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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
해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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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언니와 형부의 사기로 미국으로 이민까지 가게된 작가는 다행인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형부가 가짜 죽음 사건을 벌이면서 투자하지 않았으나 겉보기와는 다른 아파트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바퀴벌레 출몰하는 열악한 환경의 아파트의 생활은 파티광 이웃들로 항의를 해도 해결되지 않아 밤새 차 라이트를 비추는 소심한 복수를 하게 만들기도 하고, 총기 사건을 실제 마주한 후로는 감정대로 말할 수 없어 끙끙앓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억지 변화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오롯이 휴식의 공간이어야하는 집조차 불안함으로 가득했으니 벗어나려고 더 안간힘을 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떠나 타지에서 생계를 위해 현지인들도 꺼리는 일들을 맡아서 하거나 그마저도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하는 글들을 읽을때면 현지에서 직접 전화로 친구가 마치 들려주는 것 같아 읽으면서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뭐이런.. 하며 글 속에서 함께 공감하기도 하였답니다^^
해길 작가님은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갔지만 현실은 꿈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글로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닭공장’ 단어가 나올때는 영화 미나리 속의 주인공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한국인은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닭공장 밖에는 답이 없었나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미국의 이민생활에 대해서 영화로 접한 것이 다였기 때문에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나는 첫번째 미션이 주어졌을 때 실패한다면 두려움에 또 다시 도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길 작가님은 미국에서 난관을 거듭하고 운도 따라주지 않아 바닥이라는 것을 경험했다고 할만큼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보고자 하는 도전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들었습니다.
자격증도 경력도 갖추지 못하고 7년이 지나가버렸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은 어디가고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변해가면서도 포기하지않고 정착하기 위해 방법들을 찾아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은 박수쳐주고 힘들었을텐데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나름 평탄했던 시절을 늘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평생 모은 재산까지 갉아 먹으면서 버텼는데 결국은 얻은 것 없이 상처가득 한국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이제는 끝이다가 아닌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무언가의 각오와 희망이 보였습니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도 사실 이런 열등감과 자괴감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있을텐데 그시기에 이 책을 읽는다면 도전하고 또 다시 시작이라는 외침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외국인 신분이라서 총을 구매할 수도, 소지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지랄 맞은 이웃을 만나도, 도로에서 미치광이 운전자를 만나도 우리는 침묵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에게는 총이 있고 우리에게는 총이 없으니 살려면 말을 아껴야 했다. 그렇게 7년간을 미국인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다가 화병을 얻었다. 마음의 병을 얻었지만, 그래도 목숨을 지켰으니 다행이려나. 우리는 미국에서 가까스로 생환한 생존자인지도 모르겠다. P70
부모님은 매일매일 가슴이 터질 만큼 답답했을 것이다. 달변가였던 아빠는 미국에 와서부터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항상 선두에서 권리를 쟁취하던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앞에 세웠다. 두 사람 모두 타고난 기질을 억누르고 사느라 속이 엉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살아 보겠다고, 영어 좀 할 줄 아는 자식 앞세워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는데 자식이란 놈은 뭐 부탁할 때마다 툴툴거렸다. 그것이 결국 아빠의 마지막 인내심을 자극했다.
“그깟 영어 때문에 부모를 비굴하게 만들어야 하겠어?” P72
“제발 눈치 좀 가져!”
아빠가 내게 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손찌검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말이 그 어느 말보다도 아프고 서러웠다. 한국에서는 음식으로 허덕여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풍족하게 차려져 있어서 욕심을 내지 않았는데 미국에 와서 식탐이 생겼다. 하루 종일 굶주린 들개처럼 음식 사진을 보고, 먹는 상상을 하며 군침을 삼켰다. 급기야는 아빠한테 구박까지 당하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한테는 2만원짜리 행복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P121
급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자니 자꾸만 기가 죽었다. 친구도 수준이 비슷해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만날 때마다 열등감이 느껴지는 관계를 친구라고 부르는 건 어떻게든 그들 사이에 껴 보려고 발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P213
미국에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만큼의 생활 수준을 꿈꾼다는 건 욕심이었다. 그것도 매우 지나친 욕심.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감정은 제멋대로였다….
나만 뒤처졌다는 조바심과 자괴감, 열등감이 정신을 갉아먹었다. 우리는 분명 함께였지만, 교차점이 없는 평행선을 걷는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P214
엄마는 마침내 고민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나는 절망 섞인 어조로 무슨 수로 영주권을 따느냐고 물었다. 영주권 비용과 스폰서 모두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기쁨보다 막막함이 밀려왔다. 엄마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힘을 실어 말했다.
“우리도 가자. 닭.공.장.” P217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
….
아무리 구석구석 손을 대고 다듬어도 집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구나.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어도 남의 집에 방문한 손님처럼 낯설었다. 집을 꾸미고 마당을 가꿔도 가슴 한편에 늘 공허함이 자리했다. 아무리 우리가 미국인처럼 살려고 해도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