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B의 순간
김선아 지음 / 미호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가 좋은 이유, 김선아 지음, 미호, 2019


별자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밥하늘에 가득 채운 수많은 별들을 바라 볼 때 별자리를 알지 못하면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나 W 모양의 카시오페아 자리조차 찾기 어렵다.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는데, 각자가 알고 있는 만큼 다르게 보이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문화유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넓혀 주었고, 역사와 문화유적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유적지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었다면 김선아 작가의 여기가 좋은 이유는 현대 건축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는 나의 현대건축 답사기였다.


그동안 트렌디한 핫플레이스에 가더라도 인테리어나 분위기 위주로 보아왔던 것 같다. 건물의 외관이나 구조, 재료 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아니 잘 모르기에 지나친 것 같다.


저자는 브런치에서 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이 많이 덜어졌다고 하는데, 몇몇 장면에서는 사진 없이 묘사만으로 장소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내 주변에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쳤거나, 갔던 곳 중에서는 건축에 대한 몰이해로 느끼지 못해던 부분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별마당도서관의 경우,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갑갑함을 털어내는 넓은 공간에 놀라고, 이곳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코엑스에서 길을 잃어도 별마당도서관만 찾으면 위치를 가름할 수 있게 해주는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 저자의 시선이 놀라웠다.


서가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이 공간에는 패턴이 생겨난다. 우리가 읽는 책에는 정해진 사이즈가 있고, 책을 보관하는 책장이라면 응당 갖춰야할 형태가 있다. 네모난 책을 위한 책장이 둥글게 디자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
중략) 이 외에도 찾을 수 있는 공간의 패턴이 한 가지가 더 있다. 직사각형으로 나뉜 서가의 격자 형태와는 다른 방향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패턴,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외부에서 지붕을 거쳐 들어오는 햇빛은 바닥에 넓은 패턴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바닥에 맺힌 그림자의 패턴을 인식하고 있을까?(P14)


나 또한 인식하지 뫃못했다. 책에 실린 사진을 통해 바닥에 패턴이 생기기 이 패턴이 지붕을 통해 비춰진 햇빛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뮤지엄 산의 경우, 건물을 통해 산책을 하도록 기획했다는 것에 놀라웠다. 단지 공간이 넓어서 듬성듬성 채웠구나, 넓은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러한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된 것이라는 점에 놀랐다.


보통의 박물관을 떠올려보자. 박물관으로 들어가 티켓을 구매하고, 바로 옆에 있는 전시장 1로 들어간다. 전시장 1을 모두 보고 나면 그 옆의 전시장 2로 이동한다. 이동은 모두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동선이다.
안도 다다오는 사람들을 내부에서만 빙글빙글 돌리고 싶지 않았다. 워낙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니, 조금 멀어도 괜찮았다. 이이들에게는 맘껏 뛰어 돌아다닐 수 있는 공원을, 어른들에게는 오래간만에 산책다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
(
중략) 자작나무 숲이 끝날 즈음에는 콘크리트 벽이 동선을 유도하고 있다. 쉽사리 박물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 더 풍경을 즐기며 콘크리트 벽을 쭉 따라 걸으면 물이 얕게 담겨 있는 수공간이 나오고 콘크리트 벽은 끝이 난다.
콘크리트 벽이 끝나는 지점부터 빼꼼, 박물관의 전체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강렬한 붉은 조형물 뒤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돌덩어리 건물이 바로 뮤지엄 산의 본모습이다.(P113)


소설가의 문장 중 기획되지 않은 문장이 없다고 하는데, 건축도 마친가지인 것 같았다. 잘 지어진 건축은 모든 요소에 기획되지 않은 부분이 없는 듯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어디를 방문하든 오랜 시간 머무르며, 찬찬히 둘러보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