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마리 다리외세크의 문제작,

가시내를 읽었습니다.

최정수 님이 번역했고, 열린책들에서 나왔어요.

 

 

클릭(http://roomy_room.blog.me/220169046570)하면 원문으로 이동합니다.


마리 다리외세크는 프랑스 현대 문단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고 해요.

그녀가 책을 내면 호평과 혹평이 동시에 쏟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과 출간기념회도 했었어요.

제가 출간기념회까지 찾아간 이유는

이 책이 그만큼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정말 놀라웠어요.

책의 구성부터도 정말 간단합니다.

시작하다, 사랑하다, 다시 시작하다

이렇게 세 챕터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이 책을 훑어보던 남편은 몇페이지만 넘겨보더니

뭐라는거야? 무슨 책이 맥락이 없어?

이러면서 던져버리더라고요. ㅎㅎㅎ

그런 면에서 릴케의 말을 인용한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정확합니다.

살아 있는 소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를 수 있을까?

<여자들>, <아이들>, <소년들>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모를 수 있을까?

이 단어들이 오래전부터......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처음 이 책을 읽고 지금 제가 뭘 읽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각각의 문단은 맥락이 없고, 내용은 두서가 없고,

표현은 적나라하고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홀딱 벗었다.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고 머리에는 에르 앵테르 항공사의 제모를 썼다.

역시 홀딱 벗은 친구 조르주와 함께다.

두 사람은 신부와 수녀에 관한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자지를 축복해줘요!'

아버지가 그녀에게 달려오면서 외친다.

아니, 그녀 뒤에 있는 신부에게 달려오면서,

하얀 소시지처럼 덜렁거리는 아버지의 그것은

비오츠 씨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묘사가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선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 대담한 내용이 겨우 2페이지에 나옵니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해서 한페이지만 넘기면

벌서부터 이렇게 '센' 내용이 펼쳐지는 거에요.

이 책은 사춘기를 겪는 한 소녀가

사랑을 겪으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소설입니다.

사랑을 느끼면서가 아니라,

사랑을 겪으면서 생기는 일이라는 게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중2 무서워서

북한이 못 쳐들어온다는 말이 있고,

중학생은 외계어를 쓰기 때문에

지구인들은 소통할 수 없다는 말이 있죠.

저 역시도 사춘기 시절에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본 세상은

두서없고 맥락없고 정신없이 펼쳐집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사춘기 소녀 솔랑주가

겪는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하지만 강한 척 하고

모르지만 아는 척 하는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이 행하는

허세와 공포가 오롯이 드러나 있어요.

이야기는 사건의 흐름이 아니라

시선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고

그리하여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그림을 보듯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관심이 '성'에 집중돼있죠.

남들은 다들 첫사랑을 시작한 것 같은데

나만 늦어지는 것 같고 나만 모르는 것 같고

왠지 남들 앞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아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주변을 의식하면서!

춤을 추다가 어느 남자가 이름을 물어보자

몇 주 전부터 좋아하기 시작한 가명을 말하죠.

실제 이름은 솔랑주지만 솔랑주는 너무 촌스러워요.

그래서 자신의 이름은 오늘만큼은 샤를로트죠.

남자들은 매력따위 상관하지 않고

그저 젖가슴만 신경쓴다고 단언하는 모습이나

생리 중인 채로 교회에 들어가는 건 금지돼 있다며

잘못된 내용을 근거로 아는 체를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춘기의 언어를 통역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한켠으로는 예전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저도 한 때는 질풍노도를 지나는 사춘기 소녀였으니 말이죠.


너무나도 현실적인 묘사를 보다보면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사춘기를 표현할 수 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요,

실제로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이 사춘기 시절 썼던 일기를 참고했다고 해요.

실제로 녹음기에 일기를 쓰곤 했다는데,

그 녹음된 일기를 들으면서 그 시절의 소리,

염소소리라거나 기타 등등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시절을 기억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어릴 때에는 숙제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안네의 일기 등을 보며 로망을 갖고 있기도 해서

언제나 꾸준히 쓰겠다고 다짐만 하고

실제로는 가끔씩 생각나면 일기를 쓰곤 했는데요,

엄마가 아무래도 훔쳐보는 것 같아서

일부러 심한 말을 썼다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된통 혼나고 나서 일기쓰기를 그만뒀던 기억이 납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심한 말을 썼던 건

사춘기의 호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솔랑주의 "엿듣는 사람 엿이나 먹어라"라는 말이

정말 가까이 다가오더라고요.

사실 솔랑주는 사랑이나 경험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알고 싶어하죠.

그럼 축하하는 의미로 키스해줄래?

라는 말을 듣고 나서

바야흐로 '그 일'이 일어나려는 참이라고 기대하죠.

처음 만난 남자가 키스를 하기 위해

다가오는 순간을 그게 입은 티셔츠에 그려진

늑대가 사팔눈이 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너무 귀엽기도 하고, 정말 생생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낯선 경험을 하면서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그려내는 적나라한 표현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도 저는 자기검열이 강한 보수적인 사람이니

더 이상의 세세한 인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매우 인상적이고,

읽어봄직한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출간기념회에 간 이유는
사실 마지막 챕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지 못했지만,
이걸 질문하고 싶었어요.

"왜, 다시 시작하다"인가 말이죠.

사춘기를 시작한 소녀의 사랑을 한참 얘기하고나서

"잠시 멈추다"라거나, "다시 생각하다"라거나,

어쨌든 계속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왜" 다시 시작하다라는

기존의 과정을 부정하고 새로 원점을 만드는

소제목을 선택했는가 하는 것이죠.

마리 다리외세크는 사춘기의 방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오- 물어봤어야 하는데....

사실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도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과거의 이야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80년대의 프랑스를 다룬 책이라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여성에게 순결이 강요됐는데,

이 시기 여성운동의 확산으로 성혁명이 일어났고,

(실제로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여성들은 가치관에 대한 혼란에 빠진 것이죠.

자기주도적인 강간(!)을 첫경험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솔랑주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은,
더더욱이나 부정적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라는
저의 의심을 강화시켜주는 표현으로 끝납니다.

어쨌든 그녀처럼 어린 여자에게,

그런 것들은 성가실 뿐이다.

-아, 정말이지 모든 것이 너무나 지루하다.

(그녀는 <너무나>라는 말을 그만 써야 한다.)

그녀에겐 생각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나저나 마지막까지 저 허세돋는 표현이라니 ㅎㅎ

사춘기 다워요.

이 책을 모두가 재미있게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녀의 전작을 모두 찾아보고 싶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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