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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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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리가 그랬다. 경험하고 벗어나기. 경험하고 벗어날 줄 안다면 다음에 비슷한 고통이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또다시 내게 그런 고통이 온다는 게 솔직히 두렵지만 그래도 이제는 잘 견뎌낼 수 있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경험하고 그것을 벗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고 언제나 평안히 살고 싶어하지만 인생의 곡선은 행복이라는 줄 뒤에 슬픔이라는 줄이 엮어져 있고 또 그 뒤에 계속해서 좌절, 무기력, 불행이라는 줄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아무리 많이 연결되어 있다하더라도 또 우리에겐 평안의 줄, 기쁨의 줄, 행복의 줄이 다가 올 것이다. 인생의 한 부분인 고통을 잘 견디어 내려면 고통을 피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온몸을 내던지는 것이 최선이다. 온몸을 흠뻑 적시고 나면 나는 그 고통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곧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 앞엔 또 다른 일이 있어. 나는 이제 고통을 경험했으니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힘든 일을 해낸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주 조그만 고통을 크게 확대 시켜 마치 그것이 전부 인 양 말하지만 내가 벗어 나온 고통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어. 나는 그들보다 강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대견해 해보자.

이미 고통이 내게로 왔을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에 올 다른 경험을 위해 벗어나기를 하자. 고통을 비껴가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온전히 통과했을 때만이 다음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모리 슈워츠....
미치에게 그리고 브랜다이스 대학생들에게 더나아가 미국 사람들에게 모리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죽음과 삶을 자연의 행사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파도가 부서져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인정한 사람이었다. 살아있는 장례식을 통해 두고 갈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사그러져 가는 보기 안쓰러운 모습을 미국 전역에 공개하면서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죽었다. 죽는다. 죽어간다........

우리는 살았다. 산다. 살아간다.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죽어 가고 죽고 죽을 것이다. 모리처럼 살고 싶다. 아니 죽어가고 싶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알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안다고 모리가 그랬다.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데 오늘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오늘은 처음 엄마를 업었다. 어린 날 자는 나를 등에 업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시던 엄마를 이제는 내가 업는다.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하지만 나의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는 것. 그것이다. 계속 깨우쳐 가야지... 그리고 언젠가 모리처럼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해 삶에 관해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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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이야기
이현비 / 지성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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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아주 많은 군대가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일을 각기 맡아 하겠지.
어쩌면, 내가 극히 일부만 알고 말하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공수 부대에 참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어. 정말 대단해. 뭐든지 하려면 그 분야에선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따지면 군에서의 최고 일류는 공수 부대가 아닐까..... 물론 모두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분야를 중요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한다는 건 알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말이야....

항상 모든 전투에서 최전선에 투입되고, 조국을 위해 우리 민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그것만 봐도 정말 대단해... 그리고 공수 부대원들이 다른 일반 보병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건, '지원'에 있다고 봐. 지원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거거든. 게다가 훈련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도, 복무 기간이 남들의 2배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지원을 한다는 건 그 정신만으로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사람들이 과거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군에 오고자 하는 그것만큼은 어느 애국자 못지 않을꺼야. 비록 그런 마음으로 입대하지 않았다더라도 난 좋아. 그 자체가..

너무 동경스러운 공수 부대의 군생활....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그들만큼 두려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 생활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거 같아.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고 싶고, 호랑이처럼 산을 거침없이 오르내리고 싶고,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물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이 그들을 공수 부대로 이끈 것일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인간적인 모멸감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구호아래 비로소 진정한 군인이 된다고....... 대한 민국의 모든 군인들이 자랑스러워.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 그네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말야......

96년에 공비가 강원도에 침입했을 때 제일 먼저 싸우러 나간 것이 비호 부대 그리고 독수리 부대 특전 요원들. 그 중에서 이병희 중사의 전사가 가슴에 남아. 패스트 로프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다가 공비의 조준 사격을 받아 26의 나이로 전사했잖아.... 그의 마음엔 무엇이 있었을까. 두렵지 않았을까. 나라면 어떤 마음이 생겼을까. 그야말로 나라위해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거 아니겠어...

