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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같이 더운 여름, 잠 못 드는 밤 읽기 좋은 감성에세이 《아주, 조금 울었다》를 읽었습니다. 15년 차 라디오 작가 권미선씨가 쓴 73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는 책이에요
눈물을 참는데 익숙한 당신을 위한 73편의 서정 에세이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회의 가면을 벗는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한편씩 읽으면 왠지 나를 다독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입니다.
권미선 씨는 <푸른밤 정엽입니다>, <오후의 발견 스윗소로우입니다>, <굿모닝FM 오상진입니다> 등의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활동했고, 또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 제가 보기엔 ㅠㅠ 왜 안들었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진행자들이네요. 무엇보다 감성적인 방송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진행자가 정엽, 스윗소로우, 오상진이라니 말이에요!
5개 파트의 73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구분이 크게 의미있는 건 아닙니다. 어느 기분이 우울한 날 책을 펼쳐서 나온 에세이를 가볍게 읽어도 좋은 책이에요. 한번에 읽어내려가기 보다는 천천히 한 편씩 음미하면 좋을 책이고요.
책 표지에 보면 '괜찮다면서 나를 다독이는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라는 소개가 나오는데요, 뭐랄까. 슬플 때 어설픈 위로는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냥 옆에 서서 조용히 다독이는 것 같은,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연인의 넓은 어깨같은 책입니다. 슬플 때 듣는 슬픈 노래 같은 책이랄까요?
구매 사은품으로 밑줄카드를 주는데요, 밑줄 긋고 싶은 문장 위에 살포시 올려놓기만 하면 평범한 문장이 매력적인 편집으로 변합니다. 본문에도, 마무리 글에도 줄간격이 다 맞더라고요. ^^ 다만 카드 밑에 문장이 쓰여 있어서 문단간격이 넓은 곳에 놓아야 더 예뻐요. 다른 책에도 올려놓고 사진찍을 수 있게, 보편적인 문장으로 디자인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은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우리는 참 외로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이라는 건 결국 부재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도요.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부재와 외로움, 그리움에 대해 토해내고 있거든요. 보통 카타르시스를 감정의 배설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감정을 배설한다니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감정은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 배설이라는 표현이 정말 딱인 것 같아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사람의 감성을 표현해냅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또 위로가 되는 책이에요. 문득 내 안의 감성이 소진되고 피폐해지고 있음을 느낄 때, 이 책으로 약간의 감성충전을 해보시는 것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10년 지기 친구.
반가움과 함께 든 생각은 "얘가 왠일이지? 결혼하나"였다.
솔로 친구가, 그것도 결혼 시즌에,
아주 오랫만에 갑자기 전화를 했다면,
잔뜩 의심에 차서는, 눈이 가늘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다행히도,
단순한 수다였다.
청첩장은 등장하지 않았고
카페에 앉아서 차 한 잔 시켜놓고,
무려 다섯 시간이나 수다만 떨었던 것이다.
물론, 간간이 케이크와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헤어질 무렵에는 둘 다 목이 쉬어 있었다.
우리가 그리운 건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예전 사람들이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사람들.
누군가 떠난 후,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잊은 사람은 잊은 걸 모르니 슬프고,
남은 사람은 그 모든 기억을 혼자 갖고 있으니 아프다.
물음표로 끝나는 메시지는 위험하다.
상대방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테고,
만약 답이 없으면 그녀는 더 크게 실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