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디자인하는 사람 -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 5
고지인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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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디자인 한다. 음악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TV에서만 들어 책으로 접해보니 신선했어요. 소리를 사랑하면서도 소리를 혐오하고 소리에 집착하고, 오로지 소리에 대해서 다양하게 접근하며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글을 통해 느껴졌어요. 음악 전문가이지만 고급용어만 잔뜩 늘어놓아 책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책들과 달리 일반 청취자인 나에게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주기도하고, 작가님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고 독자에게 편안하게 들려주고자 하는 배려의 글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영어도 잘하고 글도 잘 쓰시고 음악도 잘하는 작가님은 다양한 직업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도 많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일은 인공지능이나 바뀌는 미래에 일을 뺏기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글들에서 전문가 이지만 나처럼 삶과 일의 걱정을 한다는 것에 공감도 되었어요~

마치 음악전문가이나 일반인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듯 친근감 있게 적어주어 혼자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읽는다면 입으로 서로 떠들지 않아도 수다의 시간을 가진 듯한 기분이 들꺼예요^^

카페의 인테리어, 향, 커피 맛까지 훌륭한데 음악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은 오래 머물지 않고 나온 경우도 저도 있었는데요. 작가님은 커피값에는 커피 뿐만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데 그 환경 중에 위생이나 편안한 좌석 같은 것도 있겠지만 음악이 포함된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이제 카페에 가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 카페 소리에 집중해 볼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가장 공감되는 대목이 있었는데요. 유투브나 멜론 같은 곳에 추천해주는 음악들을 듣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나도 모르게 귀찮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나만의 음악 리스트를 어느 순간 갖고 있지 않다는 충격을 받았어요. 익숙해져버린 AI 추천, 알고리즘 추천으로 듣는 음악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음악일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오늘부터라도 예전에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 다시 찾아보며 <나만의 음악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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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트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하는데 유독 배경음악에서는 이 사실이 간과될 때가 많다.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공간에 어울리는 사운드 디자인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공간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나타내 줄 뿐 아니라 방문한 사람들의 기분도 쾌적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는 곧 브랜드 이미지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운드 디자인이 왜 필요하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모든 것을 바꿔놓으니까.’
소리에 의해 모든 게 바뀌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아직 소리에 신경을 그만큼 쓴 적이 없기 때문이고,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찾아왔던 순간을 놓쳤을뿐이다. P54

어지러운 조명과 소음,
좋은 음악으로 모두 차단하고
영화 속의 슬로우 모션처럼 잘게 부서지는 저 장면들
- Jiinko.<Slow City>

소리는 상상, 감정, 분위기, 이야기를 바꾼다. 지금, 잠시 이어폰을 꽂고 매일 듣던 똑같은 음악이 아닌, 독특한 분위기와 색다른 장르의 음악을 재생해 보길 바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칙칙한 건물들이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것이고 그 사이로 빼꼼 모습을 드러낸 하늘도 여느 날과는 다른 색을 뽐낼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을 두르고 있는 공간이 가진 이야기가 바뀌며 짧은 시간이나마 다른 공간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가 왜 중요한지, 사운드 디자인을 왜 하느냔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부족한 글 솜씨가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 한들 관심만 끌어도 성공이다. P58

믹싱도 비슷한 과정이다. 작곡을 끝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곡과 편곡만 끝내고 나면 음악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믹싱하지 않은 음악은 대접 안에 달걀프라이, 온갖 나물, 참기름, 고추장 등을 모두 떄려 넣고 제대로 비비지 않은 채 그대로 떠 먹는 것과 같다. 밥알과 나물은 흩어지고 고추장은 뭉쳐 있다. 성격이 급한 엄마는 비빔밥을 가끔 이렇게 먹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의 숟가락을 탁! 막는다. 그리고 양념과 재료가 한데 잘 섞이도록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열심히 비빈다. 그래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P70

무엇보다 돈을 따를지 신념을 따를지 늘 고민이다. 돈이 좀 덜 돼도 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작업에 시간을 쏟는 것과 돈은 잘 주는데 기술만 빼 먹히는 것 같은 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 가까워져야 할지, 어느 쪽에 비중을 더 크게 둬야 할 지 매번 달라진다. 이건 비빔밥 재료를 잘 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소리의 세계에서나 인간 세계에서나 균형은 참 어렵다. 음악에서처럼 그렇게 해주는 장비라도 있으면 좀 쉬워질까. P74

인공지능이 내가 한 일을 대신하는 날이 오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밥줄을 뺏긴 분한 마음을 글로 써내려가고 있을까.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까. 오지도 않은 일을 걱정부터 하는 게 인간의 고질적인 문제다. P117

유튜브에 아무나 ‘카페 배경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재생 목록을 올릴 수 있게 된 후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버거울 정도로 음악은 도시 전체에 가득하고, 가득한 만큼 피로하다. 시간, 장소, 때에 따른 드레스코드가 있듯 음악에도 코드가 있어야 하건만 공간의 소유자들마저 자신의 공간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에 대해 무신경하다. 빠른 비트의 화려한 음악이 결코 장소의 청춘을 보장하지 않고 오케스크라 악기 구성이 결코 그 장소의 품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음악이 주는 휴식과 즐거움은 우리가 그 권리를 외치지 않는 이상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간과 분위기에 맞는 좋은 음악을 들을 권리를 어떻게 주장하냐고?
소리에 집중하면된다. 소리에 집중하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소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싸구려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노래를 모를 뿐이니까. 하지만 싸구려 카페의 주인들은 원망스럽다. 그들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나는 싫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P134

소리와 함께한 알록달록하고 청아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이전의 열정을 되찾지 않는 이상 앞에 썼던 기억들을 다시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소리를 발견하려면 소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늘 곁에 있는 공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듯 소리도 주의를 기울여 찾지 않으면 공기처럼 흘러간다. 언젠가는 그때의 소리를 다시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많이 오염되고 타락했다. 소리에 미쳐 있었던 시절의 순수함이 가끔 그립다. P145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서로를 깨우고 자극하며 공존한다. 재즈 음악을 들으면 자주 가던 와인바의 트러플 감자튀김 맛이 미뢰를 자극하고, 톰 웨이츠의 음악을 들으면 매캐한 향의 인센스 스틱이 혀끝에 닿은 것 같은 씁쓰름한 맛이 맴돈다.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울 시간이다. 청각이 시각보다 하찮다고, 후각이 청각보다 하찮다고 여기지 말자. 어떤 이는 시각에 예민하고 어떤 이는 촉각에 예민하고 난 청각에 더 예민할 뿐, 모든 감각은 동등하다. 이제 소리를 볼 순 없어도 소리가 불러오는 기억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감각이 거창한 게 아니다. P176

“청각에 휴식이란 없다.”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그의 작품 <음악혐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우리는 고막을 침투하는 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완전한 침묵은 없다. 적어도 자연적인 환경에서는 말이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세계는 꿈의 세계다. 꿈속에서 아무리 소리치고 울부짖어도 감각만이 있을 뿐 소리의 실체는 없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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