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6
나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순조롭게 제약회사의 지사에 취직했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허전한 듯했지만, 월급을 타면 친구들과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거나 티파니에 들러 액세서리를 사면서 그런 대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런 별것 아닌 기쁨에 백 퍼센트 만족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가끔 서점에 들러 <그 정도면 충분하다. 현재를 즐겨라>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아, 역시 이걸로 된 건가' 하고 자족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그 무엇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내게 있어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금세 흥미를 가질 만한 뭔가가 떠오른 것은 아니다. 고작 생각나는 거라곤 외국어를 배워볼까. 아니, 차라리 로마로 유학을 떠나볼까. 아니, 좀더 현실적인 것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남자친구와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려볼까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실제로 흥미를 가질 만한 것들이 아니라 만약 흥미를 갖게 된다면 분명 주위에서 부러워할 일들이었다.
2. 77
갑자기 스피커가 고장나 조명이 환하게 켜진 댄스플로어에서 "네게는 괴로움은 없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 또한 없다"라는 악마인지 천사의 것인지 모를 목소리가 나의 내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