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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잘해야 한다>
⊙그 남자
어제 알아챘어야 했어요.
아니, 생전 그런 소리를 안 하는 앤데
어제 따라 이상~하게 코맹맹이 소리로 그러더라구요.
"염색을 할까 말까? 하면 어떤 색으로 하는 게 제일 예쁠까?"
뭐 그런 거요.
그럴 땐 대답 잘해야 하는 거 아시죠?
무심코
"너무 요란하게는 하지 마."
뭐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간, 보수주의자로 몰리기 딱 좋구요.
"그래, 염색하면 예쁘겠다~"
그렇게 쉽게 대답했다간
"그럼 지금까진 머리색이 마음에 안 들었어?"
그렇게 되면
당분간 인생이 아주 피곤해지는 거죠.
그래서 전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어요.
"아유~ 넌 뭘 해도 예뻐!"
물론 백 퍼센트 거짓말은 아니죠.
솔직히 인간인 이상! 어떻게 뭘 해도 예쁘겠어요?
아니~ 내가 왜 이렇게 흥분했냐 하면
세상에, 머리카락을 피 색깔로 물들였더라구요.
자기는 와인색이라는데 누가 봐도 그건 피 색깔이죠!
아까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자기 딴엔 다정하게 나한테 머리를 기대는데
어우~ 소름이 쭈왁!
얘는 자꾸 예쁘냐고 묻지,
나는 볼 때마다 소름 끼쳐 죽겠지.
아~ 어떡하죠?
다시 까맣게 염색하라고 하면 완전히 삐칠 텐데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그 여자
히히, 이젠
가죽 바지만 사면 돼요.
해 보고 싶었는데, 못해 본거
절대 못해 볼것 같던 게
딱 두 개 있었거든요.
와인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거
그리고
몸에 딱 맞는 가죽 바지 입어 보는 거.
그딴 걸 왜 하고 싶냐고 물어 보면
글쎄요.. 나도 할 말은 없어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내가 그런 앤지..
어쩌면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느 ㄴ이유가
까맣고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걸..
염색을 하고 난 뒤 거울을 봤어요.
근데 솔직히 좀 무섭더라구요.
그래도 그 사람은 예쁘다고 하던데요?
그 말 듣고 나서 다시 거울 보니까
뭐 또 괜ㅊ낳은 것 같기도 하구..
내 어떤 모습도 사랑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에요.
내일은
같이 가죽 바지 사러 가자고 해야지.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