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106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이제 더 이상 벌목을 하듯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병적인 허기증 환자가 먹은 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듯 책 마니아 역시 그 내용을 음미할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2. 115
나는 좋은 책의 전파에 일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최근에 읽은 것 중에 뭐가 좋았어?"라고 질문을 하면 무슨 조화인지 나는 완전한 건망증 속을 헤매게 된다. 그렇다,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내에서 저녁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복습을 하기에 이르렀고, 한 달 동안 날 살아가게 만든 책 목록 작성을 게을리하는 나의 나태한 성격과 싸우고 있다. 심문에 대한 걱정은 때때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책의 제목마저 잊게 만든다.

3. 138
독서광은 아니더라도 책을 즐겨 읽던 사람이 책 읽기를 마다하면 그건 분명 어떤 병의 징후다. "책 읽을 마음조차 안 생겨." 이 말은 신경쇠약, 피곤,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것을 뜻한다.

4. 156
독서는 잠을 못 자게 만든다. 독서광은 읽고 있던 책을 덮기보다는 '잠의 열차'(두 시간마다 지나가는)를 고의적으로 놓치고 만다. 배우자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변기나 비데 뚜껑에 앉아(개인적으로는 욕실에 안락의자를 갖다놓았다) 시간을 잊고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날아다니느라 밤을 홀딱 샌다. 그는 언제나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책을 읽느라 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5. 160
가방에 책 여러 권을-나머지 소지품도 함께-늘 넣고 다닐 정도로 체력이 튼튼하면서도 독서광은 어떤 심리적인 허약함, 병적일 정도의 예민함을 보인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흘낏거리는 것을 참아내질 못한다.

6. 191
아름다움이란 사람이나 물건이 자신의 못난 부분마저 좋아하도록 만들 줄 알 때, 그것을 자신의 개성과 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7. 227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내가 너무 '이기적'이며'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들이 뭘 안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 판단이 옳았다. 독서는 날 함께하는 것보다 홀로 있는 것을, 놀이나 소풍보다, 영화나 TV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계집아이로 만들어놓았다. 이로 인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많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만큼 더욱. 이것은 심각한 장애다.

8. 275 옮긴이의 글
프루스트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의 저자 아니 프랑수아는 장장 3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오로지 책만 읽어온, '학위도 직위도 북도 나팔도 없는' 베테랑 편집자다. 말하자면 평생을 그저 책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독특하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글'이 아니라 '책'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제목을 흘낏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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