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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ㅣ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문학동네시인선 101)
문태준 시집
문학동네 출판

‘복수초가 피면 제주에는 봄이 온다’
오늘 문태준 시인님과의 줌토크에서 제주에는 풀이 참 많은데 봄이 오는 것은 언덕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어요.
한 권의 시집이 주는 충만감, 이 계기로 시집을 읽으며 쌓이고 쌓이는 충만감은 큰 선물이 될 것이고 이것은 소중한 것이라 하셨어요. 요즘 저도 어려워서 시도조차 안한 시들을 찾아서 읽는 나를 발견할 때면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이 시도들이 쌓여 소중한 것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재현 편집자님은 이 시집은 기다림, 만남,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의지가 남는 시로 새해 읽기 좋은 시집이라 했는데 공감이 되었어요. 아직 겨울이지만 봄과 닮은 시집으로 시작해서 마음은 따스했습니다.
<어떤 모사>
마른 풀잎의
엷은 그림자를
보았다
간소한 선(線)
유리컵에
조르르
물 따르는 소리
일상적인 조용한
숨소리와
석양빛
가늘어져 살짝 뾰족한
그 끝
그 입가
그만해도 좋을
옛 생각들
단조롭게 세운 미래의 계획
저염식 식단
이 모든 것을
모사할 수 있다면
붓을 집어
빛이 그린 그대로
마른 풀잎의
엷은 그림자를
따라 그려보았다
✏️
문태준 시인은 <어떤 모사> 라는 시를 보면 지금 제주의 풀밭에 사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이 시가 특별하게 생각되었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빛과 물 소리들을 모사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반대로 모사를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일상의 일부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사이에>
오늘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감나무 감꽃 목걸이가 다 마르려면
오늘의 초저녁 이틀 나흘 닷새 아니면 열흘 아니면 석 달 아니면 네 철
하나의 물결이 우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도
암벽에 새긴 마애불이 모두 닳아 없어지더라도
✏️
<그사이에> 시가 기억에 남아요.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라는 문장에서 꽃이 피고 지는 동안의 시간이 언제 일지 알 수 없으나 언제든 꼭 다시 보자는 기다림이 느껴졌어요.
미륵이나 돌처럼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다른 시에서도 자주 보였는데요. 지금은 헤어진 연인일 수 도 있지만 만나는 동안의 예쁜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한 감꽃 필 때의 시간을 돌처럼 나는 그 때의 나로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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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당신의 호수에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진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
<호수> 시는 시 제목처럼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장을 발견했을 때 기뻤고,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구절은 사랑의 감정을 흔들리는 물결에 비유한 것이 꼭 나 같아서 와 닿았어요 😊

<사랑에 관한 어려운 질문>
너는 내게 이따금 묻네
너와 나의 관계를
그것은 참 어려운 질문
그러면 나는 대답하네
나란히 걸어가면서
나는 너의 뒷모습
나는 네가 키운 밀 싹
너의 바닷가에 핀 해당화
어서 와서 앉으렴
너는 나의 기분 위에 앉은 유쾌한 새
나는 너의 씨앗 속에
나는 너의 화단 속에
나는 너를 보면
너의 얼굴만 떠올리면
산나무 열매를 본 산새처럼 좋아라
그러면 너는 웃네
분수 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외투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

<꽃의 비밀>
숨을 쉬려고 꽃은 피어나는 거래요
숨 한 번 쉬어 일어나서 일어나서 미풍이 되려고 피어나는 거래요
우리가 오카리나를 불던 음악 시간에 꽃들은 더욱 보드랍게 피어났지요
꽃밭에서 꽃들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 홍조를 얹고 호흡을 주고받고 서로의 입구가 되었지요
꽃들은 낮밤과 계절을 잊고 사랑하며 계속 피어났지요
✏️
옛 사랑의 기억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꽃의 비밀에서 ‘숨을 쉬려고 꽃은 피어나는 거래요’ 문장처럼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뻤던 기억을 가슴 속 꽃 한송이 피어있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다린다고 그리움을 볼 수 없겠으나 그리움. 하면 그 때의 기억뿐이예요.
<작문 노트>
꽁지깃이 고운 새가 원고지에 내려앉는다
잘게 부스러진 글자를 쪼고 있다
나와 사월 사이 바람이 한들거린다
골격이 없는 남풍은 페이지에 숨는다
남풍은 나의 문장을 어루만진다
너의 부드러운 얼굴을 그려놓는다
작별의 눈물에 얼굴은 풀어진다
반복되는 질문과 습한 우울은 생겨난다
노트는 가랑잎처럼 다시 마른다
✏️
산책할 때 꽃봉우리들이 꽃이 피고 초록잎이 무성해지는 나무들을 볼 때 생동하는 자연을 느낍니다. 늘 보는 식물들의 모습으로 우리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미륵 석불>
나는 당신을 기다려요
산나물과 나무 열매를 얻으러 산속으로 간 당신을 기다려요
금방 돌아오마고 아랫마을로 간 당신을 기다려요
산들바람이 내게 불어오는 것을 보고도 나는 당신이 올줄을 알아요
떠났던 자리로 당신이 다시 올 줄을 알아요
큰 산 아래 작은 언덕은 홀로 앉아 길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당신은 저녁보가 한 발 앞서 오세요
개밥바라기보다 먼저 능선을 넘어 오세요
밤의 검은 암벽을 지나 오세요
어제의 오해가 다 풀리지 않았더라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제 앞 아니더라도 어디에든 당신은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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