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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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글을 쓰는 내내 필요했던 것은 노련한 문제도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용기였다."는 문장은 이 책의 함축적 의미 같았다.

캐나다 이민자의 설움으로 외톨이 같은 기분으로 산다. 눈을 치워주는 선한 이웃의 배려를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범법자는 아닐까 의심과 오해로 생각이 가득이었지만 이웃은 쿨하다. 마음은 이처럼 내가 위축되어 있을 때에는 상대방의 호의 조차도 나를 흔들어 놓을까봐 경계를 긋는다.

말 안통하는 외국에서 잘못알아들으면 다 내 탓이다. 내 의사와 감정을 언어로 전달해야하는데 할 수없으니 자신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생계를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농담을 알아들어야 대처도 할 수 있는데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해 내 권리를 빼앗기는 것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남편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늘 희생한다. 숭고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방인으로 살면서 내 가족은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알아주는 부인이, 자식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벗어나면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다. 작가님도 그러했을까. 가난과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면 더 나을 것이라는 달콤한 상상을 했다. 그래서 1부 캐나다 이민자로 살면서 너무 불안해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릴 때의 성장과정에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로 마흔에 아이 여섯을 키워야 했던 엄마 아래 자라며 가난하고 생계를 위해 술집 가게를 하며 동네의 시선들로인해 그런 기억들로 늘 경계하는 피로감으로 살았구나 싶었다. 현재에도 벗어났다고 생각한 유년시절의 그늘이 남아있는 듯 하지만, 이제는 좋고 나빴던 모든 기억이 자신이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인다.

삶에서 리프레시는 꼭 필요하다. 힘들 때 돌아가라는 말처럼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는 나에게 쉼을 줌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 잠시 돌아갈 길을 아주 멀리 돌아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걱정과 두려움으로 힘들 때, 거친 파도를 치는 바다가 맑고 잔잔할 때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지 바다를 떠올린다면 그런 마음들도 지나갈 것이고 지난 시절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 속에서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하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상상하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스머프 마을 뒤편에 오종종하게 올라온 고사리를 또 봐버리고 말았다. 마음은 급히 흩어졌다.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은 비, 식물을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은 바람. 내겐 비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고사리는 5월 중순까지 계속 자라날텐데.

P21

유난히 마음이 여린, 서른이 조금 넘은 젊은 남자가 어린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이국으로 와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이제 나는 그가 그리 용감하지도 않고 배포가 큰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강인한 어른인 척하느라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P57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빨간 연필깎이를 떠올린다. 그걸 받아 들고 그에 대한 적의를 접어둔 채 고개를 깊이 숙여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던 그날. 날듯이 뛰어서 자개 화장대 위 제일 예쁜 곳에 그것을 얹어두고 만져보고 기뻐했던 기억. 그것이 어떻게 내게 왔든, 그가 그것을 가져다 주며 어떤 의도을 가졌든, 그건 무채색의 내 유년에 몇 없는 색깔이었다는 것과 그때 나는 그가 몹시 무서웠다는 것, 도무지 병치될 수 없는 두 개의 기억 중 어떤 것도 양보할 마음은 없다.

P75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달콤하게 바꾼 아버지의 하얀 설탕이 사실은 내 평생 써도 남을 유산이라도 된 듯 많은 날에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는 것 아버지는 알까.

P82


나는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하며 탈출에 성공했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조바심을 냈고, 이유 없이 불안에 시달렸으며, 타인의 호의를 믿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향의 기억은 질겼고 질긴 채로 뒤틀렸다. 나는 고향의 기억에 포획되지 않을 더 먼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매일 밤, 인과도 서사도 없는 곳에서 완벽한 익명으로 살아가는 달콤한 상상을 했다. 그런 곳에 닿을 수만 있다면 생은 저절로 리셋이 될 것 같았다. 내 운명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이 필요했다. 벤쿠버로 떠났다.

P86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아이는 그 말뜻을 알았을까.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소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P117

어쩌면 이토록 지리멸렬한 생을 흘러가게 하는 것은 무용하고 불가해한 것들일지도 모른다고.

P125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침은 시들했고 밤은 불온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를 좀처럼 찾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P163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고 적힌 이태리타월을 보며 숨넘어가게 웃다가 생각이 세 장기에 까지 닿았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끝도 없이 상상하며 스스로를 들볶아왔다. 그건 내게 닥친 실제의 일보다 늘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도 한편 생각한다. 현명하지도 못하고 걱정만 많았던 지난 시절이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걱정과 두려움이 때론 우리를 보호하고 어두운 골목을 힘껏 뛰게도 했을 거라고. 그러니 그 모든 순간이 다 내겐 때였다고. 나의 작은 마음 시절을 위로해주고 싶은 것이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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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내게 왔든, 그가 그것을 가져다 주며 어떤 의도을 가졌든, 그건 무채색의 내 유년에 몇 없는 색깔이었다는 것과 그때 나는 그가 몹시 무서웠다는 것, 도무지 병치될 수 없는 두 개의 기억 중 어떤 것도 양보할 마음은 없다. - P75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달콤하게 바꾼 아버지의 하얀 설탕이 사실은 내 평생 써도 남을 유산이라도 된 듯 많은 날에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는 것 아버지는 알까. - P82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 P117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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