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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후지와라 카무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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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을 저리게 본 이들에게 반가운 작품. 작가가 후지와라 카무이라는 것을 모른 채로 기시감이 평생의 화두라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기시감이 어찌 화두로 작용할 수 있을까. 공고한 벽으로 공감의 노력을 방해했던 그 낯선 경험은 이 책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림체가 꽤 거칠다. 짧은 이야기들이 여러편 담겨있어 분절된 느낌에 치이기도 한다. 내용의 개연성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그 낯선 경험으로 인도하는데 매우 유용한 장치들이다. '묘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기시감들을 효과적으로 낚아채어 형상화하는 것이다.

'견랑전설'에서 드러나는 결말의 아릿함은 작가가 비정한 인간과의 소유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데자뷰는 그것을 불식시킨다. '견랑전설'과 '데자뷰'는 공통적으로 속고 속이는, 혹은 중첩되는 입체적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며 진실에 대한 주름잡힌 고뇌를 드러낸다. 진로우가 소녀 게릴라를 죽인 것이 아니었다.

데자뷰를 통해 망각의 강을 건넌이들은 환상지대에 안착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 직선적 시간과 다중적 시간에 대한 규정을 작가는 본능적으로 단정내리기 거부한다. 그리하여 섬세한 이미지들의 조합과 전개가 가능해진다. '데자뷰'는 순간들의 삐걱거림이 온기를 지닌채로 '관계'속에서 용해된다. 주인공이 '성격'이라는 것을 갖춘 소녀들인 것도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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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1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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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대중화란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다. 여기서 고전을 텍스트로 하는 작업이 진행될 때 번역이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불교교리가 보여 주는 치밀한 논리성과 넓은 사유체계는 그것이 한문으로 기록되고 ,전달된다는 이유로도 우리의 눈에 쉽게 흡착되지 못해온 면이 클 것이다.'선의 나침반'에서는 숭산대선사의 가르침을 엮어 영어로 쓴 책을 다시 한글로 번역해내되, 십이연기, 사성제, 삼법인 등의 기본적 교리부터 시작하여 금강경, 반야심경 등의 구절들을 한문원문과 영어, 한글로 제시하고 그에 대한 매우 쉬운 해설이 덧붙여지면서 진정한 의미의 '번역'이라는 것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사실상 현대의 '신학적' 위치를 점하는 서양근대철학을 원천으로 하는 흐름을 뛰어넘는 통찰이 있음에도 여전히 불교의 교리들을 '비논리적'이고 뭔가 '둥둥 뜬' 언어들로 일관되었다는 목소리들은 그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나부터도, 불교 수행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은 나와는 판이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라 범주화시켜왔고, 수행이라는 것도 자기만족을 위한 길에 불과하다고 여겨 왔다. 이 책은 매우 호탕하게 웃으며 그러한 오해들을 가로지르는 말들을 건넨다. 그 말들이라는 것도 , 공중을 부유하는 성격의 것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과 일상에 산재한 것들로부터 건져낸 것들이다.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그 깊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가르침을 공유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온전히 전달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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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페이크 1
후지히코 호소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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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후지타가 보여주는 각 예술가들의 레조네(작품목록)와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물감과 작가가 사용하던 나무틀까지도 꿰고 있음으로서 진품을 가려내는 감식안,감정능력, 뛰어난 복원능력이 전문만화로서의 쾌락을 선사한다.거기다 현재는 뒷거래로 진품을 매매하는 복제 미술품 화랑 'GALLERY FAKE'를 운영하고 있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라는 전력이 그의 능력에 신뢰성을 더해주며 후지타를 돋보이게 한다. 다카다 미술관장으로 취임한 미타무라와 묘한 동류의식을 보이며 이야기 전개된다. 그녀를 수식하는 '미인관장'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남발되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어떤면에선 X-FILE에서 멀더와 스컬리의 관계와 유사성을 보인다.

단 후지타에게는 사기꾼적 기질을 첨가하고 그것을 은근한 매력으로 살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또한 진품을 가리거나, 그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때 후지타의 승리로 끝나곤 한다는 점에서,또한 '상처입은 <해바라기>'에피소드에서부터 등장하는 아랍왕족의 딸인 사라의 캐릭터가 철저히 주변적이라는 점에서도 은근히 후지타의 우월성을 내보여진다.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모네의 '볏집'을 농사꾼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선사하는 행동이나, 졸부 기업가의 호쿠사이에 대한 애정을 성공적으로 발현하도록 도와주는 장면들은 대중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보여 준다.

엄청난 액수로 낙찰되는 작품들과 전문가들의 세계를 살피며 다소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작품의 가치라는 것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상품가치에 대해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속물적'태도는 이를 어느정도 경감시켜준다.'애국자의 트릭'에서는 작품의 국적과 그와 어긋나는 소유권이라는 민감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여러 단발적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유로, 심화된 문제의식을 담아내긴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것을 막을 정도까지의 전문성은 쉬어가며 읽는데 부담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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