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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평점 :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의 이야기이다.
MBC드라마 <일당백집사>의 주인공 ‘혜리’를 떠올리니 소설이 술술 읽혀졌다.
매일 죽음을 보내는 직업은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매일 시신을 본다는 것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소방관처럼 직업의 트라우마가 있지는 않을까. 읽기 전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앞부분에서는 장례지도사로 겪은 다양한 죽음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중 장례식장 일화로 형제들은 어머니를 ‘니가 잘 모셨네, 못 모셨네’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보다 책임전가하기에 바쁜 자식들의 싸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머님께서 직접 준비하셨다는 수의에서 편지와 현금 100만원을 발견하고 자식들은 어머니 자신의 장례비로 써라고 적혀져 있는 글을 보며 자식들이 오열하는 장면은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었다.
고독사로 부패가 진행된 시체와 구더기, 화재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시체들을 보면서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음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을 했다. 이 장면에서는 직업이었지만 다른이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살아있음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했을까 안타까우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도전하고 부딪혀가는 모습에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상대의 고독을 알게 된다면 모른척한다고 해도 이미 내 안에는 그의 고독이 들어와있을 것 같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잊어버리고 싶어도 들어온 고독은 쉽게 나가지 않겠지. 그가 고독을 담고 살았듯.
누구나 고독을 짊어지고 살지만 고독을 따뜻하게 품어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나이가 든 것일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고인과의 이별을 하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을 테지만 아직은 먼 것 같고 내 일이 아닌 것만 같기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이후의 삶은 완전 뒤바뀔까 똑같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먼 것 같지만 또 항상 가까이 있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다.
간접적으로 장례절차를 들여다 본 것 같았다. 꽤 많은 과정에 놀랐고 늘 장례식장에서 상주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례지도사가 도와주고 있었다는 걸 왜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싶다. 언제 가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장례지도사들을 찾아 그들에게 시선을 한동안 머무를 것 같다.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이지만 그녀도 미래의 직업과 삶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는 청년이고, 직업과 생업에 매순간 갈등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객 앞에서는 늘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CS 서비스업의 고충을 토로하지만 결국엔 상대방의 마음을 들으면 왜 그러했는지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은 천생 서비스직이 맞는 사람같았다. 이렇게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마음으로 이해하고 진심을 전달하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가 이 별에서의 이별을 잘 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끝.
📖책 속에서
이런 돌연한 상실감에 맞닥뜨릴 때면 죽음의 공포가 입과 코로 들어와 폐 속 깊이 똬리를 틀고 나조차 없애버리지 않을까 무섭다. 죽음은 이미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가와 있는 가능성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다. 일끝내고 술 한잔 하러 가자는 선배의 청을 그날은 거절했다. 취해버린다고 도둑처럼 찾아오는 죽음의 연기에서 달아날 수 있을까. 차가운 밤공기에 섞인 풀냄새 같은 살아 있는 체취가 간절해 밖으로 나갔다. 산소가 희박해지는 느낌 때문에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켰다. ‘하……’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p47
그 이야기를 엿들어버린 죄로 나도 모르게 날이 선 고독감이 내 안에 옮겨와 버렸다.
P63
죽은 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산 자의 죽어가는 목소리를 감싸 안는 일.
그것이 남은 이들의 숙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곰곰이 되뇌며
물끄러미 하늘을 한번 올려다봤다.
P80
멍울이 맺힌 울음은 언젠가 한 번은 터지기 마련이다. 매번 꾹꾹 눌러둔 눈물주머니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잠시 피해간다 해도 소용이 없다. 슬픔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으니까. 그러다 한순간 탁 하고 터져 흩뿌려진대도 어쩔 수 없지. 울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것을.
P86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죽어도 3일장만 치르면 집으로 가는데, 이들은 무슨 죄가 있어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 장례를 끝내지 못하고 진실을 울부짖으며 몸부림쳐야 하는가. 이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는 내 몫도 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남겨진 우리 모두의 몫이다. 푸르고 생기가 넘쳐 더욱 잔인했던 어느 날. 끝내 부르지 못한 노래 가락이 가슴속에 메아리쳐 울었다.
(세월호 합동장례식장에서) P116
붓끝이 종이에 닿기 전 주위의 소음을 마음으로 차단한 가운데 먹이 특유의 향을 진하게 내뿜으며 지면을 질주할 때에는 오직 자신감만 남기고 의심과 불신은 과감히 버린다. 신기하게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글씨가 달리 나왔다.
P141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듣는 훈계와 질책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번민이 되지만, 그것을 새기고 받아들이고 반응을 하면 마음속으로 공명을 하게 된다.
P157-158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오지랖’은 한복 두루마기의 앞자락을 말한다. 앞자락이 넓은 옷을 입으면 몸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두리번거리기 쉽다. 그래서 개인의 사적 영역을 무턱대고 들락거리는 사람을 가리켜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기척 없이 문을 발칵 열면 화들짝 놀라기 십상이다. 때론 가만가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P176
20대의 나는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며 매사에 채찍질을 서슴지 않았다.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나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훨씬 강인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해가며 나의 나약함을 질타했다. 궤도에 오르고 싶은 부푼 꿈만 염두에 두었지, 지쳐버린 몸은 돌보지 않았다.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그다음엔 또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한 채 살았을까. 누구나 단거리든 장거리든 한바탕 달리고 난 후엔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다.
삶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팽이를 돌리기 시작할 땐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회전하게 되면 곁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더 잘 돌라고 팽이를 계속 치면 되레 쓰러지고 만다. 때론 넘어지고 거친 바닥에 갈려 마모될지라도 나만의 중심축을 잡아가는 과정이니 그 흉터조차 아름답지 않겠는가.
P187-188
나는 아직 고욤나무에 불과하다.
하지만 늘 열매 맺는 꿈을 꾼다.
P225
죽음 사이에 일상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죽음이 당연한 듯 머무는 삶. 친구의 장례식이 열리면 모두 함께 추모하고, 한낮에 산책을 하며 봉안당을 한번 둘러보는 삶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들의 맑은 미소의 원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죽음을 진정 애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하고 상실과 변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P231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나보다 더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 것이 돈이다.
P237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책을 거두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인생의 한 조각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힘은 다른 곳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만나 내일의 내가 된다. 더는 주어진 환경에 아파하지 않고 내가 주도적으로 환경을 바꿔나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이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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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그 이야기를 엿들어버린 죄로 나도 모르게 날이 선 고독감이 내 안에 옮겨와 버렸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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