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7
난 기차를 타는 걸 좋아한다. 특히 밤에 기차를 타면 불이 켜져 있는 데다가, 창문은 칠흑처럼 깜깜하고, 판매원이 통로를 지나가면서 커피나 샌드위치, 잡지 같은 것을 팔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햄샌드위치와 잡지를 네 권 샀다. 밤 기차를 타고갈 때면, 이따위 잡지에 실린 지겨운 기사들도 그럭저럭 읽을만하다. ... 평상시 같으면 밤 기차를 타고 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도 읽을 만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전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2. 146
아버지는 부자다.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내게 말해 주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난 그 액수가 상당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버지는 어떤 회사의 고문 변호사이다. 변호사들이란 돈을 엄청나게 끌어 모으기 마련이다.
3. 153
두 사람이 떠나자, 난 겨우 10달러밖에 기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샐리 헤이즈와 공연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표를 살 돈은 남아 있어야 했다. 그렇긴 했지만, 여전히 후회되었다.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4. 177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다가 손을 내밀어 샐리의 손을 잡았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한 180달러쯤 저축해 놓은 돈이 있어.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은행문 여는 대로 돈을 찾아다가, 그 친구한테 가서 차를 빌리는 거야. 농담이 아니고 정말이야. 오두막집 같은 데서 돈이 떨어질때까지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거지. 그러고는 냇물 같은 게 흐르는 곳에서 사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나중에 결혼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테지. 겨울이면 내가 장작도 베어오고, 둘이서 그렇게 사는 거야. 정말 끝내주는 생활이 될 거야. 어떻게 생각해? 같이 가자. 네 생각을 말해 봐! 같이 가는 거지?"
5. 204
결국 라디에이터에서 내려와 바에 있는 옷 보관소로 갔다. 가면서 계속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울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우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6. 205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뉴욕에서 살았다. 센트럴 파크 공원은 내 손바닥처럼 훤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곳에서 롤러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그 조그만 연못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공원이 남쪽에 있다는거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앞으로 걸어가면 갈수록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고, 스산함이 더해졌다.
7. 229
홀든 콜필드가 동생 피비와 대화..
로버트 번스가 쓴 시 '호밀밭은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을 얘기하며..
내가 되고 싶은건......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8. 247,248.249
⊙
선생님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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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 비슷한 선생들 과목에서 합격을 하고 나면, 그런 지식들에 진정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될 거다. 물론 네가 원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경우에만 말이지만. 먼저 인간들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그걸 깨닫게 되면 넌 흥분하게 될 거고, 자극받게 될 거야.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
<< JS에게 모해짐이 해주고 싶은 말 >>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