눈물이 났던 것일까.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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