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
예술에서 말하는 유미주의, 탐미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유서주의, 탐서주의라는 말을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탐서주의자는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과 선 위에 두는 사람'이 된다.
                                                                               
2. 41
이탈리아에서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작가로 주세페 폰티지아가 있다. 그의 집에는 복도나 침대 밑 등 구석구석마다 책이 넘쳐흘렀고, 소장한 책이 4만 권이 넘었다. 여간한 애서가라 해도 개인이 그 정도 수효의 책을 소장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그의 독서 철학은 이른바 필독서나 추천 도서를 거부하고 각자 자유롭고 즐겁게 책을 읽자는 것이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3. 94
- 보들레르 시선 중 '허무의 맛' -
져서 지쳐빠진 정신아! 늙은 도둑인 너에게는,
사랑도 이제 말다툼처럼 아무 재미가 없다.
그러니 잘 가라, 나팔의 노래도 피리의 한숨도!
쾌락들아, 토라진 어두운 마음을 더 꼬드기지 말라!
근사한 봄이 제 향기를 잃었구나!

4. 121
- 미키 기요시 '독서론' -
책과 마주치는 기쁨은 사람과 마주칠 때의 기쁨과 똑같다. 독서의 기쁨은 해후의 기쁨이다. 그런데 모든 역사적 사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 같이 독서에서의 해후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해후란 말은 한편으로 어느 필연성을 뜻해야 한다. 완전히 우연하게 마주친 것 같지만 그것이 역시 필연이었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것이 해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한 외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필연성이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해후했고, 괴테와 실러도 해후했다. 독서에서도 똑같이, 혹은 스승으로서의 혹은 친구로서의 책과 해후하게 된다. 일생 이런 해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결국 아무것도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며 우리는 어떻게 그런 해후를 경험할 수 있을까? 스스로 구해야 한다. 구하는 것이 없는 자는 마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가령 마주친다 해도 그것임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5. 135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바보의 일생' 中
도쿄 간다의 어느 고서점 풍경의 일부 -

이윽고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책등에 박힌 글자를 더듬어나갔다. 거기에 죽 꽂혀 있는 것들은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기말 그 자체였다. 니체, 베를렌, 공쿠르 형제, 도스토예프스키, 하우프트만, 플로베르...... 그는 어두컴컴함과 싸우면서 그들의 이름을 세어나갔다. 하지만 책들 스스로도 나른하고 울적한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서양풍의 사닥다리를 내려오려고 했다. 그러자 마침 그의 이마 위에서 갓이 없는 전등 하나가 툭하고 불이 켜졌다. 그는 사닥다리 위에 멈춰 선 채로, 책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점원과 손님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묘하게 작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모두 초라해 보였다. '인생은 한 구절의 보들레르보다도 못하다.'

6. 145
- 보들레르 -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다만 취해 있어라.

7. 163
아버지의 서가나 서재가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면 이렇다. 우선 그것은 새롭고 넓고 다양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관문 구실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금단의 영역처럼 느껴지던 어른들의 세계로 간접적으로나마 첫 발을 내디뎌보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가보지 못한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는 마법의 창문,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일단 의지해야할 거인의 어깨. 내 아버지의 서가가 그러했듯이 나의 서가도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될 수 있기를!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어머니의 서가나 서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례를 접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서가나 서재가 있는 가정은 예나 지금이나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8. 190
독서와 공부, 나아가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권면하는 고사로 중국의 역사서 '진서'에 나오는 형창설안이 있다. 차윤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지만 가난하여 불밝힐 기름을 늘 얻지는 못했다. 그는 여름철이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를 모아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손강 역시 집안이 가난하여 기름을 얻을 수가 없어 겨울에 내린 눈에 비춰 책을 읽었다.
 반딧불이와 눈빛으로 책을 읽은 차윤과 손강의 시력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독서인이라면 책을 읽을 때의 조명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9. 191
- 모티머 애들러 -
모든 책은 빛이다.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진다. 독자에 따라서 그것은 빛나는 태양일 수도, 암흑일 수도 있다.
               
10. 227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은 5만5,3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는 신영길 씨로 알려져 있다. 일제 침략사 관련 책 2만여 권, 경제학 및 역사학 책 각각 1만여 권, 정치 및 법률 관련 책이 8천여 권, 희귀본 1,500여 권, 국내에 한 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책 3백여 권 등이라고 한다. 1952년부터 책 수집을 시작한 신영길 씨는 기본적인 생계비 외의 돈은 책 사는 데 들였고, 여행도 잘 다니지 않았으며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다니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신영길 씨가 책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직종인 교수나 문필가가 아니라, 은행에 근무하는 샐러리맨이었다는 점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11. 229
서가를 둘러보면 꽂혀 있는 책들에 어떤 맥락이나 결이 보이지 않고 마구잡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 서가 풍경 개선을 위해 목록을 정리해본다든가, 수집 방향을 궁리해본다든가 한 적도 거의 없다. 책, 독서, 출판 등을 주제로 하는 책, 이른바 책에 관한 책Books on Books을 비교적 집중적으로 수집하리라 마음먹고 조금씩 모으고 있는중

12. 230
- 토머스 프로그널 딥딘 '한 문학적 삶의 회상'-
리처드 히버의 집은 놀라움 바로 그것이었다. 방, 벽장, 복도, 회랑이 온통 책, 책, 책으로 가득 차 숨막힐 지경이었다. 모든 곳에 채깅 두 겹, 세 겹으로 열 지어 서 있었다.

13. 232
♣책은 일사불란한 서가 풍경을 자아내는 수집과 소장 취미의 소중한 대상이어도 좋다. 난장 풍경을 자아내는 마구잡이 잡독가의 남획물이어도 좋다. 단 한 줄도 읽지 않고 서가에 고이 모셔둔 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거실을 장식하여 한껏 뽐낼 요량으로 구입해도 좋다. 책의 오용과 남용을 꾸짖는 모랄리스트의 훈계 따위는 무시할지니, 책을 구하거나 소유하거나 읽거나 사용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대하여 책의 이름으로 다만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질 일이다.

14. 264
우리들 각자의 독서 대차대조표는 어떤 상황일까?
일단 양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지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된 '결정적 한 권'은 없었는지,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 애썼는지, 한 분야에 편중된 독서를 하지는 않았는지, 자녀의 독서 생활에 신경을 썼는지. 이런저런 사항들을 가만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 결과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독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15. 265
중점 독서 분야 같은 것을 정하여, 해당 분야의 입문서에서부터 전문적인 내용의 책까지 차례로 읽어나가는 방법도 좋다. 매년 분야를 바꾸어가며 그렇게 하기를 여러 해 거듭하다보면, 스스로를 눈을 비비고 다시 보는 괄목상대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16. 266
책 읽을 시간을 또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듯한 빌 게이츠는 "잠들기 전 잠깐의 시간이라도 매일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에는 서너 시간 정도 책이든 잡지든 반드시 읽는다"고 말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터에서까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지니고 다니며 거듭 읽었다는 나폴레옹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도 있고 책 읽을 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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