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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보 칼맨, 디자인으로 세상을 발가벗기다 - 대화 11
이원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잠이 몰려오는 토요일이지만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노라니 서글펐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발걸음한 서점에서 몇 주 전부터 점찍어두었던 이 책을 골라 들었죠.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선,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베네통이 펴낸 잡지 'COLORS'의 기획력이 놀랍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었었죠. 이 비범한 기획물의 생산자인 티보 칼맨에 대한 궁금증을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는 굉장히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티보 칼맨에 대한 입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얇지만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티보칼맨의 아이디어 스케치가 잡지의 레이아웃으로 변해가는 과정등이 담긴, 화보 덕분이기도 합니다. 가상 인터뷰이지만 티보 칼맨의 세계관이 허투로 포장되지 않고 충실히 반영되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테크니션'을 뛰어 넘는 디자이너의 기량을 요구하는 티보칼맨은 기본적으로 문화를 읽어내고, 문화를 이끄는 이로서의 책무에 충실한 데서 비범함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문화 게릴라들과 만납니다. 티보 칼맨은 문자를 이미지로 풀어 내보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었고, 그 밑에 그가 가진 탄탄한 세계관과 철학 덕분에 그 능력이 십분 효과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기업들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쌈박한 포장에만 연연하는 디자이너들의 역할에 반기를 든 것도, COLORS에서 내보인 도발적 주제와 상상력들도 사실 '기발함'보다는 '진중함'에 가까운 그의 작업에 대한 철학과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만 어렵지 않은 진중함이었죠. 에이즈와 인종 문제를 그는 '비트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거기다 재치와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니,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뮤직비디오와 이미지로 의자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해낸 '체어맨'이란 단행본도 낼 수 있었던 것이겠죠.
정규 디자인 학사과정을 이수하지 않았기에 그의 문제 해결 능력이나 새로운 시선의 발굴에 있어 더욱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댓가로 디자인계에서 아웃사이더로 오래도록 남아있긴 하지만 '다양한 빛깔의 문화를 바라보고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한 의식'을 촉구했던, 이 진지한 디자이너는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단 디자이너들에게뿐만이 아니라요. 사람들의 인식의 지도를 새로 그려나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단 저자가 티보 칼맨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며 티보 칼맨의 몇몇 이력과 작업의 동기들을 설명하는 부분은 도식화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예전에 좋아하던 데이비드 번이 속한 그룹, 모던 토킹의 앨범을 티보 칼맨이 기획해 낸 것이었다는 발견과,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기발한 레이아웃들 덕분에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뿌듯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애드버스터'를 함께 정독하면 자본주의 논리를 가장 공허한 방식으로 채색해주는 듯한 광고와 디자인이 어떻게 성찰의 시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매개로 변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이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