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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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은 올라가기 힘들지만 오르고 나면 살랑 불어오는 바람으로 기분이 좋아지듯 시집의 내용들도 삶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유 없는 것들에 대하여 흘러가듯 두기도 해요. 

그 중 추리극 이라는 시가 유독 생각에 많이 남고 단어와 문장으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에서 시의 매력에 빠졌어요. (사실 저는 시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더 좋아합니다.)

선과 악의 나뉨은 내 안의 미로 속에 헤메다 결국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자신일테고, 그 미로의 어려움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그런 미로를 없애는 방법도 몰라서 그 속에 갇힌 것이겠지만요🙃
이렇게 시로 마음을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다니..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그 문장을 읽을 때 마다 머리에서 여러 단어,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시인의 말 중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 울지 않았는데도 언덕을 내려왔을 땐 충분히 운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 대목이 딱 시집을 읽고 내가 느낀 느낌과 너무 같았어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제목처럼 
지금! ‘여름’에 읽어야 여름의 푸르름과 무거운 느낌의 시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

눈부시게 푸른 계절이었다 식물들은 맹렬히 자라났다
누런 잎을 절반이 넘게 매달고도 포기를 몰랐다

치닫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듯



🌲추리극

천사, 영혼, 진심, 비밀……
더는 믿지 않는 단어들을 쌓아놓고

생각한다, 이 미로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나는 아흔아홉마리 양과 한마리 늑대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매일 한마리씩, 양은 늑대로 변한다
내가 아흔여덟마리 양과 두마리 늑대였던 날
뜻밖의 출구를 발견했다
그곳은 누가 봐도 명백한 출구였기 때문에
나가는 순간 다시 안이 되었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더는 믿지 않기로 했다
미로는 헤멜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이다

다 알 것 같은 순간의 나를 경계하는 일
하루하루 늑대로 변해가는 양을

불운의 징조라고 여기는 건
너무 쉬운 일

만년설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라 추위 아닐까
안에서부터 스스로 더 얼어붙지 않으면

불 꺼진 창이 어두울 거라는 생각은 밖의 오해일 것이다
이제 내겐 아흔아홉마리 늑대와 한마리 양이 남아 있지만
한마리 양은 백마리 늑대가 되려 하지 않는다

내 삶을 영원한 미스터리로 만들려고
한마리 양은 언제고 늑대의 맞은편에 있다 



🌳열과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은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담고 걸었다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
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나의 과수원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한다
눈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제공을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4000만 팔로우 🎉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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