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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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살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을 출간한 박영규 저자의 책으로 20년간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를 9권이나 펴낼 정도로 대중 역사 저술가이다. 역사소설 활인에서는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침, 뜸, 탕약을 사용하였는지의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전문 한의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을지 수고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활인은 역사소설로 조선 태종 이방원과 세종대왕의 시대로 이어진다. 활인원이라는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기관에서 의승(의술을 행하는 스님) ‘탄선’과 오작인(시신을 다루는 천민) ‘노중례’, 의녀 ‘소비’가 가슴깊게 응어리진 채 병자를 구료하는 일을 한다.

문자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의술을 익힌 자들이 많았을까. 병이 들면 활인원으로 사람들이 오고 의술을 익힌 승려 ‘탄선’과 여제 ‘소비’가 병자들을 진료해주었는데 늘 손이 부족하니 무녀와 오작인이 함께 병자들을 돌보았다. 무녀는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고 받은 복채로 활인원의 적자를 메워주기도 하여 활인원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 같다.

역병이 든 마을에서 천민인 오작인 ‘노중례’가 ‘탄선’과 ‘소비’를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이 된다. 정몽주와 함께 고려왕조(공양왕)편에 섰다가 조선이 개국하고 고려가 몰락한 집안의 의술을 행하는 스님(의승) ‘탄선’과 국무(국가 행사로 치르는 굿을 주관하는 무당) ‘가이’의 양녀이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정도전의 손녀 ‘소비’, 그리고 살인자 누명으로 죽은 아버지로 집안이 몰락하여 노비 신세가 된 오작인(시신을 다루는 천민) ‘노중례’는 모두 부모의 죽음으로 인하여 복수의 기회를 노린다.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왕이 된 후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 피의 숙청을 하고, 충녕대군(세종)은 군주로써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 과학발전. 농업발전 외 백성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중 <향약집성방>이라는 향약과 한방에 관한 책을 노중례를 통해 편찬되었다. 세종대왕은 아버지와는 달리 백성을 위하고 살리는 '활인‘이 되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갈등은 더 했을 것 같다. 누워 있는 원수에게 장침 한방이면 죽여버릴 수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이기에 마음을 억누르는 장면들이 나올 때 마다 주인공들과 함께 나도 갈등을 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생을 쉽게 하는 원수와 다른 현재의 자신을 위해 그리고 활인의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원수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멜로가 없다! 역사 소설이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례’와 ‘소비’의 꽁냥꽁냥을 바랬던 나로써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노중례’가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도 반전이 크게 없었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서사들이 각자의 삶에서 현재를 위해 과거의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들은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아 짠하면서도 잘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중에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역병으로 ‘중례’와 ‘소비’를 죽이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 책 속 인물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이방원의 아들. 이도 충녕대군)

탄선. 정몽주와 함께 고려왕조(공양왕)편에 섰다가 조선이 개국하고 고려가 몰락한 집안. 의술을 행하는 스님 의승

가이. 국무(국가 행사로 치르는 굿을 주관하는 무당)

소비. 국무 가이의 양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정도전의 손녀

노중례. 살인자로 죽은 아버지 노상직의 억울함을 추적하는, 몰락한 집안으로 노비신세가 된 오작인(시신을 다루는 천민)

종심. 서활인원 무당 우두머리 수무당

📖 책 속에서

제아무리 도를 닦는다 해도 묵은 감정의 찌꺼기는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간 모든 것을 잊은 듯이 산 것이 되레 감정의 찌꺼기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정이란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람에 대한 분노와 마음, 그리고 배신감은 더욱 그랬다. 그것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하게 굳어져 어느 순간 결코 깨트릴 수 없는 돌이 되어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P 44

‘하늘이 낸 인재는 결코 사람이 만든 신분과 제도의 틀 속에 가둬둘 수 없는 것이다.’ P 48

 

소비는 그런 민씨를 바라보고 있자니, 밑도 끝도 없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간 숱한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정작 자신의 죽임이 닥치자 회한의 눈물까지 떨구는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럽게 여겨졌다. 단침 한 방이면 당장에라도 민씨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비는 가느다랗게 손을 떨었다. P 47

불구대천의 원수들을 매일같이 대하며 그들의 숨이 끊어지길 기다리는 삶이란 한마디로 지옥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매일같이 확인해야 했다. 매 순간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고, 매 순간 그 불길을 끄기 위해 스스로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들 둘 중 하나는 황천길로 떠났다. 또한 남은 하나도 숨이 끊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그의 몸 속엔 죽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원수 이방원의 몸 속에 똬리를 튼 죽음이 매일같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소비 자신에게도 옮겨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누군가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죽음의 늪에 함께 빠지는 일이었다. P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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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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