나도 구체적으로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걸. 그 수단이 군대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갈꺼야.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두고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내가 단지 군대를 동경하는 건지, 정말 가고 싶은 맘이 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간다면 어디를 갈지는 결정했다.
공수 부대 특전 요원이 가장 멋지지 않을까. 공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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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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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을 번역한 여러개의 책들을 들춰보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난감했었다. 외국어 번역서일수록 더 꼼꼼하게 살피고 골라야 한다. 먼저 몇 문장을 읽어보고, 한국 정서에 맞게 표현이 됐는지, 어색하지는 않는지, 또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 등을 어떻게 옮겨놨는지 체크를 했다. 그런 면에서 최인자 번역의 오페라 유령은 좋은 점수를 받을만 하다. 다른 번역자의 책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최인자의 번역은 자연스럽다. 대화체나 묘사부분들이 한국어로 바뀌어도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거나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꼭 할머니에게서 옛날 얘기를 듣는 것처럼, 고소하고 달콤해서 하룻밤만에 반 이상을 읽었다. 사랑이기는 하지만 오싹하고, 그런 유령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괴하다. 이 이야기가 실제 전해내려오는 전설인지 아니면 가스통 르루가 꾸며낸 소설에 불과한지 아리송하며, 고문실의 페르시안과 라울의 고통이 끔찍해 눈을 감으면 에릭의 으스스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하다. 크리스틴이 천사의 힘을 얻은 노래를 부를때는 머리가 서는 것처럼 짜릿하기도 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오페라에 관심있는 사람들,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소설은 '다 읽었다'로 끝내지 않고,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로 초대를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티켓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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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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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만큼을 읽어야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붙잡았다. 여태까지 수필이니 소설이니 자서전이니 하는 종류의 책들은 많이 봐왔는데, 이런 책은 또 처음이다. 게다가 주제도 ‘책’이니, 책에서 책을 말한다... 점점 궁금증이 더해갔다.

다카시의 독서론은 정말 대단하다. 무엇보다 그런 독서열기를 내뿜는 그의 지적 호기심이 가장 대단한 것 같다. 다카시의 말대로 무언가를 알고 싶고, 그리고 책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다카시처럼 책에 파묻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책을 고르는 방법이나 읽는 스타일도 정말 지의 거인답게 상당히 치밀하고 대범하다. 책 한 권을 써야 할 때 관련 도서를 200~300권 정도는 기본으로 읽는다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또 다카시의 사고 방식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아마도 그가 읽어온 책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이것저것 관심을 갖는 것이 전문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선입관을 당당히 깨고,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화 시대에 종이책 만큼 값어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그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책이 너무 많아 바닥이 내려앉아, 수차례 이사를 해야만 했던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 서재를 만든 이야기, 서재에서 일할 비서를 채용하는 과정, 다카시의 개인적인 성격 등의 외부적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책을 읽고 ‘이 사람 대단하구나’하고만 느꼈다면 그건 읽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지만, 이제 앞으로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지식을 얻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부터 쓸 수 있는 상당히 유용한 독서술이 될 것이다. 비록 다카시처럼 엄청난 양은 아닐테지만, 또 상당히 광범위한 주제는 아닐테지만, 적어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평과 출판업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새로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책을 들고, 다카시가 보는 ‘지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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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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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과연 그랬을까. 자꾸만 우리 엄마와 나를, 박혜란과 그녀의 아이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직장에 다니셨다. 내가 과제는 잘 해 가는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 사이는 좋은지에 대해 일일이 묻지는 않으셨다. 심지어 친구랑 싸워서 학교를 그만둘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셔도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성적표에 도장도 내 손으로 직접 찍었다.

자모회 입회 권유에는 눈길 한 번 안 주시고, 중3이 되어 입시 상담을 받으러 학교에 가실 때까지는 일부러 절대 선생님을 뵌 적이 없으셨다. 그러나 이렇게 무관심한 행동은 저녁에 들어오시면서 하시는 “학교 잘 갔다왔니? 공부는 열심히 했어?” 라는 애정어린 말로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 그리곤 나를 꼭 안았다고 내려놓으셨다. 나는 박혜란의 그 무덤덤하고, 요즘 엄마들이 보기에 아주 위험성 높은 ‘아이 멋대로’의 교육철학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그녀는 책 마지막 즈음에 자신이 그런 착한 아이들을 둔 것을 ‘인복’으로 여긴다고 하나, 나는 그것이 그녀의 성격과 가치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녀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한다. 그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한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자신감과 겸손함을 두루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엄마로서 한 일 중 가장 훌륭한 것은 든든한 대들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중심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서 있을 때, 세파에 이러저리 부딪치고 시달려 난파된 아이들이 그 중심에 모여 다시 치료를 받고 거친 항해를 떠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충돌을 염려하지만 엄마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충돌을 안 받게 미리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험난하게 다가올지 모르는 더 큰 충돌을 맞설 수 있게 안식처가 되어서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박혜란은 그것을 능히 해내었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아이들을 키워냈다. 난 그들이 서울대에 들어간 것에 대해 찬탄을 보내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왜 그렇게 해야하는 지를 그 어린 나이에 깨닫게 만든 그 어머니의 위대한 힘에 경외감을 느낀다. 자기들이 알아서 컸다고 하지만, 그녀가 원래 착한 아이들을 얻은 복이 있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알며 큰 데에는 ‘엄마의 전적인 믿음’이라는 큰 후원이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믿었다. 너희들의 인생은 너희가 가장 잘 할 것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 그녀가 전폭적으로 믿은 만큼 그만큼 아이들도 아주 멋지게 자란 것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이 짧은 문장 속에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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