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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도서] 순수의 영역 - 그 적나라한 본성의 영역

몰랐다면, 눈치채지 못했다면 행복했을까.
나오키상 수상작가 사쿠라기 시노가 그려낸 억누를 수 없는 질투
해드라인 카피가 너무나도 인상적인 도서, 순수의 영역을 읽었습니다.

빨갛고 화려한 디자인이 빨간 제목과 어울려 강렬한 느낌을 주는 책의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띠지를 벗기면 완전 반전!!! 책 자체가 하얗기만 합니다.
정말 순수의 영역을 표현하는 듯한 디자인입니다.

사쿠라기 시노는 농밀한 언어로 관능적 문학의 영역을 구축하는 작가로 꼽힌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 평가는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에는 어울릴 지 몰라도(곧 후기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순수의 영역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제목이 왜 순수의 영역이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참 한국독자를 위한 인사말이 있더라고요.
왠지 편지를 받은 것 같아 좋았어요. ^^

순수(純粹) [순수] :
[명사] 1.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순수를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위와 같은 뜻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순수란 무엇이었을까요?
본능의 순수? 이성의 순수? 감정의 순수?
어쨌든 그 순수의 영역에서 각자가 보여주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저자 사쿠라기 시노는 의뭉스럽고도 능청스럽게 모르는 척 눙을 치다가
결국 그 적나라한 실상을 가감없이 드러내 충격을 줍니다.

아키스 류세이는 명문대를 나오고 서예를 전공한 서예가입니다.
그러나 수상식마다 낙방하고 아직 서예계에서 어떤 실적을 낸 상태는 아니죠.

권태로운 개인전을 열고 방문객을 기다리던 어느 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준카'를 알게 되고,
'준카'가 도서관장 노부키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서예 학원에서 함께 하길 청합니다.
준카는 서예에 대해서는 천재적이나 발달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노부키는 류세이의 제안에 다소 망설이지만
보건교사인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서예학원으로의 출근을 허락하게 됩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리나라는 여자가 나오는데요, 리나는 노부키의 학창시절 친구입니다.
지금은 친구라는 의미 그 이상의 사이지만 또 연인이라는 의미 그 이하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노부키는 자신의 상황(경제적, 환경적)을 극복하고 다른 여자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요.
반면 유부녀인 레이코는 다르죠.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또 준카라는 매개체도 있고요.
이 책에선 기대했던 질투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류세이는 준카의 재능을 발굴하고자 하면서도 따뜻하게 알려주고,
차라리 레이코와 노부키의 감정에 호감이 생기면서
또 리나가 노부키를 기다리는 것을 버거워하면서 그 긴장감이 책 전반을 아우릅니다.
아니 도대체 뭐가 질투야! 일본인들은 역시 타인을 의식해서 이 정도만 돼도 엄청난 질투를 말하는 건가?
우리나라같으면 이미 막장을 써도 백번을 썼겠구만!
이러면서 다소 실망스러운 생각으로 읽고 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아! 하는 충격이 반전 속에 펼쳐집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도 드라마적인, 영화적인 설정에 익숙해져있어서
인간의 희로애락이 그렇게나 극단적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다듬어지고 감춰진 가식적인 모습을 자신의 모습인 양 보이게 되는데요,
그 가식이 벗겨지는 순간 그 이전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면서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말과 행동이 어떻게 달랐는지,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면서
다시 첫 장을 들춰보게 만드는 힘, 그 힘이 이 책에 있었습니다.
책을 두 번 읽게 만든다는 점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경우 주인공의 기억속에 확실히 새겨진 어떤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그 기억을 되짚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 이야기의 흐름은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지만,
책의 마지막을 넘기는 순간, 그 예상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러면서 그의 말과 행동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위해 책의 첫 장을 찾아보게 됩니다.
순수의 영역 역시, 마지막 류세이의 모습을 보면서
류세이가 바라봤을 준카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는 점에서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직면했다는 이 책의 해드카피를 깊이 공감하게 합니다.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포장하는 인간의 본성에 공포를 느끼게 되기도 하죠.
어쩌면 그것이 그만큼이나 인간적인 모습이겠지만.

어쩌면 문장 하나하나가 그 묘한 정서를 잡아낼까요?
생활력이 없는 남편을 둔 레이코는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에서 자유롭습니다.
가계를 도맡은 덕에 레이코는 시어머니의 병간호에서 벗어났다.
매일하라면 못 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면 상냥해질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닌 저 세 줄의 문장 만으로 레이코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책의 카피를 보면 준코의 모습을 순수의 영역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가.
어쩌면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는 인간 본성의 순수의 영역,
즉, 천재성을 가진 상대를 봤을 때 느껴지는 질투를 고스란히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책을 덮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쿠라기 시노의 '순수의 영역'
이웃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서예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준카의 이야기가 중심이다보니
서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예를 할 때 글자만 잘 쓰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글쓰는 자세와 그 안에 담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글자를 잘 쓰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이유는
이렇게 글자를 쓰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보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겠지만...

참, 책을 읽다가 풋-하고 웃음을 터뜨린 문구가 있었어요.
"책은 빌려줘도 바보, 돌려줘도 바보"라는 일본의 옛말이 있다고.
아아... 저는 바보 중에 상바보였나봐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